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맥주 마니아의 로망, 성 식스투스 수도원을 가다
맙소사, 사람이 이렇게 많을 줄이야. 내가 기대하던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베스트블레테렌(Westvleteren) 직영 레스토랑 ‘인 데 브레데’(In de Vrede)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직원들은 주문을 받고 음식과 맥주를 나르느라 정신없었고, 출구 옆에 붙어있는 작은 기념품 매장은 맥주를 구매하려는 관광객들로 문전성시였다.
나는 직원이 안내하는 테이블에 앉자마자 빠르게 메뉴를 둘러봤다. 맥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베스트블레테렌 블론드, 8, 12, 모두 병맥주였기에 특별히 고를 것도 없었다. 음식도 고민없이 플랑드르 스타일의 고기 요리를 주문했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하나 더 남아있었다. 기념품 매장에서 맥주를 사야 했다. 이미 오후 6시가 넘어 매장 문을 닫을 수 있기에 서둘러야 했다. 중년의 여성으로 보이는 판매원의 얼굴은 이미 짜증이 붙어있었다. 계속 몰려드는 사람들로 지쳐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이 순간을 몇 년 동안 기다렸던 나에게 그녀의 상태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기념품 매장 뒤로 베스트블레테렌 12 박스가 눈에 띄였다. 베스트블레테렌 12라니, 이렇게 운이 좋을 수가. 오늘 이 맥주가 내 손 안에 없다면 평생 한으로 남을 게 분명했다. 기념품 매장 문을 닫기 전, 간신히 줄을 서 맥주를 구매했다. 더 사고 싶어도 팔지 않는다. 이렇게 콧대가 높을 수가 있을까.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그게 바로 사람들을 이곳으로 불러 모으는 힘이었다.
베스트블레테렌은 서쪽(west)과 블레테렌(vleteren)이 합쳐진 단어다. 블레테렌은 벨기에 플랑드르 서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프랑스 국경과 불과 15km 남짓 떨어져 있다. 이곳에 전 세계 맥주 마니아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장소가 있다. 베스트블레테렌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성 식스투스 수도원(Saint Sixtus abbey)이다.
베스트블레테렌 수도원으로 더 알려진 성 식스투스 수도원은 1831년에 설립됐다. 맥주는 수도원이 시작된 지 7년이 뒤인 1838년부터 만들어졌다. 일부 수도사들은 스쿠르몽 수도원으로 건너가 시메이 맥주가 탄생하는데 일조했다.
베스트블레테렌은 다른 벨기에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달리 독일 군에 점령당하지 않는 행운을 누렸다. 구리 케틀을 뺏기지 않은 수도원은 세계 대전 중에도 꾸준히 맥주를 생산했다. 여전히 수도사들이 맥주 양조에 직접적으로 관여한다 점도 특별하다.
허나 전 세계 맥주 마니아가 베스트블레테렌을 주목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다른 트라피스트 맥주가 합법적인 유통 채널에서 비교적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반면 베스트블레테렌을 마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 수도원을 방문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 식스투스 수도원은 맥주 유통을 하지 않고 있다.
금지된 사랑이 더 간절한 법. 희소성은 신비로 바뀌었고 욕망이 됐다. 이 맥주를 구한 사람은 세상 보물을 얻은 냥, 우쭐거릴 수 있었고 이 맥주의 시음기를 쓴 사람은 어떤 커뮤니티에서도 존재감을 뽐낼 수 있었다.
만약 운 좋게 수도원을 방문한다 할지라도 원하는 만큼 구매할 수도 없다. 수량에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방문객은 6개 들이 한 박스만 살 수 있고, 심지어 현지인들도 24병 한 세트만 허락된다. 온라인을 통해서만 예약할 수 있으며 재판매는 금지되어 있다.
물론 이 맥주가 단순히 희귀성만으로 높은 명성을 얻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베스트블레테렌 12는 수년 전부터 주요 미국 맥주 평점 사이트에서 모두 100점을 맞으며 최고의 맥주로 칭송받고 있다.
베스트블레테렌의 인기를 가늠할 수 있는 일이 2012년 미국에서 있었다. 수도원 지붕 공사 자금을 위해 한시적으로 베스트블레테렌 12 6병 세트를 미국에 판매했는데, 24시간이 되지 않아 준비된 1만 5천 세트가 모두 팔려버린 것이다. 가격은 무려 84.99달러였다.
