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지만 비척비척 걸어 나와 사료통을 연다. 내 밥은 굶어도 꾸미 밥은 제때에 챙겨야 한다. 알러지 유발을 방지하기 위한 그레인 프리 사료로 정확히 25g을 그릇에 담았다. 냄새가 더 잘 퍼지도록 전자레인지에 10초간 돌려서 내려놓으니 오독오독 잘 씹어먹는다. 저게 뭐라고 저렇게 맛있게 먹을까 생각하며 가만히 보다 보니 약간 코코볼을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초코맛 시리얼, 우유는 조금씩 부어야 한다. 한 번에 많이 부으면 눅눅해지니까. 그런데 내가 꾸미 앞에서 코코볼을 먹어도 될까. 얘가 조금 혼란스러워할 것 같은데. 아무 의미 없는 생각들의 결론은 얼른 씻고 나가서 시리얼을 사 와야겠다는 결심이다. 꾸미 밥을 챙기겠다고 일어났는데 결국엔 오늘도 꾸미가 내 끼니를 챙긴 셈이다.
나는 유독 환절기에 약하다. 그래서 해마다 이 맘 때쯤 되면 꼬질꼬질한 상태로 침대에서 훌쩍거리면서 꼬박 한 달을 보내고는 했다. 그럴 때마다 사람이 물 한 방울 없이도 익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말도 안 되는 생각이기는 하지만 무력감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은 10년 전 계곡에 빠졌을 때의 느낌과 똑같아서 이렇게 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어쨌든 그래서 환절기가 시작된 지난 한주도 나는 침대에 누워 익사할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다만 작년과 차이가 있다면 이번엔 내 우울함이 아닌, 눈치 없이 해맑게 내 얼굴을 핥고 있는 꾸미의 침에 잠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울할 때 보이는 반응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사람이 많이 못나지는 편이다. 안 먹고, 안 씻고, 안 나가고, 안 잔다. 일상이 무너지면 사람이 무너지는 건 시간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꾸미는 의도치 않게 내 일상을 지켜내 나를 이번 환절기 우울증에서 무사히 건져 올려줬다.
하루에 세 번 있는 꾸미의 식사시간은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공복시간이 길어지면 토를 하게 되고 꾸미는 아직도 마른 편이라 부지런히 먹여 살을 찌워야 하기 때문이다. 꾸미가 사료를 먹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나는 사람인데 동물이 밥을 먹는 걸 보고 입맛이 돈다는 게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꾸미가 먹방 bj로서의 자질이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거니까. 그래서 사료를 먹는 꾸미 옆에서 얼떨결에 나도 같이 밥을 먹는다.
밥을 다 먹고 나면 그때부터 체력 단련 시간이 시작된다. 새끼 강아지들의 활동량은 엄청나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요새 꾸미가 꽂힌 건 잡기 놀이다. 밥그릇을 비운 꾸미가 몸을 낮추고 으르렁 대면 나는 최선을 다해 꾸미를 잡는 척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30분 내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꾸미를 쫓아가야만 한다는 것이다. 잠깐이라도 쉬면 왜 안 쫓아오냐고 왕왕 짖어대는데 아랫집 윗집까지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라 나는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사뿐사뿐, 하지만 빠른 속도로 뒤를 쫓아야만 한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심각한 사회문제에 나까지 일조할 수는 없다. 그렇게 30분간의 숨 막히는 추격전을 찍고 나면 묘하게 건강해진 느낌이 든다. 이게 바로 전 세계 의사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는 '최소한 일주일에 세 번, 30분씩, 땀이 조금 흐를 정도'의 그것임을 깨닫는다.
꾸미는 아직 접종이 다 끝나지 않아서 산책을 나갈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집에만 있게 하면 답답할까 봐 옥상에서 바람을 쐬이고는 한다. 옥상에서 딱히 많은 걸 하는 건 아니다. 아직은 바깥이 익숙하지 않은 꾸미가 내 뒤를 졸졸 쫓아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가끔은 조심조심 고무공 놀이를 하고, 그러다 지치면 같이 평상에 누워버린다. 따뜻한 꾸미를 안고 가만히 햇빛을 받다 보면 왜 내가 우울해하고 있었는지 잠깐은 잊어버릴 수 있다. 우울증 완화를 위해서는 일정 시간 이상 햇빛을 쬐는 것이 좋다던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나 보다. 그런데 사실 옥상에서 일광욕을 하는 정도의 노력은 전에도 많이 했었다. 그럼에도 최근에서야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님을 느낀 건 전과 달리 내 품에 나보다 체온이 조금 더 높은 강아지가 안겨있기 때문일 것이다. 온기가 주는 위로에는 많은 힘이 있다는 걸 전에는 알지 못했다.
한 달은 앓았을 환절기 우울증이 일주일 만에 끝나버렸다. 10년 넘게 나를 쫓아다니던 고질병이 이렇게나 싱겁게 나아버리다니 '명의 꾸미 선생'이라고 명찰이라도 달아주고 싶었다. 처음 꾸미를 데려왔을 때, 나는 오만하게도 '내가 너를 구했어'라고 생각했다. 그래 놓고 막상 내가 꾸미에게 해준 것은 그리 대단한 일들이 아니었다. 배곯지 않고 불편하지 않게 잠들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이 정도는 아마 내가 아닌 다른 누구라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꾸미가 나에게 해준 일들과 새롭게 알려준 감정들은 오직 꾸미만이 가능한 것들이었다. 나는 이번 환절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많은 환절기들도 더 이상 힘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비가 내리던 그 여름날 보호소에서 내가 꾸미를 구한 것이 아니라, 비가 내리던 우울한 날들에서 꾸미가 나를 구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