“나는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아이' 때문이 아니라, '세상' 때문이다.”
오늘도 뉴스를 보려다 이내 꺼버렸다.
첫 번째, 경기 청년 절반 이상이 무너지고 있다는 현실.
두 번째, 점점 좁아지는 청년 취업 문.
그리고 세 번째, 국민연금 개혁안.
“아이를 낳으라더니, 오히려 낳지 말라고 비꼬는 거 아닌가?”
무심코 내뱉은 말에 스스로 놀랐다.
하지만 어느새, 속으로는 그 말을 인정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점점, 아이에 대한 거부감이 스며들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사촌동생을 자주 돌보았다.
그 작은 아이가 햇살처럼 눈부신 웃음으로 나를 바라보던 순간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행복했다.
나도 나의 천사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 천사 같은 아이에게 언젠가는,
내가 온전히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다.
그래서, 한때는 진심으로 아이를 낳고 싶어 했다.
이제는 내가 그 날개를 펴줄 수 없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천사 같은 존재는 내게서 멀어지려 애쓰며 도망치고 있다.
그래, 나 같아도.
가난을 물려받고 싶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약자를 짓밟는 이 사회 속에서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알기에,
나는 매일 그 천사에게 사죄하며 살아간다.
함부로 날개를 펼쳐주겠다고 약속하면 안 됐다.
나는 아직 취업도 하지 못했다.
부모님 집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활비와 예상치 못한 지출을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적인 불안감은 점점 커져만 간다.
주변 친구들도 취직한 이들은 보기 어려웠고,
그나마 취업에 성공했다는 이들도
여전히 생계유지가 어렵다고 말했다.
뉴스에서는 말한다.
“국민연금, 지금의 투자가 미래의 안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 말은 희망이 아니라,
그저 버텨내기 위해 믿어야 하는 또 하나의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나는 알고 있다.
나를 끔찍이 사랑하는 부모님조차
이 사회의 냉혹한 구조 속에서
자식을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이건 가족의 잘못이 아니다.
이 사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을 뿐이다.
현실을 깨닫고, 환상에서 벗어나듯.
아이를 낳지 않기로 몇 번이고 결심한 그날,
나는 부모님 밥상 앞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한 점의 고등어를 올리며,
차가운 생선살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