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새벽에 절대 해서는 안될 일이 딱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술을 마시는 것이고 둘째는 술을 마시고 글을 쓰는 것, 마지막 세 번째는 그 글을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세 가지를 지금 동시에 하고 있다.
무언가 굉장히 많이 낡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남들은 항상 새롭거나 잘 관리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내 안만 낡고 지친 듯했다. 물론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법이다. 그리고 모든 문제는 항상 거기서 시작된다.
3년 전쯤 인스타그램을 열심히 하던 시절이 있었다. 정사각형 모양의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2호선을 타고 밤낮없이 돌아다니던 때. 그때의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했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그때는 지금처럼 낡고 지친 상태는 아니었다. 아니 설령 그랬다 하더라도 핸드폰으로 사진 한 장 찍을 여력은 남아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인스타그램에 속지 않는다. 하지만 침대에 누워 손가락으로 세상을 보는 나보다는 화면 속에서 행복한 척이라도 할 열정이 남아있는 누군가가 더 나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 우울이 '인스타그램에 게시물을 올리지 않아서 그런 것이다.'라고 정리된다면 조금 억울할 것 같다. 술 먹고 인터넷에 올릴 글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하기에는 민망한 말이지만 나는 그 정도로 관심에 목마른 상태는 아니다. 그래서 그보다는 아주 조금 더 고차원적인 이유를 대보자면, 더 이상 예전처럼 확실하게 좋고 싫은 감정이 없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몇 년 전의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좋았고, 도수가 높은 술로 빠르게 취하는 것이 좋았고, 모든 일정을 제쳐놓고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좋았다. 싫은 것은 다 적을 수 없을 정도로 무궁무진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예전의 그때처럼 그 무엇도 좋거나 싫지 않다. 바로 이 느낌이다. 내 안의 무언가가 낡아버린 느낌.
백번 양보해서 싫은 게 없다는 것은 나이를 먹으며 융통성이 생겼나 보다 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나를 미쳐있게 했던 것들이 더 이상 좋지 않은 상황은 조금 위험하다. 물론 사람의 감정은 변한다. 어제는 맛있었던 케이크가 오늘 다시 먹으면 너무 달게 느껴져 질릴 수도 있다. 그런데 달콤한 케이크가 질린다면 씁쓸한 아메리카노라도 좋아져야 하는 게 아닌가. 케이크도 커피도 그저 그렇다면 앞으로 나는 간식으로 뭘 먹든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두렵다. 이대로 내가 더 이상 무엇도 좋아하지 못하게 될까 봐. 앞으로의 내 인생에 케이크도, 커피도 없을까 봐.
나는 이제 고작 스물여섯이다. 마냥 어린 나이는 아니지만 많다고 하기에는 적은 나이. 그래서 이런 걱정을 하는 게 그다지 의미 있지 않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알고 있는 것과 느끼는 것은 다른 법이고, 문제는 항상 여기서 시작된다. 그리고 오늘의 문제는 내가 새벽 한 시에 이런 글을 썼다는 것이다. 술잔에 넣었던 얼음이 다 녹아버렸다. 오늘 잠이 들어 술이 모두 깨고 나면 이 글의 불안들도 얼음처럼 녹아 없어 지기를 바란다. 덧붙여 조금 더 욕심을 내보자면 다시는 술을 마시고 글을 쓰지 말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