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결한 미치광이, 시라노에게 달이란

세상 모든 거인들과 맞서리라

by beennotdeep

-뮤지컬로 만난 고독하고도 순수한 미치광이


나는 평소 뮤지컬을 좋아한다. 많은 뮤지컬 장르 중에서도 중세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은 유독 끌린다.

웅장함과 화려한 의상이 주는 두근거림은 예쁜 공주 인형을 가지고 놀던 어린 시절로 데려가주는 것 같다.

수많은 중세극 중에서도 세 번이나 본 작품이 있다. 프랑스의 돈키호테라고도 불리는 시라노다.

세 번을 보고도 더 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들었던 건 단순히 작품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라노가 가진 고독, 그 고독으로 표현되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 때문이었다. 시라노는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 록산에게 다른 남자의 이름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그는 자신 그대로를 나타내지 못한 채, 타인의 언어 속에서만 존재한다. 그 모습은 마치 달을 떠올리게 한다. 직접 빛나지 못하고 태양빛을 반사하며 조용히 세상을 비추는 존재. 시라노는 그런 존재이다.

작중에서 또한 그는 계속해서 달을 자신의 오래된 친구이자 최종 목적지, 더 나아가 달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듯한 표현을 한다.

이 글에서는 뮤지컬 시라노에서 그가 달과 자신을 연결지은 이유에 대해 생각보고자 한다.


-타인의 언어 속에서만 존재하는 시라노


앞서 말했듯이 시라노는 자신 그 자체로서 사랑하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이 아닌, 록산이 좋아하는 남성 크리스티앙의 존재 아래에서만 사랑을 표현할 수 있다. 그런 그의 모습이 태양(크리스티앙)이 아니라 그 빛을 반사해 록산을 비추며 따라다니는 위성이자 조용히 밤길을 비춰주는 달과 같아보였다.


-달과 미치광이의 어원


언어적인 측면에서 달과 미치광이를 뜻하는 단어의 어원 모두 luna라고 한다. 작중에서도 무모하지만 당당한, 그러면서도 결국은 해내고야 마는 시라노를 모두가 미치광이 취급을 한다. 따라서 시라노가 자신을 달에 투영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미치광이로서의 자의식과 순수한 낭만주의자로서의 자신을 빗댄 결과라고 생각한다.


-순수하고도 고결한 이상향


달은 전쟁으로 더럽혀진 현실과 다르게 고결하며 영원한 존재이다. 시라노는 고결하고 순수한 달을 이상향으로 삼는 동시에 록산에게, 세상에게 달같은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닿을 수 없는 이상향


달과 록산에게는 시라노가 닿고 싶어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록산과의 가까워질 수 없는 시라노의 고독과 고통이 달에 대한 상징성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달을 닮은 사람


달을 닮은 시라노는 결국 사랑하는 록산에게 달로서가 아닌 태양으로 마음을 전하고 그토록 꿈꾸던 달로의 여행길에 마지막 시를 완성한다. 끝까지 순수하고도 고결한 사랑을 해왔던 시라노, 그에게 달이라는 건 세상과 타협하지 못 했던 고결한 자의 자화상과도 같은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