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실수... 다들 해보셨죠?
이미 벌어진 것을 우째! _ 정수
‘흭득하다’라는 말을 아세요? 모르시겠죠. 당연합니다. 제가 만든 단어거든요.
최근에 알았습니다. 바로 ‘흭득’이란 단어가 없다는 것을요! (어머나)
저는 흭득이라는 말이 있다고 믿으며 31년을 살았습니다. 획득의 유사어처럼요.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냐고 물으신다면 저도 명확히는 잘 모르겠습니다. 단어를 배울 때 국어사전보다는 여러 매체와 사회생활을 통해 배우곤 하잖아요. 출처는 모르겠지만 ‘획득’과 ‘흭득’이 제 머리 속에 공존하며 수많은 상황 속에 흭득을 사용해버리고 만 거죠.
”정수 대표님, 왜 자꾸 흭득이라고 써요?”
지민이의 질문에 깨우쳤습니다. 그동안은 모두들 ‘획득’과 비슷한 생김새덕에 잘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제가 ‘또’ 오타를 냈겠거니 생각하며 용인해주신 것 같습니다. 제가 그동안 잘못 기재해 착각하게 만들었던 다른 분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리며 31살에 새로운 가르침을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
저는 오타를 많이 냅니다. 당연히 일부러 오타를 내는건 아니에요. 진짜로요. 믿어주세요.
두대표 채널 <사무실 웃긴 오타 모음> 오늘자(10/28)로 43.5만회를 기록했네요.
네. 역시나 여기서도 모든 오타의 주인공은 저입니다.
성격이 급해 엔터를 빨리 쳐버리는 탓, 지인들을 무한 신뢰하는 탓입니다. 메시지에 오타가 있다고 해서 내용 전달에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냥 보내곤 합니다. 그 정도로 서로를 오해할 사이가 아니라고 굳건하게 믿고 있기 때문이죠.
제 말의 뜻을 캐치하면서 두뇌 발달? 뭐 그런것도 되지 않을까요? 선한 영향력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되/돼, 안/않 등 사람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오기재는 하지 않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저랑 카톡하기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렇듯 저는 참 ‘실수’에 대해서는 관용적인 편입니다. 항상 이렇게 생각해요. 본질은 따로 있다. 실수보다는 그 안에 진짜 하려고 했던 것을 보자. 실수는 고의성이 없다는 점에서 조금은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하고 살잖아요. 좀 더 저 사람이 하려고 했던 진짜 방향과 의도를 먼저 살펴보게 되면 작은 실수는 문제처럼 느껴지지 않게 됩니다. 그럼 좀 더 남의 실수에 여유롭게 느끼게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아마 다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의 문제겠죠. 실수로 인해 뒤따라오는 결과들이 우리를 1평도 안되는 감옥에 갇히게 만들곤 합니다. 이럴 때는 외쳐보세요.
‘이미 벌어진 것을 우째!’ 그리고 ‘미안합니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기에, 나의 옆에 있는 누군가의 실수에 대해서 빠르게 정정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마주하면 이해의 문이 열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들 비슷하거든요. 벌어진 일을 주워담기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실수의 인정과 관용 속에서 다음을 바라보는 것이 좀 더 ‘나’와 ‘우리’를 지키고 나눌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치열한 삶 속에서 작은 실수에 연연해서 스스로를 괴롭히고 질책하기 보다는 ‘이미 벌어진 것을 우째! 미안합니다!’ 로 시작해봅시다!
꼭꼭 숨어라 실수가 '보일라' _ 유빈
저는 정수 대표가 맞춤법을 틀리고서도 의연할 때 기묘한 쾌감을 느낍니다.
실수가 스스로를 대변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사람의 태도 때문에요. 저는 실수의 ㅅ만 마주해도 손가락 새로 땀이 채는 인간이거든요. 그런 저에게 ‘실수는 본질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정수 대표의 호탕한 성격은 추구미이자 영원한, 도달 불가능의 영역입니다.
제 실수담도 하나 풀어볼까요. 저는 첫 직장으로 신문사를 다녔어요. 온라인 기사를 쓰는 일이 주 업무였는데요. 트래픽을 위해서 해외 기사 중에서 국내 네티즌이 좋아할 만한 기사를 골라 번역하곤 했죠. 그날은 한 노부부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번역했어요. 기사 내용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사랑이 담긴 중요한 말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 앞 어두에 “Voila”라는 말이 있었어요.
챗GPT가 없던 시절, 네이버 파파고가 있었죠. 1차적으로 파파고의 힘을 빌렸는데, 이 친구가 Voila를 ‘보일라’라고 번역한 거예요. 기사에는 노부부의 성만 있었고,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아서 저는 남편이 아내를 부르는 애칭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그것을 수정하지 않고, 보.일.라. 라고 써서 기사를 제출했죠. 퇴근길에 기사 댓글이 달린 거예요.
“Voila는 보일라가 아니라 여봐, 하고 부르는 말입니다. 기자가 찾아보지도 않고 썼네 ㅉㅉ”
그 댓글을 읽고, 지하철에 오르려고 서 있다가 그대로 열차를 못 타고 말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 기사를 바로 고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어요. 퇴근 시간이 지나 부서에서 가장 높은 분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죠. 지금 같은 배포였으면 ‘걍 내일 출근해서 고치지 뭐~’ 하거나 아예 신경도 안 썼을 텐데요. 그 당시에는 그게 정말 미친 실수처럼 느껴졌어요. 저 뒤에 붙은 ㅉㅉ이 진짜 혀를 차는 소리가 되어 제 귀에 들렸다니까요.
결국 부장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수정을 요청드렸고, 제가 듣기에 심드렁했던 그 반응도 기억이 납니다. 어찌저찌 고쳐졌죠. 고쳐지기까지 새로고침을 수백번을 하고요.
저는 그 실수가 왜 그렇게 뼈에 사무치듯 괴로웠을까요? 지금 와서는 Boila인지, Vola였는지도 헷갈리는데 말이에요. 가만히 그 날로 돌아가보면 ‘실수 하나가 저를 전부 대변할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위축된 사회초년생이 서 있습니다. 그때보다 어른이 된 지금에도 실수 구덩이에 빠질까 불안에 떠는 저를 발견할 때가 많아요. 저 같은 불안이들, 많으시죠? 모두 정수 대표 같지는 않죠?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그 어떤 실수라도 후일에는 ‘썰’이 될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제가 보일라를 쓰든 보일러를 쓰든 아무도 기억 못할 테니까요. 지금 이 글을 읽은 여러분도 5년 뒤에는 다 잊어버리게 되고, 언젠가는 다들 죽으니까……(불안을 잠재우기 위한 극단적인 표현 송구합니다)
그럼 제법 용감해집니다. 인간이니까 실수하고, 인간이니까 잊습니다. 괜찮아요... 우리... (밤새 내 머리를 채우는 과거의 실수들을 조용히 묻으며…) 괜찮겠죠? 괜히 가슴을 부풀리며 따라 외쳐봅니다. 이미 벌어진 것을 우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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