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바운더X태백탄탄마을] 로컬 그래픽 디자이너 박정원님을 만나다.
제2의 수도라던 부산. 그런 부산에게 조금 서글픈 별명이 생겼다. '노인과 바다'.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향하는 청년이 많은 탓이다. 그래서 결국 부산에는 노인과 바다 밖에 남지 않았다는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리고 올해 6월, 부산은 우리나라의 6개 광역시 중 최초이자 유일하게 '소멸위험단계'에 진입한 도시가 되었다.
그래도 부산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우리나라의 여름휴가철을 상징하던 해운대의 풍경, 웅장한 컨테이너박스가 24시간 바삐 움직이는 부산항, 서퍼들이 모여드는 기장, 요트가 장관을 이루는 광안리. 그리고 요즘 빼놓을 수 없는 부산의 자랑은 단연코 젊은 아티스트와 커피를 사랑하는 청년들이 모여드는 영도까지!
그런 영도의 한편에는 이름도 재미난 '도다리비쥬얼랩'이 있다. 남들이 노인과 바다라 부르는 부산이지만, 유쾌하고 즐거운 부산의 모습을 담는 로컬 브랜드 도다리비쥬얼랩을 이끄는 박정원님을 소개한다.
'미술점수만 잘 나와서 미술만 하다 보니,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었어요'. 그녀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지으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그녀도 한 때는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하고 싶어 서울로 향했다. 감각 좋은 사람들은 다 모여드는 광고계에서 TV광고영상과 모션그래픽을 담당했다고 한다.
살면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라도 있을까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어요.
힘을 뺀 후 즐거움에 나를 맡기고,
할 수 있는 것들엔
책임과 최선을 다 하자 싶었어요
좋아하는 일에 푹 빠져 살던 것도 잠시, 건강 상의 이유로 잠시 회사를 쉬게 되었지만 재취업은 쉽지 않았다. 힘을 주어 살아남으려 망망대해 같은 취업시장을 버둥거리며 헤엄치다 힘이 다 빠져갈 때쯤 주위를 둘러보니 예전에 일했던 광고주와 거래처에서 하나둘 일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있었다.
일감을 들고 나고 자란 부산으로 다시 발길을 돌렸고, 1인기업 도다리비쥬얼랩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런데 왜 하필 도다리일까. 장난기로 가득 찬 학생들에게 '도다리 같은 것들이~!'하고 나타나던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의 호통에서 따왔단다. 그 추억이 좋아서 대학시절 플리마켓에 참여할 때에도 도다리라는 이름을 살려서 썼었다. 취직에 애쓰던 날을 뒤로하고, 즐거움에 마음껏 몸을 맡겨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인생 2막에 추억이 서린 '도다리' 말고 다른 물고기 이름이 어울릴 리가 없었다.
일과 놀이의 경계가 흐릿했던 그녀에게 모든 경험과 상황은 또 다른 즐거운 프로젝트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그녀를 즐거운 상상력의 세계로 이끌었다. 실제로 현재 가장 집중하고 있는 작업도 코믹릴리프에 착안한 생활밀착형 그래픽이다. 코믹릴리프란 심각한 이야기로 긴장이 형성된 순간을 깨트려주는 실없는 장치나 해학적인 장면을 뜻한다.
지난 8월은 그녀에게 부산이라는 로컬 밖으로 나온 잊지 못할 순간이다. 부산 해운대의 파라다이스호텔, 광안리의 선데이모닝마켓, 광복동의 광복레코드페어 등 부산을 수놓는 굵직한 프로젝트에 동네 사람들과 힘을 합쳐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정작 부산 밖 로컬에 대한 경험은 많지 않았다.
태백 로컬디자인페어에 참여한
전국 각지의 아티스트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 도시가 소멸할 수 도 있다는
이야기에 마음이 쓰였어요.
태백과 같은 소도시만의
아름다움이 지켜지면 좋겠어요.
그녀는 태백이 소도시 특유의 맑은 느낌이 찰랑이는 아름다운 곳이라고 추억했다. 산과 하늘, 한 여름에도 시원했던 공기가 청명했던 태백의 첫인상을 지나 시원한 계곡과 탁 트인 언덕, 빽빽한 숲길을 지나며 원래 지내오던 부산과는 다른 모습에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느꼈단다.
어느 여름날, 태백에 다시 한번 찾고 싶다는 그녀. 그땐 꼭 은하수가 수 놓인 태백의 밤하늘을 보고 싶단다. 태백 로컬디자인페어가 만들어 준 것은 디자이너로서의 경험뿐만이 아니다. 그리고워하고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의 얼굴과 풍경들이 모이고 모여 인연의 첫 단추가 된 셈이다.
사람과 자연을 좋아하고 그 속에서 성실히 즐거움을 찾는 그녀답게, 앞으로 삶이 항상 의미 있고 즐거운 순간이길 바란다고 했다. 특히 부산근현대역사관과 함께 부산 광복레코드페어를 기획하고 또 진행하며, 부산의 옛 음악감상실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많은 자료 속에 푸욱 빠져있다고 했다. 이 역시도 재밌고, 뿌듯한 마음이 원동력이다.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
아무래도 '행복' 아닐까요?
인생에 몸을 맡기고 힘을 빼고,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을 구분 짓기보다
즐겁게 유영하는 것.
틀 속에 갇히지 않는 유연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모험을 즐기는 만화 속 주인공처럼, 팽팽한 삶의 긴장이 부담스러워지려는 찰나 빛을 발하는 재치와 해학처럼- 그렇게 달려온 시간을 듣고 나니 그녀의 천진난만한 미소의 원천은 아웃바운더로 오래 살아온 여유와 내공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재치와 해학은 진지함과 치열함이 뜨거웠던 자리에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기에 말이다.
*본 아티클은 [아웃바운더X태백탄탄마을]에 참가한 박정원님과의 서면인터뷰와 취재를 인물 소개 인터뷰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주어진 환경(인바운드)을 넘어,
더 나은 삶의 가능성과 기회를 찾아
과감히 살고 있는 환경 밖으로
용기 있게 나아가는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아웃바운더’라고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