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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Jan 08. 2020

무소유의 역사

[물욕 없는 세계] 스가쓰케 마사노부

집을 물건으로 가득 채우던 때가 있었다. 스물다섯에서 스물여덟까지, 월급을 120% 용돈처럼 쓰던 시절.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뭐든 반대만 하는 부모님의 집을 떠나 8평짜리 원룸에서 이제 드디어 자유가 시작되었음을 온몸으로 누리던 시절. 원래 돈에 대한 개념 없다 소리 많이 듣던 터에 수중에 '내가 번 내 돈'이 들어오니 어찌 쓰지 않고 버틸 수 있으리오. 철철이 옷사입고 신간으로 책꽂이를 채우고 휴가마다 해외를 나가고 헬스부터 승마까지 하고 싶은 취미는 일단 다 지르던 무모함의 시대였다. 이 시대는 150만 원짜리 명품가방을 면세점에서 50분 동안 고민하다 결국 지른 이후, 추석을 앞둔 스물여덟의 가을에 220만 원을 결혼정보회사에 면담하러 간 첫날 카드로 결제하면서 스퍼트를 올렸고, 그 해 초겨울에 350만 원짜리 모피 볼레로를 입었다 벗었다를 100번쯤 해본 뒤 결국 6개월 할부로 고이 모셔오는 것으로 피크를 찍었다. 태생이 금수저가 아닌지라 속으로 '미쳤군 미쳤어'를 연발하며 집에 왔는데, 같이 살던 여동생이 스윽 보자마자 '맨날 일하기 힘들다고 징징대면서 월급 한 달치 다 털어서 그거 산 거냐'라고 호통치며 경멸의 눈길로 쳐다봐준 덕분에 다음 날 정신 차리고 바로 반품을 하긴 했었지만. 


이런 소비의 황금기를 접을 수 있었던 건 이직 덕분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같은 회사지만 다른 부서의 마케팅부로 옮기면서 월급을 30% 깎인 채 시작했고 전세자금을 회사에서 대출받는 바람에 수중에 들어오던 돈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경제독립은 이루었고 이제 자기실현이 절실하던 타이밍에 시작한 마케팅이었다. 신입으로 입사해 지난 4년간 영업을 해봤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단 1%도 느낄 수 없었기에 월급을 깎아야만 입사가 가능하다는 인사부의 협박도 그때는 감수할 수 있는 리스크였다. 물론 매달 월급통장을 볼 때마다 속이 쓰렸고, 이후에 알게 된 모든 후배에게 절대 월급을 후려치는 인사부의 얘기는 무시하라고 조언해주었지만, 그만큼 그때의 나에겐 새로운 일이든 뭐든, 인생이 '유의미'해야만 했다. 입사 첫 4년을 내 분수에 넘치는 과소비로 채우고, 일에 대한 불만과 인정받고 싶은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학원을 다니고, 언니들이 일러준 대로 '취집'을 잘하면 될까 해서 소개팅으로 주말을 보내기도 해 봤지만,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공허함으로 초조해지기만 할 뿐,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일을 하게 될까 앞이 보이지 않았었기에 어떤 조건이든 이직의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이렇게 이직을 했으면 미친 듯이 일을 배우고 해야 하는데 하필 이직 전에 내가 인생의 유의미함을 찾겠다며 찾은 대안 중 하나가 'NGO대학원 진학'이었고 이직과 동시에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이노무 대학원은 당시에 소속된 교수님의 수감 시간을 다 합치면 200년이 넘는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진보적인 학교였고 아직 순수했던 나는 학교의 모든 것에 순식간에 빨려 들었다. 동기들 10명은 대부분이 상근 시민단체 활동가들이었지만 회사를 20년 다니다 그만둔 사람도 있었고 대기업 임원도 있었고 종교인도 있었다. 내가 학부에서 갈망하던 수업들이 여기에 있었고, 다양한 사람들과 수업을 마치고 나누는 다양하고 활발한 난상토론은 나를 다시 스물두 살로 되돌려놓았다. 뜨겁게 뜨겁게 인생의 의미를 탐색하던 시간으로. 회사, 영업, 지점장, 회의, 인센티브, 매출, 내부 영업 등으로 찌들어가던 나는 인권, 젠더, 노동, 진보주의, 감수성, 사회경제, 자본주의, 제국주의 등을 주제로 한 수업들을 듣고 발제를 준비하면서 다시 뭔가를 잃어가던 나를 붙들 수 있었다. 


