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프레젠테이션 vs 보고 프레젠테이션
하, 오늘 정말 할 말이 많다.
아침부터 왠지 기분이 좋아서 벙글벙글 웃으며 시청에 도착.
어라 웬걸, 시장님의 예산안 회의가 길어져서 1시간 딜레이가 되었다.
그래도 괜찮다. 오늘은 경쟁입찰PT가 아닌 보고PT지만 그동안 PT대기하는 건 수백번도 넘게 해봤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다른데서 발생했다.
우리 인심좋은 시장님.. 기다리게만들어 미안하다시며, 갑
자기 함께 점심먹자고 맛집인 손칼국수집에 데려가주시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어쩌다보니 난 시장님 바로 옆자리에 앉게 됨.
하.. 내가 조마조마했던건, 바쁘신 시장님이기에 혹시나 PT를 식당에서 밥먹으며 하게되지 않을까였음.
모두와 함께 준비한 PT이고, 정식적인 자리에서 준비한 모든 내용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만약 식당에서 간이PT식으로 진행된다면 난 밤에 잠을 못잘거 같았다.
그래서 그런 말씀이 나온다면
"저 지금 여기서 PT하면 죽을 때까지 생각나고, 눈도 못감고 죽을거같아요." 라는
초강경멘트도 마음속에 준비한채로 칼국수를 체하듯이 먹기 시작했다.
와 나 눈치하나는 빠른데,
그 눈치를 이리굴리고 저리굴리고 하다보니
맛집 칼국수임에도 칼국수가 기도로 넘어가는 기분이 느껴짐.
식당에서는 시장님이 오셨다고, 밥도 푸짐하고 주시고, 육수도 무한리필 해주셨는데..
그 맛집의 맛을 제대로 느끼지못하고 오다니!!
(이 맛집 포인트가 좀 억울함. 어쨌든 시장님께서는 꽤 유쾌하셨고,
정말 동네 푸근한 아저씨같이 나와 농담도 꽤 잘 맞춰주시는 등
권위의식이 전혀 느껴지지않는 굉장히 좋은 분이셨음)
식사후에는 얼른 다시 시청으로 자리를 옮겨 시장실에서 브리핑 준비.
나 근데 왜 PT하는데 자꾸 시청 서기관님께서 생전 처음보는 언어로 서기하시는 게 눈에 들어오는거지?
처음에는 암호문같아보였는데, 자꾸보니 넘나 멋짐.
사람들이 PT할때 집중하면 아무것도 안보이냐고 가끔 물어보는데, 다 보임.
그러면 안되지만 오늘처럼 PT하다가 '와, 저 글씨 진짜 신기하다.' 처럼 딴 생각을 하기도 함.
어쨌든 보고PT는 입찰PT보다는 간단하다.
설득의 과정 전 단계에서 어떤식으로 사업을 운영해보겠다는 내용이 오늘 PT의 주목적이었는데
이 단계를 통과시켜 실제 입찰로 이어지는 것이 오늘의 PT 목적이었다.
그리고 중간 중간 시장님께 질문도 드려가며,
유머도 섞어가며 분위기 자체를 유쾌하게 만드는 것에도 중점을 뒀다.
무엇보다 오늘이 의미있었던 것은 내 좋지 않은 습관을 발견했기 때문인데,
언젠가부터 나는 프레젠테이션의 흐름보다, 또는 현장의 분위기보다
내가 할 말을 다 하고 나오는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건 내 사업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꾸린 사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인데,
그럴수록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그들이 하고싶은 말을 혹시나 내가 빼먹진 않았나' 노심초사하는 마음에서 생겨나는 거 같다.
결국 PT는 리얼인데 발표자인 나 자체는 리얼이 아닌 꾸며진 모습이었던거다.
오늘도 분위기를 조금 더 읽었더라면 준비한 PT를 뒤로하고 상황에 어울리는 멘트를 애드리브 했을 건데,
오늘 나의 애드리브는 내가 준비된 말을 하기위한 초석을 쌓는데에만 그쳤다.
실제로 준비했던 말이 중요하지 않고, 분위기를 읽고 던지는 말이 더 중요한데..
나는 그 베팅을 할 자신이 없었던거다.
나 자신을 조금 더 믿으면 가능한 일인데 왜 난 날 못믿고 있었던거지?
사실은 내가 하는 말이 이 PT를 준비해온 사람들의 말이 아니기에 실수할까봐 조심스러웠던것 같다.
이래서 발표대행이 어렵다.
난 그래서 발표대행에도 아이디어 회의부터 함께하고,
함께 준비한 사람들의 진심을 알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야 나의 애드리브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PT는 어제 미팅하고 바로 오늘오전 발표였기에
준비한 모든이들의 마음을 알아채는데 시간적 한계가 있기는 했다.
하지만 이것또한 변명이라면 변명.
*다음PT부터는 분위기를 읽을 줄 알고,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말로 진심어린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야겠다.
그렇게 날 믿는 연습을 조금 더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