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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디 Mar 19. 2022

디지털 노마드에 집착하는 여자



금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자유수영을 하는 사람은 오직 오빠와 나 단 둘 뿐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1인 1 레인을 차지하고는 호사스럽게 수영을 이어 나갔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헐떡이고 있을 때, 갑자기 소고기가 무지하게 먹고 싶어지는게 아닌가. 버터를 잔뜩 녹인 팬에 두툼한 소고기를 올리고 겉은 바삭하게, 그리고 속은 여전히 붉은기가 도는 촉촉한 상태로 구운 뒤, 다른 시즈닝은 생략하고 소금이랑 후추만 톡톡 뿌려 한입에 쏘옥...

단내 나던 내 입 안에 군침이 가득 고인다.


반환점을 돌고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오빠를 기다렸다가 잽싸게 물어본다.


'오늘 소고기 먹고 싶지 않냐. 갈색 고기에 다른 거 말고 소금이랑 후추만 뿌려서! 담백하고 고소하게!'

'야, 그거 죽이지. 근데 우리 이번 달 긴축정책이야. 알잖아'

오빠는 이어 말했다. '우리 지금 소고기 먹을 군번 아니야 ㅋㅋㅋ 매출 좀 올라오면 그때..'


아 맞다. 우리 이번 달에는 긴축정책이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지난해 연말부터 매출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지난달에는 좀 올라오나 싶었는데, 아직 까지 상승곡선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바쁜 날에는 한 겨울에도 등에 땀이 날 정도로 바쁜데 반대로 한가할 때는 또 정말 한가하니.. 자영업이 처음인 우리에게는 하루하루가 낯선 경험의 연속이다. 자영업이 사람 피를 말린다는 이야기는 이미 내 이야기가 된 지 오래다.


근처 배달 맛집 사장님의 고민도 우리와 별 다를 것은 없었다. 바쁠 때는 정말이지 직원을 고용해야 하나 고민스러울 정도로 바쁘지만 한가할 때는 놀랄 만큼 한가하다는 것이다. 거리를 둘러봐도 지나다니는 사람은 드물기만 하고, 또 요즘에는 날씨도 제 멋대로라 산책하는 도민들의 발길도 뚝 끊긴 상태다. 슬쩍 바로 옆 카페를 들여다봤다. 텅 비어있다.


이럴 때는 우리에게 적어도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를 거둘 정도의 여유는 남아 있고, 하고 싶은 운동을 할 수 있으며 자동차에 기름도 채울 수 있고, 육지에서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쉴 공간 또한 내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안도감을 느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월급 받는 인생'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지금 우리는 단돈 100만 원이 무척이나 아쉬우니까.




결국 오빠와 나는 소고기 만찬을 포기하고 집으로 곧장 돌아왔다. 그리고 딴생각이 나지 않게 헐레벌떡 미역국에 밥을 말아 허기진 배를 채웠다. 수영을 한바탕 끝낸 터라 몸은 굉장히 가벼웠다. 식사도 했으니 배도 더 이상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즐겁지 못했다. 기분은 한 없이 가라앉았고, 마음은 막을 새도 없이 무거워져 버렸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집 가장의 얼굴에 슬슬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그런 오빠를 보는 내 마음은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알바를 구해야 하나. 구직 사이트 좀 볼까..' 나는 장녀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문제가 생기면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을 하려고 하는 본능이 강하다.


요즘 사람들은 '돈? 쉽게 벌린다. 요즘 누가 어렵게 버냐'며 큰소리치곤 하는데 도대체 그들은 어떻게 돈을 쉽게 벌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나는 오늘과 같이 돈의 한계로 인해 나의 행동 혹은 행복의 제약이 생기는 때가 오면 그들의 말의 진위여부가 궁금해지곤 한다.


- 오늘 낮에 식당을 찾았던 그 커플은 어떻게 그렇게 비싼 외제차를 몰고 다닐 수가 있는가

- 개 산책 길에서 만난 그 젊은 엄마는 어찌해서 개 중에도 비싸다는 명품 브랜드의 그것들을 온몸에 치장할 수가 있는가

- 저 개 엄마는 어떻게 300만 원짜리 개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것인가..


내가 명품에 관심이 아예 없다고 해도, 살면서 보고 들은 잡다한 것들로 인해 어떤 차가 진짜 비싼 차의 종류 인지, 어떤 명품이 진짜 명품인지 정도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알 수밖에 없었다.