출근하던 택시 안에서 평택 공장 지붕에 헬기 타고 도착한 경찰이 파업 중인 노동자를 곤봉으로 패던 사진이 일면에 실린 신문을 보며 펑펑 울던 그 날이 생각난다. 무력하고 또 무력해서 한없이 무너지던 아침. 만국의 노동자는 단결해야 하는데 왜 나는 알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나. 지금 출근이 아니라 그 공장으로 나라도 달려가 팔짱을 끼고 경찰을 막아야 할 것 같은데 결코 그리 하지 못할 나에게 느끼는 모순의 비겁함에 진저리 치던 아침. 


그리고 2년이 지나 친하게 지내던 과장님들과 노조를 창립하자고 했다. 대학원을 통해 건너 건너 알게 된 지부장님들을 소개받고 '동지'라 부르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배우며 노조를 창립했더니 회사에서 난리가 났다. 학교에서 착실히 배운 대로, 필요한 법적인 절차를 밟았건만 왜 이렇게들 화를 내거나 당황하는 걸까 싶으면서도 내심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이제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는데, 나는 과연 끝까지 내가 저지른 짓을 책임질 수 있을까. 이후 3년간 말로는 다 못할 일들이 많았지만 아무튼 중요한 건 이때부터 나는 '일을 제대로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지부장님이 해고되고 복직이 불투명해졌다. 지부장님의 해고를 바로 옆자리에서 지켜보면서 매일 결심했다. ‘절대 잘리지 말아야 한다.’ 나까지 여기서 트집 잡혀 해고되면 다 털리고 남은 노조원들의 부담이 너무 커져서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투쟁’이 타의에 의해 강제 종료될 게 뻔했다. 그래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근무’했다. 이전과 다른, 매우 이상한 업무지시들도 성실하고 꼼꼼하게, 그리고 마감 시간에 맞춰 제출했고 항상 질문에 대비한 레퍼런스를 생각하며 일했다. 그러기를 3년, 노조가 여러 고개를 넘으며 안정화 단계에 들어설 때 즈음, 나는 이미 워커홀릭이 되어 있었다.


매일 노래 부르며 출근하고, 모든 일은 내 컨트롤 아래 있었다. 모든 메일은 24시간 안에 답장이 보내졌고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최소 20년은 빼곡했다.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나는 알고 있었고, 누구를 만나도 잘 전달할 자신이 있었다. 희한했다. 취미생활이나 연애 따위를 생각할 여유도 없었지만 다른 데 눈 돌릴 이유도 동기도 없는 충만함. 일이 주는 행복감이 이런 거구나. 하루 8시간 넘게 보내는 이 곳에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가 삶의 질을 결정하는구나, 그렇기에 워크 앤 라이프 밸런스 같은 말은 일이 얼마나 재미있는지를 모르거나, 그 일을 해야만 돈을 벌 수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마스터베이션 혹은 자기 합리화라고 생각했다.


너무 행복해서 불안했을까. 마케팅은 영원히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또 한편 여기에 파묻혀서 인생이 끝나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내 한계가 어디인지 아직 못 봤는데 이게 너무 재미있어서 끝내지 못한다면 나는 절대로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다. 내가 제일 재미있어할 때, 다시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 쥐고 있어서 내놓지 못하는 것들을 내려놓는 연습, 회사가 나인지 내가 회사인지 모르는 이 유원지의 광대 옷을 벗어야만 할 것 같았다. 사람이 뽑히지 않는 새 업무에 자원하면서, 나는 이 결정을 분명히 후회할 거라고 생각했다. 인수인계를 하면서 내 모든 파일을 하드디스크에 담아주면서도 이건 내 것이 아니었구나,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다 가져갈 자산들이었구나, 결국 모두가 피를 팔아야만 살 수 있는 허삼관 같은 처지였구나 했다.


부모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물욕으로 허기를 채우던 초년생 시절을 지나,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내 업무가 주는 만족감으로 인정 욕구를 채우던 자기 실현기를 지나 이제 회사로부터의 정신적 독립도 이룬 것 같다.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가 없었을 땐 절박하게 갖고 싶었던 것들을 하나하나 ‘지나쳐 가다 보니’ 이제 하나하나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절대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소유’ 한 적은 없는 것이다.


지난 3년간 입지 않은 옷을 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어지고, 사고서 3년간 읽지 않은 책을 앞으로도 1년간 읽지 않을 것 같다면 중고매장에 팔아버린다. 사고 싶지만 내일 당장 쓸 것 같지 않은 물건은 사지 않는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모든 것들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절대 혼자서 살아낼 수 없지만, 또 아무도 없더라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단, 즐겁게, 또는 의미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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