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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비 May 04. 2020

인생을 통째로 눌러담았더니

[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소설 읽는 것이 책읽기의 전부였던 시절이 있었다. 소설이나 시 말고 다른 글을 읽어내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다. 책읽기를 좋아해왔지만 요즘 생각해보면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기 위해서 책을 붙들고 세상을, 혹은 내 자신을 못본 척, 모르는 척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도피성 독서는 그렇게 중독적이었다.


더 이상 궁금한 것도 없는 것 같고, 우울증도 아닌 것이 남은 날들에 미련이 없는 것만 같은 날들이 많아졌다.  몸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은, 내가 현 상태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는 데 동력이 되어 주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나의 정신을 성마르게 만들어왔다. 세상 만사 재미가 없다, 생각하며 정신이 하강곡선을 그리려는 찰나, 작년부터 모르던 세계를 몇 개 엿보며 다시금 호기심이 찾아왔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이제 소설에서 새로운 것은 없어보였다. 한국현대소설이 특히 그랬다. 한창 빠져들어 읽고선 책을 덮는 순간, 허무해졌다. 뭐하러 읽었을까.


이 와중에도 나를 한 장 한 장 읽어낼 때마다 감탄과 탄식의 한숨을 쉬게 만드는 책들은 있었다. 테드 창, 루시아 벌린, 애나 번스. 나에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 보여준 소설가들이다. 세상이 노잼이라 말했던 내가, 얼마나 같잖고 건방졌던가를 알게 해준 책들. 아직 읽어야 할 책이 지천으로 널렸다는 설레임을 다시 준 작가들이다. 


그리고 오늘 만난 보후밀 흐라발. 


짧아서 단숨에 읽겠지, 했던 내 생각은 오산이었다. 첫장부터 므흣한 미소를 지으며 한 줄 한 줄 음미하며 읽었다. 줄과 줄 사이, 더 할 수 없는 긴장감과 밀도로 꽉 채워진, 소설만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는데 흘러넘치는 메타포를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책을 읽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극강의 무아지경과 차오르는 기쁨으로 문장들을 공감했다. 감히 생각했다. 이 자도 같은 종자네. 


나 같은 인간들은 절대 쓸 수 없을 문장들, 무엇보다 나이를 먹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감정들을 찾아내며 몰입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내가 지녀야 하고, 지켜야 한다 믿었던 그 무엇도, 이제는 흐릿한 감정으로 마주하게 된 내 자신을 혐오하던 게으름과 날아다니는 감정을 잠재워서 체면을 구기지 않으려는 내 늙음의 시끄러운 새들을 머릿 속에서 조금이라도 쫓아낼 수 있었던 독서의 시간이었다. 아직 읽을 시간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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