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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ennyy Aug 14. 2020

우리 개는 천재예요!

엄-마-해봐, 엄.마!



아무래도 우리 개가 천재인 것 같다. 사실 보호소에서 데려온 첫날부터 어느 정도 의심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함께 지낸 지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뻐 보이고, 팔은 안으로 굽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지만 나는 그런 식의 주관적인 판단과는 거리가 먼 부류이다. 오직 사실에 기반한 논리적인 추론으로만 도출해낸 결론, 우리 꾸미는 천재다.




꾸미를 데려온 다음 날, 이른 사춘기를 호되게 겪고 있는 막내와 엄마 사이에 말다툼이 있었다. 감정이 격해진 막내가 울며 엄마에게 말대답을 하자 꾸미는 막내에게 맹렬하게 짖어댔다. 집에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짖지 않던 녀석이 처음으로 큰 소리를 냈다. 사회생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량은 바로 분위기 파악 능력이다. 순간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고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하는 것. 스물여섯의 백수는 그 능력이 부족하여 그 와중에 소파에 누워 과자를 주워 먹고 있었고 생후 2개월의 강아지는 뛰어난 분위기 파악 능력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언제든 상황에 개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꾸미는 자신이 어느 편에 서야 할지까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보호소에서 집까지 데려왔으며, 이 곳 구성원들의 식량을 책임지고, 다른 인간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무리의 리더. 꾸미는 단 하루 만에 이 모든 걸 깨닫고 엄마의 편에서 막내에게 으르렁댔다.엄마에게 말대답하는 자식을 혼내주는 강아지라니. 유교사상을 뼈에 새긴 K-시고르자브종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시고르자브종 말이 나왔으니 꾸미의 태생에 대한 이야기도 안 할 수 없다. 특정 태생을 근거로 유전적 우월을 주장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발언임에 틀림없으나 꾸미는 강아지이다. 나는 지금 강아지 대상의 육아일기를 쓰고 있음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 믹스견, 잡종, 발바리. 이름은 다르나 모두 꾸미와 같은 시고르자브종을 가리키는 말이다. 종이 다른 두 강아지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들은 특정 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유전적 질병에서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다고 한다. 그리고 꾸미가 이 설명에 대한 살아있는 증거이다. 꾸미는 보호소에서 온 당일부터 배변을 가리기 시작했다. 욕실 앞 발닦개나 바닥에 널브러진 내 옷을 배변패드로 착각하는 실수를 하기도 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실수일 뿐이다. 실수는 성공의 이모, 꾸미는 이제 완벽하게 배변을 가린다. 생후 2개월의 강아지는 사람 나이로 치자면 3세 정도이다. 내가 세 살 때는 기저귀를 차고 있었지 내 발로 화장실에 직접 걸어가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꾸미가 천재가 틀림없는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다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처럼 보호소에 있던 검정 강아지는 '꾸미'라는 이름의 우리 집 귀염둥이가 되었다. 그리고 꾸미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노란 집에 누워 세상모르고 자다가도 자신의 이름이 들리면 귀를 팔락거리고, 웅얼웅얼 다른 말을 건네면 쳐다도 보지 않다가 꾸미야 하고 부르면 고개를 든다. 물론 알아듣는 것과 부르면 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하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름이 꾸미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건 자아개념이 생겼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일주일 새 꾸미에게는 쭈꾸미, 수수부꾸미, 마이꾸미 등 다양한 별명이 생겼고 꾸미는 이 모든 별명에 다 반응한다. 특히 이 중 '쭈꾸미'는 꾸미가 사고를 칠 때 주로 부르는 별명인데 열심히 휴지를 뜯다가도 멀리서 쭈꾸미하고 부르면 바로 도망가는 지경에 이르렀다. 역시 상황 판단 능력이 대단하다.







꾸미가 천재견임이 명확해진 이상 그에 맞는 교육을 시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새는 꾸미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다. 엄-마-해봐, 엄.마! 나는 꾸미의 엄마가 아니고 언니이지만 왠지 모든 언어의 첫걸음은 '엄마'라는 단어가 아니면 안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다. 예전에 유튜브에서 꾸미와 같은 시고르자브종이 '엄마'라고 말하는 영상을 봤었다. 사실 엄마보다는 '어우므아우'에 가까운 소리였지만 어쨌든 나는 그 영상에서 가능성을 보았다. 물론 꾸미는 내가 그럴 때마다 당황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기는 한다.


꾸미의 그 당황스러운 눈빛을 보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내가 6살 무렵, 엄마는 나에게 장난감 피아노를 한대 사주셨다. 방에서 그걸 혼자 가지고 놀던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어떤 버튼을 눌렀고 장난감 자체에 녹음된 곡이 재생되었다. 그리고 매끄러운 연주가 방문 틈으로 새어나가자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엄마는 우당탕 달려와 기대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생각해보면 그 곡은 피아노를 단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유치원생이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지만 순간적으로 우리 애가 영재였구나라는 희망을 품게 하기에는 충분했었나 보다. 엄마의 설레는 얼굴과 멀뚱히 놓여있던 내 두 손의 대비가 얼마나 머쓱하고 당황스러웠는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난다.


물론 엄마는 그 후에 당신의 큰 딸에게 음악적 재능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를 주판 학원에 보내셨다. 아마 꾸미도 그래서 내가 말을 가르치려 할 때마다 당황스럽게 바라보는 것일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음악적 천재가 아니었지만 우리 꾸미는 정말 천재견이니까. 우리 개는 천재예요! 천재 맞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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