조급해졌다. 나는 지금 급속도로 조급해지는 중이다. 대책 마련을 위해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유튜브에서 '파이프라인 만드는 법'을 검색했다. 그리고 유튜버가 강조하는 내용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열심히 노트에 하나하나 옮겨 적었다.


영상에서는 나에게 두 가지 팁을 주었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수익으로 창출하라'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주변 환경 혹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수익을 창출하는데 활용하라'는 것이었다.


첫 번째 가르침에 대한 내 답변. 내가 좋아하는 것? 무얼까? 그동안 끈기 있게 한 일이 없기에 나는 이 질문에 답변하기가 꽤 어려웠다. 생각 끝에 나는 독서와 글쓰기에 꾸준한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수익 창출의 비상구'에 대한 답은 나의 분신과도 같은 개 두 마리와 고양이 한 마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지, 요즘은 다들 다양한 SNS 플랫폼을 통해 글을 쓰고 이를 인정받아 책까지 출판하던데! 게다가 요즘에는 '랜선집사'라는 트렌드가 생겨날 만큼 반려 동물 영상이 인기를 받고 있잖아!


 나의 원대한 꿈, '디지털 노마드'의 세계가 방금 막 열린 참이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나에게 그리 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 편안한 일이다. 잘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그냥 언제든지 심적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다. 생각해야 할 문제는 바로 내 반려동물을 어떻게 노마드와 연결시키냐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너무도 단순하게도 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바로 '유튜브'였다.


가뿐히 유튜브를 시작하기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었다.

글쓰기와는 달리 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영상을 편집해 본 적이 없던 사람이었던 것이다. 영상을 찍는 것도 생소했으며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유튜브를 잘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남편이 유튜브를 볼 때마다 '쓸데없는 짓'그만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으라며 잔소리를 하던 나였다.




오랜만에 브런치를 접속해 글을 하나 완성한다. 정말이지 너무도 오랜만이라 이게 흐름이 맞는 건지 아닌 건지, 잘 읽히는지 아닌지 분간도 어렵다. 하지만 완성은 했다. 그것이 지금 시점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하다.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고 나서 나는 휴대폰을 켜고 알라딘 앱을 켰다. 유튜브와 관련된 책을 구매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는 영상 보는 것을 즐겨하지 않았으니, 내가 좋아하는 글로 유튜브를 배워보려는 목적이다. 저렴하게 내 책을 만날 수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어가 고심 끝에 4권을 골랐다.


- 세상에서 가장 쉬운 영상 편집. 2시간 만에 유튜브 크리에이터 되기

- 유튜브 트렌드 2021

- 유튜브 시크릿

- 왕초보 유튜브 부업 왕


그리고 마인드의 정돈 또한 필요한 것 같아 생전 읽지 않던 자기 계발서도 여러 권 구매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팀 패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 그리고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는가, 박세니의 어웨이크, 에밀 쿠에의 자기 암시, 알렉스 바나얀의 나는 7년 동안 세계 최고를 만났다 등등.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 딱 이거다. 지금 나는 그 비싼 외제차도 명품도 하나도 부럽지 않다. 본래 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렇지, 나는 그런 것들에게 눈길도 주지 않을 만큼 관심이 없는 사람인데 그것들을 부러워하면 안 되지. 그건 내가 아니지.  




노트북을 끄고 침대로 들어가 몸을 이불 속에 파묻었다. 그리고 얼굴에 살짝 미소를 뗘 보았다. 내 인생의 중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것만 같아 기분이 두둥실 들뜨기까지 한다. 아까 수영 후에 쌓였던 내 마음속 쇳덩이는 또 내가 모르는 새에 어디론가 없어져버렸다. 잘된 일이다. 너무나 잘된 일이다.


잠에 들기 전, 내 남편 그리고 개와 고양이 그리고 엄마 아빠와 내 동생이 나의 존재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성공하고 말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해본다. 이번에는 기필코 작심삼일이 아닌 작심 삼백 육심 오일을 이뤄내 패시브 인컴을 만들고 말 것이다. 내 평생 살면서 이렇듯 굳건한 다짐을 한 것이 처음이다. 고로, 나는 아마도 디지털 노마드를 수 달, 수년 내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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