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도 이제 별로 남지가 않았다. 11월은 왠지 모르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서울독립영화제2018이 오는 11월 29일 개막한다. 서울독립영화제는 본선경쟁 부문 34편, 새로운선택 부문 19편, 특별초청 부문 35편, 특별기획 20편 그리고 해외초청 8편까지 한 해를 결산하는 화제작과 반짝이는 새로운 작품을 총 116편 상영하며, 더불어 통일영화 시상식, 배우 프로젝트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특히 올해는 주말에 한하여 기존 5개관에서 6개관으로 확대 운영하여 보다 다채롭고 풍성한 섹션을 구성하였다.
얼마전 서울독립영화제2018이 프로그램위원회 추천작 리스트를 공개했는데 추천작들은 탄탄하고 개성 있는 서사가 돋보이는 작품부터 화제작까지 총 장·단편 17작품을 공개 했다. 빈PD는 17작품을 모두 보고 싶지만 물리적인 시간으로 다 볼 수 없기에 어떤 영화를 보러갈지 고민 했는데 이번 영화제때 보러갈 영화들을 독자들에게 소개 하겠다.
‘작은 빛’ <감독 : 조민재 (경쟁장편 4) *월드 프리미어>
뇌수술을 앞두고 기억을 잃을 수 있다는 선고를 받은 주인공은 가족을 포함하여 주변의 인물과 조심스럽게 어울린다. 낮고 소소한 음성 사이로 아무렇지 않게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흡사 실제를 기록하는 다큐멘터리와 닮아 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드라마틱한 사연이 서슴없이 튀어나오지만, 영화는 좀처럼 동요하지 않는다. 건조하게 삶을 관조하나, 위악적이지도 냉소적이지도 않은 특별한 태도이다. 기억을 간직하고 싶은 주인공은 캠코더를 통해 기록하며, 먼지처럼 반짝이던 기억의 편린을 수집하는데, 나아가 이 작품의 카메라가 그러하다. ‘작은 빛’은 빛으로서의 영화와 기억으로서의 영화가 절묘하게 조합되어 있는 작품으로, 우리에게 자신을 처음 선보이는 미지의 감독의 첫 연출작이다.
‘메기’ <감독 : 이옥섭 (경쟁장편 9)>
국가인권위원회의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메기>는 영화적 매력으로 계몽을 압도하는 작품이다. 변두리 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윤영이 발견한 쪽지는 영화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암시이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성관계 엑스레이가 발견되고, 서로를 의심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어항 속 메기는 전지적 시점으로 모자라고 서툰 인간 사회를 조롱하듯 관찰한다.
그러는 가운데 도시 곳곳에서 진짜 구덩이가 생긴다. 청년들은 맨홀을 메우는 일자리에 동원된다. 사회는 그렇게 굴러간다. 영화가 전개되며, 인물들은 각자의 구덩이를 만나게 된다. 곳곳에 재미난 은유가 숨어있는 재기발랄할 작품이다.
‘무녀도’ <감독 : 안재훈 (초청장편 15)>
한국 단편문학 애니메이션을 창작해 왔던 안재훈 감독의 신작 <무녀도>는 시리즈의 정점에 있는 작품이다. 김동리 원작의 <무녀도>는 토속적 샤머니즘과 기독교의 세계관이 충돌하는 근대 한국을 배경에 두고 있다.
무녀 모화와 아들 욱이가 사상적으로 대립하고 여기에 귀머리 딸 낭이의 슬픈 사연이 전해진다. 김동리의 문학의 서사를 충실히 따라가며 펼쳐지는 애니메이팅은 화려한 색과 움직임으로 우리를 개화기에 시간으로 초대한다.
안재훈 감독은 여기에 춤과 노래를 더해 놀라운 한국적 뮤지컬 애니메이션을 탄생시킨다. 동양적인 이미지와 서양적인 사운드를 결합시킴으로써, 서사 내부에 동서양의 갈등이 영화적 구조를 통해 봉합되는 것 또한 흥미롭고 상징적이다.
‘여보세요’ <감독 : 부지영 (통일기획 1) *월드 프리미어>
힘겹게 살아가는 남한의 여성노동자 정은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부양한다.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는 6.25 때 헤어진 여동생을 보고 싶어 한다. 그러던 정은에게 어느 날 북한 여성으로부터 우연히 전화가 걸려온다.
여성은 다짜고짜 남한에 있는 아들을 찾아 달라 간청한다. 황당한 제안을 쌓여가며 전화를 사이에 둔 두 여성은 아픔을 공감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먼 우주와의 교신을 상상하는 열린 가능성의 시대에 지척의 거리에서 오해와 편견을 쌓아가는 남과 북의 현실을 섬세하게 풀어나가는 작품으로, 부지영 감독이 2018년 통일영화 제작지원을 통해 완성했다.
‘우리 잘 살 수 있을까?’ <감독 : 강이관 (통일기획 1) *월드 프리미어>
강이관 감독이 2018년 통일영화 제작지원을 통해 선보이는 <우리 잘 살 수 있을까?>는 뮤직 댄스 무비라는 독창적인 장르에 도전, 새로운 출발선에 있는 남녀의 긴장과 케미를 현재의 남북 관계에 빗대어 은유한다.
비보이계의 전설 하위동이 영화 속에 비보잉 댄스를 안무가 최남미가 화려한 얼반 댄스를 보여준다. 결혼을 앞둔 두 남녀가 현실에 쌓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른 ‘춤’을 인정하는 것이 출발이 된다.
비디오와 사운드가 화려한 독특한 영화를 통해 남북에 대해 가졌던 무거운 고정관념도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다.
글·사진 빈픽쳐스 박원빈PD wb@beenpictur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