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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꽉 찼고,
청년은 멈췄다.

강진의 실험에서 한국의 '지역부흥협력대'를 꿈꾸다

by 비커넥트랩



멈춰버린 청년들,

"그냥 쉬었음"




대한민국은 지금 거대한 '수도권 블랙홀'에 빠져 있다. 인구, 자본, 인프라, 그리고 기회까지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그 화려한 집중의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치열한 경쟁, 감당하기 힘든 주거 비용, 그리고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 이 압박 속에서 수도권 청년들은 질주를 멈추는 대신 아예 시동을 꺼버리는 쪽을 택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유로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2030 청년 인구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5년 현재 아무런
경제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쉬었음'이라고
답한 2030 청년은 73.5만 명을 넘어섰다.
역대 최대규모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분포이다. '쉬었음' 청년 10명 중 6명(약 60%)이 기회의 땅이라 불리는 서울과 수도권에 살고 있다.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곳에서, 가장 많은 청년이 멈춰 서 있는 것이다. 이는 수도권이라는 공간이 청년들에게 '기회의 사다리'가 아니라 '번아웃의 러닝머신'이 되어버렸다는 명백한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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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다. 과밀화된 수도권이라는 생태계가 더 이상 청년들에게 건강한 삶의 터전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회적 번아웃'의 신호다. 지방은 소멸을 걱정하고, 수도권은 공멸을 걱정하는 역설적인 상황. 우리에겐 지금,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지역의 문제와

청년의 역량을 잇다:

'강진 로컬턴'의 실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전라남도 강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로 '아웃바운더 로컬턴(Local Intern) IN 강진'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턱대고 청년을 부르지 않았다. 시작부터 달랐다.



시안3.png 아웃바운더 로컬턴 IN 강진 모집 포스터



우리는 먼저 강진이 가진 구체적인 문제와 해결해야 할 과제를 발굴했다. 그리고 그 미션을 해결할 수 있는 역량과 관심사를 가진 청년들을 공고를 통해 모집하고 선발했다.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지역의 필요(Needs)와
청년의 재능(Talent)을 연결하는
정교한 '매칭(Matching)'이
이 실험의 출발점이었다.


선발된 청년들에게는 낯선 지역에서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해 보는 '자기 주도적 일 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다. 수도권에서의 일이 '남이 시키는 노동'이었다면, 강진에서의 시간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며

'내가 주인이 되는 일'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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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직접 주민들을 인터뷰 하며 고충을 파악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청년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지역의 빈틈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잃어버렸던 '효능감'을 되찾았다. 강진은 그들에게 단순한 체험처가 아니었다.



내 역량이 지역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확인하고,
스스로 진로를 개척해 나가는
'커리어의 베이스캠프'가 되어주었다.


MVP 실험의 교훈:

'점'을 '선'으로 잇기 위하여




강진에서 진행된 아웃바운더 로컬턴은 일종의 MVP(Minimum Viable Product, 최소기능제품) 테스트였다. 우리는 짧은 기간과 한정된 예산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청년과 지역이 만나면 어떤 화학 작용이 일어나는지 검증해 냈다. 청년들은 지역 문제 해결에 뛰어들며 활기를 불어넣었고, 그 과정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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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들과 함께한 현장 성장 공유회



'가능성'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하지만 실험이 거듭될수록 우리는 명확한 '임팩트의 한계'에 부딪혔다.

2주, 혹은 한 달이라는 시간은 청년이 지역의 깊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자신의 진로를 완전히 새롭게 설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지역의 변화를 이끌어내고 청년의 역량을 실질적으로 강화하기 위해서는, 겉핥기식 체험이 아닌 '장기간의 몰입'이 필수적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지원이라는 안전망도 사라진다. 청년들에게 "의지만 있으면 남아서 계속해보라"라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요구다. 청년의 진로 탐색과 역량 강화, 그리고 이를 통한 실질적인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단기 프로젝트성 지원을 넘어 청년이 지역에 '장기 거주'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체계적인 제도와 시스템이 필요했다.



