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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커넥트랩 Mar 04. 2024

두고두고 먹고사는 걱정 없는
마을 만들기

잘 먹고 잘 사는 로컬 이야기. 필리핀 다바오의 지속가능한 농장을 찾아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있어도

지속가능성이 없다면




언제나 살면서 제일 걱정되는 건 결국 먹고사는 문제다. 본능과 닮은 염려와 걱정이다. 그러니 황금알을 낳는 거위나 보물이 무한리필되는 화수분 같은 환상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정말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요즘 말로는 '지속가능성'.
인간의 욕심이란 끝이 없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도
가르지 않았던가. 



건강한 의미로 정말로 먹고사는 걱정이 없다는 건, 돈 걱정도 할 일도 없이 그저 빈둥거리기만 하는 게 아니라 의미와 보람이 있는 노동과 적당한 풍요로움이 굳건하게 유지되는 것일 테다.



필리핀의 황금알,

열대과일을 낳던 거위는...




과일로 유명한 필리핀. 그중에서도 필리핀의 과일바구니로 불리는 곳이 있다. 바로 필리핀을 이루는 3개의 섬 중 하나인 민다나오섬의 '다바오', 필리핀 과일의 대부분은 다바오에서 난다.(우리나라 귤의 대부분이 제주도에서 나는 것처럼).



다바오는 적도에 놓여있어 햇볕이 엄청난데, 특히 두리안과 카카오가 잘 자란다. 열대과일은 환경만 맞으면 쑥쑥 자라는 거 아닌가 싶지만, 상황을 들여다보면 다바오 농부들의 근심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도에 걸쳐진 민다나오. 저절로 과일이 쑥쑥 자라 열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 비커넥트랩
다바오의 자랑 두리안. 다양한 품종이 존재하고 맛과 향도 조금씩 다르다 ⓒ 비커넥트랩



두리안을 가장 많이 수입해 가는 중국이 선호하는 두리안의 품종, '(두리안계의 에르메스라는) 무상킹'의 재배를 요구받기 때문이다. 큰 손의 요구는 언제나 그렇듯 맞서기 어렵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무상킹은
다바오의 토양에 맞지 않아
잘 자라지 않는데
농사를 망친 후 중국 거래처에게
호소를 해봐도 수익은 없는 채로
끝나게 된다는 점이다. 



농부들은 잘 자라란 마음을 담아 질소비료를 계속 부어대지만, 땅이 안 맞는 것이 문제. 비싼 값에 팔린다는 무상킹 두리안에 기별이 있을 리 없다. 한 해 농사를 망치고 난 농부들은 먹고사는 걱정으로 마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민다나오 개발청과

국제개발협력기구,

토양전문교수가 힘을 합치다




울상이던 농부들에게 '두고두고 먹고사는 걱정 없는 마을을 만들어보자'라고 손 내미는 기회가 찾아왔다. 2009년 필리핀의 공공법으로 민다나오의 사회경제 개발을 위한 법안이 마련된 것. 이는 사회적 경제* 활동을 위한 민다나오 개발청의 본격 활동을 알리는 시작이 되었다.



* 사회적 경제라는 건 (쉽게 설명하면) 사회구성원들끼리 힘을 모아 사회적인 문제도 먹고사는 문제도 같이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단순 반복작업이 많아 기피하는 일자리에 노인고용을 통해 일도 진행시키고 노인 빈곤문제도 해결하는 식이다. 따듯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방식!



본격적인 변화는 2022년에서야 일어났는데, 그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캠프아시아'와 '닥터멜(Dr. Mel Chrisel A. Sales, 이하 멜박사님)'이 있다. 놀랍게도 캠프아시아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민간조직! 멜박사님은 필리핀의 열정 넘치는 농업교수님으로, USM(university of Southern Mindanao, 서던민다나오대학)의 농업연구개발센터를 이끄는 분이다.



민다나오 개발청 - USM - 캠프아시아가 지속가능한 두리안 농업을 위해 맺은 업무협약 현장 ⓒ USM 홈페이지



그리고 그곳에

80명의 농부가 있었다




캠프아시아는 이 미래의 주역이 될 마을 사람들의 의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은 땅을 가진 농부들의 집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앞으로 살아갈 땅의 미래를 생각하고 지속가능한 농업이라는 미래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이야기부터 나누었다. 



이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망가진 토양을 되살리는 것,
그리고 미래를 함께 바꿔나갈
농부를 모으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야 '이런 일이 있었다'라고 말하지만, 실은 대단히 어려운 과정일 수밖에 없었다고. (낯선 이가 찾아와 현관문을 두드리며, 같이 미래를 바꿔보자 말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자)



지속가능한 두리안 농장을 찾은 한양대학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 방문팀을 반갑게 맞아준 농부님들 ⓒ 비커넥트랩



진심이 통했을까.
기적처럼 무려 80명의 농부가
지속가능한 두리안 농장을
만들어보고자 합류했다. 



질소비료로 망가진 땅과 야속하리만큼 자라지 못하는 무상킹 두리안이 안긴 타격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면 뭐든 해보고자 하는 의욕이 민다나오 개발청과 캠프아시아, 닥터멜 그리고 80명의 농부를 똘똘 뭉치게 했다.



