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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옆버스 Jul 14. 2024

'동'잡이 흐름 기법

자 이제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지

 회사 식당에서 함께 줄을 선 회사 동료 B, 일명 보옹님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이제 무서울 지경이에요. 벌써 7월이라니, 또 이러다 금방 8월 되겠죠?"

 "그러게요. 보옹님 저희 팀 오신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반년 넘었네요. 저 벌써 연말에 '보옹님, 올해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푹 쉬시고 내년에 봬요'라고 말하는 거 상상돼요!"

 첫 문장 말할 때만 해도 통상적으로 너스레 떨 생각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겨울옷으로 바뀌었을 뿐 오늘과 똑같이 사무실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상상됐고, 그래서인지 미래 나눌 대화를 재연하는 데 꽤나 열을 냈다. 마침 보옹님과 나는 하반기 바쁜 프로젝트를 분담해 다음날 관련 교육 출장을 가기로 돼 있었다. 식판 반납할 때 '진짜 시간 허투루 쓰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해서일까? 다음날 퇴근 직후 두 시간 동안 벌어진 일은 내 머릿속에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생생하게 저장돼 있다.


 차 막히기 전 교육 끝내주셨네. 얼마 만에 비 안 오는 하늘이냐. 장화가 폭우에 든든하긴 해도 비 안 올 때 신기는 답답하지. 비도 그쳤는데 바깥 산책이나 할까? 오늘 회사에서 운동 뭐 하냐는 질문에 러닝머신 뛴다고 했는데, 정작 지난주부터 한 번도 안 했잖아. (자동차 시동 끄는 소리) 일단 집 들어가서 신발 갈아 신고, 윽 하지만 습할 때 러닝화 신는 건 발 넣을 때부터 괴로워. 이렇게 집 들어가면 안 나올 것 같은데. (도어록 열리는 소리, 열린 문 사이 바로 보이는 분리수거와 음식물쓰레기 모음) 에잇 안 되겠다. 다음 주도 비 온댔어. 쓰레기 치울 김에 나가고, 자전거라도 타자. 양말 벗고 샌들 신어도 탈 수 있잖아.


 어랏 나왔는데 자전거가 없다. 그래도 쓰레기만 치우고 집 다시 들어가기는 아쉬운데. 소방서 방향에 공영자전거 한 대 있다고 뜨는데 속는 셈 치고 가볼까. 땀을 뻘뻘 흘리며 원래 예상과 다른 곳으로 갔다. 강변을 따라 자전거 탄다는 계획은 틀어졌으나, 기억 속 묻어둔 새로운 게 떠올랐다. 작년부터 새로 시도해보고 싶다고 팀원들에게 말했던 운동. 그것이 자전거 대여소 근처에 있다.


 다행히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자전거는 그 자리에 있었다. 안장 높이를 고치고 '그 운동' 장소로 가기 위해 약간의 오르막 길로 페달을 길게 꾹꾹 눌렀다. 그러다 문득 맡은 수영장 락스 냄새. 회사동기 A언니가 여기서 아침 수영을 한다고 했지. 수영이라니, 초등학생 때 배운 실력이 계속 유지될 거란 건 오만이었다. 작년 태국여행 때 숙소 수영장에서 자유형을 해보니 이상하게 오른쪽으로 숨을 쉴 때마다 뒷발도 앞팔도 꼬르륵 빠져버렸으니. 더운 여름이고 하니 땀 흘릴 걱정 없는 수영을 다시 시작해도 좋겠다. 조금 더 지나니 맞은편 도로에 얼마 전 새로 문을 연 주황색 간판의 요가학원이 보인다. 돌아갈지라도 당장은 내리막길 시원한 바람을 맞고 싶어 즉흥적으로 들렀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괜찮아서 오래 고민했다. 그곳 근처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았던 요가 겸 명상학원에도 들다. 아쉽게도 내가 퇴근하는 시간 무렵이 마지막 수업시간대라 가지 못하는 날이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 이 정도면 운명이야. 심호흡을 가다듬고 원래 계획한 곳으로 향했다.


 지하로 내려가기 전, 이곳 수강생인듯한 여성분을 만났다. 그분 덕에 내가 샌들 신고 내려온 곳부터 신발을 벗어야 하며, 아무도 없는듯하지만 사실 저 안쪽에 관장님께서 쉬고 계시다는 걸 알았다. 만약 그분을 만나지 않았다면 같은 성별의 사람은 없을 거란 거에 위축되거나 다른 이유로 긴장해 잠시 상담받다 결제까진 이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얼마나 좋은 서사람. 성인반은 오후 8시 하나고 당분간은 오후 7시에 임의로 와서 배우면 된다고 설명해 주셨다. 일대일이면 실력이 빨리 늘 거라고. 고민 끝에 3개월치를 결제했다. 돌아가는 길에 "열심히 해봅시다."는 말이 얼마나 묵직하게 다가오던지. 관장님이라는 호칭에 다나까 체로 꽤나 깍듯하게 말하길 잘했다 싶었다.


 오늘 내가 검도장 문을 열고 들어갈 거라곤 아침까지만 해도 전혀  예상 못했다. 태어난 1년째 돌잡이하듯 퇴근 후 수영, 자전거, 달리기, 요가 등 여러 운동 중 '운동잡이'를 해낸 느낌이다. 그래 29돌 맞아 이 정도 이벤트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혹시 모르지 설마의 마음으로 치른 동(動)잡이 결과 덕에 내가 장래에 이 운동과 사랑에 빠질 수도. 다음 주 화요일부터 시작이다. 휴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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