결국 개인의 용기가 아닌, '정책적 사다리'가 놓여야 했다. 그래야만 이 짧은 실험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고, 지속 가능한 지역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선을

밖으로 돌리다: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




현장의 한계를 고민하던 나는 바다 건너 일본의 사례에 주목했다. 우리보다 앞서 지방소멸과 도쿄 일극 집중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맞닥뜨린 일본은, 이미 2009년부터 '지역부흥협력대'라는 제도를 통해 그 파도를 넘고 있었다.



지역협력부흥대 대원 모집 포스터 / 출처: 총무성



이 제도는 단순히 보조금을 쥐어주며 인구를 늘리려는 1차원적인 정책이 아니었다. 도시의 인재가 지방으로 내려가 지역의 묵은 과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새로운 업(業)을 찾아 자연스럽게 정착할 수 있도록 돕는, 매우 정교하게 설계된 시스템이었다.




강진의 실험이
'개인의 용기'에 기댔다면,
일본에는
그 용기가 꺾이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망'이 있었다



일본은 어떻게

청년을 지역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나




일본 지역부흥협력대가 성공할 수 있었던 핵심은 지방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전환'에있다.



과거의 지방 대책이
도로를 닦고 다리를 놓는
'토목(하드웨어)'에 집중했다면,
이 제도는 그 공간을 채울
'사람(소프트웨어)'을 심는 것으로
정책의 방향키를 완전히 돌린 것


방식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이다. 도시 청년이 지자체의 위촉을 받아 최장 3년 동안 지역에 머물며 특산품 개발, 빈집 재생, 관광 기획 등 지역에 필요한 미션을 수행한다. 정부는 이 기간 동안 청년에게 활동비와 급여를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당장의 생계 걱정 없이 온전히 지역 활동에 몰입할 수 있는 '시간'과 '안전망'을 벌어주는 셈이다.



청년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2009년 불과 89명으로 시작했던 이 제도는 현재 약 7,200명이 활동하는 거대한 흐름으로 성장했고, 일본 정부는 이를 1만 명까지 늘려 지방 곳곳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지점은 65%에 달하는 압도적인 정착률이다. 임기를 마친 대원 10명 중 6명 이상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창업하거나 취업해 삶의 터전을 잡았다. 이는 3년이라는 충분한 시간 동안 지역과 깊은 관계를 맺고, 스스로 자립할 힘을 길렀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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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들은 단순한
주민등록상의 '정주 인구'를 넘어,
지역과 끊임없이 교류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관계 인구'로 거듭났다.



니시아와쿠라촌이나 가미야마초처럼 소멸 위기에 처했던 마을들이 '로컬 혁신의 성지'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청년들이 지역 깊숙이 들어가 심폐소생술을 한 덕분이다.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를

제안하며




강진 로컬턴이 가능성의 '씨앗'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면, 일본의 지역부흥협력대는 그 씨앗이 거목으로 자랄 수 있게 하는 단단한 '토양'과 같다.



이제 우리에게도 한국 실정에 맞는 '한국형 지역부흥협력대' 정책이 절실하다. 단기적인 '한 달 살기'나 일회성 체험 지원을 넘어, 청년이 최소 1년 이상 지역에서 일하고 부대끼며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만들 수 있는 장기적인 지원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청년에게는
실패해도 괜찮은 '시간'과 '안전망'을
지역에는 '새로운 혁신의 에너지'를
제공하는 이 제도가 도입된다면,
멈춰버린 수도권 청년들의 삶도,
비어 가는 지방의 풍경도
다시 생동할 수 있을 것이다.



강진에서의 작은 실험이 단순한 추억으로 남지 않으려면, 이제는 제도가 응답해야 한다. 청년이 지역에서 내일을 꿈꿀 수 있는 나라, 지방이 청년의 꿈으로 다시 숨 쉬는 나라. 그 변화의 해법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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