무조건 쉬운 방법일 것!

물, 꿀, 우유

그리고 버려진 코코넛 껍질




이 마음에 응답하기 위해 민다나오 개발청의 지원 아래 멜박사님과 USM 농업연구개발센터의 식구들은 온 마음을 다해 실험농장을 일구었다. 먼저 실험농장을 바둑판처럼 나누고, 어떤 땅에서 어떤 조건일 때 어떤 과일이 가장 잘 자랄 수 있고 수확하기 좋은 경우의 수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바둑판처럼 구획을 나눠 지속가능한 농법으로 땅과 수확량을 모두 지켜내는 방법을 연구 중인 실험농장 ⓒ 비커넥트랩



1년 만에 극적인 성과는 나타나기 시작했다. 두리안의 수확량 자체가 달라진 것. 이런 변화를 만든 방법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너무나도 쉽고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재료는 물, 우유, 꿀 그리고 코코넛껍질. 모두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이고, 심지어 코코넛껍질은 필리핀 정부의 크나 큰 골칫거리란 사실!



멜박사님은 두리안 나무의 뿌리는 아래가 아닌 옆으로 자라는 점만 이해하면 이해가 쉽다고 했다. 그래서 나무 주변으로 크게 원을 그리고, 땅의 영양도 수분도 나무 밑동이 아닌 원 안의 땅 표면에 골고루 유지시키는 것이 핵심. 



코코넛껍질로 두리안 나무의 뿌리 끝을 보호해 주는 것만으로도 수확량은 달라진다는 사실! ⓒ 비커넥트랩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코코넛껍질인데, 코코넛껍질을 엎어 동글동글하게 뿌리 끝쪽에 덮어주면 물을 더 주지 않아도 흙이 촉촉하게 유지된다는 것. 정말 너무 간단해서 놀라울 정도!



이렇게 두리안 나무가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해 주면, 다음은 피어난 꽃들이 열매로 맺힐 수 있도록 할 차례. 물과 우유와 꿀을 섞어 발효시킨 액체를 나무에 골고루 뿌려주면, 나머지는 벌들의 몫이다. 



농약을 뿌리는 것보다,
물-우유-꿀을 섞어 고루 뿌려
벌들이 열심히 올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두리안 열매는 저절로 주렁주렁
몇 배나 열린다.



농약 대신 물-우유-꿀을 섞은 발효액을 뿌려주는 것만으로도 자연은 주렁주렁 탐스러운 두리안으로 화답한다 ⓒ 비커넥트랩



'저도 같이 할래요'

두고두고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마을 만들기




이렇게 민다나오 개발청, USM, 캠프아시아, 민다나오의 80인의 농부들이 함께 하기로 한 '민다나오 두리안 농가 토양 채집 및 분석, 천연 비료를 위한 연구 활동 및 기술제공'이라는 약속(업무협약)은 빠르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맺어가고 있다.



USM 농업연구개발센터의 토양샘플. 80인의 농부는 1주일마다 흙, 잎, 열매 등을 채취하고 센터는 이를 분석하고 데이터화한다 ⓒ 비커넥트랩



가장 기쁜 건 건강하게 자라 주렁주렁 열린 탐스러운 두리안을 보고, '같이 해보고 싶다'라고 찾아오는 것. 농약과 비료 없이도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일상적인 재료만으로 참여 농가의 수익이 올라간 것이 입소문을 탄 것. 정직하고 쉬운 방법이 만든 기쁜 결과다.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의 지역 발전 모델을 일구어낸 과정을 설명하는 캠프아시아 이철용 대표 ⓒ 비커넥트랩



캠프아시아의 이철용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가장 중요하다 믿는 것은
커뮤니티로부터, 커뮤니티와 함께,
커뮤니티를 위해랍니다.
(From-With-For the community)
외부 지원이 다 사라져도,
혼자서도 계속 나갈 수 있는
중심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에요."



앞으로 몇 명의 농부가 이 여정에 합류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분명한 건 먹고사는 걱정이 없는 마을은 환상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삶을 다 바꿀 정도의 혁신은 작게 시작해서 동심원처럼 번져가는 법. 다바오의 100명, 200명... 더 나아가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는 세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가 닿기를 바란다.






각 지역에 맞는
독립적인 수익모델과 경영시스템은
로컬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 
핵심입니다.



비커넥트랩은 로컬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기존의 경제 성장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로컬의 지속가능성을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로 1) 지역의 주체(지역공동체) 2) 지역의 자원 3) 이를 활용한 독립적인 수익모델과 경영시스템을 꼽습니다. 



지속가능한 로컬의 발전 모델이 궁금하신가요? 그렇다면 비커넥트랩과 함께 국내외 현장을 직접 탐방하고 교류하며 돌파구를 찾는 '지역 발전 모델 트립'에 대해 더 알아보세요!



비커넥트랩 홈페이지 | 비커넥트랩 지역발전모델 트립 | 비커넥트랩과 로컬의 다양한 문제 같이 논의해보기



* 본 컨텐츠는 한양대학교 국제대학원 글로벌사회적경제학과의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발전모델 현장탐방을 진행하며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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