어떻게 수입됐는지 알 수 없지만 한국에도 잠깐 보였던 적이 있다. 330ml 한 병에 무려 56,000원, 충격과 공포에 휩싸일만한 가격이었지만 나 같은 사람은 눈물을 머금고 구매했다. 아니, 벨기에 가는 비용보다는 훨씬 더 저렴하지 않은가. 게다가 이런 일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다니, 희귀한 것을 향한 인간의 욕망은 두렵기까지 하다. 이후 가격이 24,000원까지 떨어지긴 했지만 베스트블레테렌 12는 언제나 가까이하기에는 너무 먼 맥주였다.
이런 까닭으로 자연스럽게 성 식스 투스 수도원은 이번 여행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 베스트블레테렌을 다녀온 사람들의 무용담은 기대를 더욱 부추겼다. 인자한 미소를 띤 늙은 수도사가 수도원에서만 허락된 신비의 맥주를 건네는 상상은 아주 오래전부터 품고 있던 로망이었다.
버스는 북서쪽으로 한참을 달렸다. 프랑스어 간판은 어느덧 네덜란드어로 바뀌어 있었다. 플랑드르로 들어온 것이다. 이따금 보이던 민가가 사라지고 작은 도로가 익숙해지자 수도원이 가까워졌음을 직감했다. 점점 주위는 흰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을 등진 초록색 들판으로 가득해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작은 도로의 끝에 왔다고 생각한 순간, 수도원 지붕이 나타났다. 플랑드르에 다시 온 것을 환영하듯, 붉은색 벽돌로 된 외벽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수도원 주위는 한가롭고 조용했다. 덩그러니 수도원만 있는 이곳에 누가 오려나 하는 걱정은 직영 레스토랑 입구에 다가갈수록 기우로 변했다. 이미 그곳은 세계 전역에서 온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성 식스 투스 수도원은 베스트블레테렌 블론드, 8, 12, 세 종류 맥주를 양조한다. 가격은 모두 병당 5유로, 다른 트라피스트 맥주에 비해 다소 높았지만 한국의 56,000원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저렴했다. 주문한 맥주는 모두 뚜껑이 오픈된 채 서빙됐다. 병에서 진행되는 2차 발효는 가끔 과도한 탄산을 만들기도 한다. 아마 탄산으로 맥주가 넘칠 수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미리 맥주를 오픈한 뒤,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베스트블레테렌은 시그니쳐 병으로 유명하다. 마치 목도리를 두른 것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맥주병에 라벨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맥주 종류는 라벨이 아닌 뚜껑의 색으로 알 수 있다. 그런데 와서 보니 병마다 라벨이 붙어 있다. 아마 정책이 바뀐 모양이다. 동그란 라벨은 나름 키치 했지만 예쁘지는 않았다. 로고가 어설프게 박힌 라벨이 오히려 맥주의 아우라를 앗아간 듯 보였다.
초록색 라벨을 달고 있는 베스트블레테렌 블론드는 5.6% 알코올을 가진 벨지안 블론드 에일이다. 이 맥주는 1999년 수도사들이 마시던 맥주였던 베스트블레테렌 6를 대체하며 세상에 나왔다. 불투명한 황금색 잔에서 향긋한 수지 향이 물씬 느껴졌다. 적절한 쓴맛과 가벼운 바디감이 좋은 균형감을 이루고 있었다. 첫 잔으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맥주였다.
파란색 라벨의 베스트블레테렌 8은 8% 알코올을 뽐내는 벨지안 다크 스트롱 에일이다. 고동색에 가까운 마호가니 색은 언제 봐도 매력적이다. 뭉근한 초콜릿과 감초 그리고 묵직한 쓴맛은 다크 초콜릿을 마시는 것처럼 느껴졌다. 같이 곁들인 소고기 스튜와는 환상적인 궁합을 보였다. 구운 고기라면 종류에 상관없이 잘 어울릴 듯했다.
마지막으로 나온 맥주는 바로 베스트블레테렌 12였다. 여전히 최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맥주는 10.2% 알코올을 품고 있는 콰드루펠이다. 1940년부터 양조되고 있는 살아있는 전설이다. 라벨이 없는 녀석만 보다 노란색 라벨이 붙은 병을 보자 왠지 어색했다.
성배처럼 생긴 전용 잔에 천천히 따르자 고혹적인 흑색 위로 아이보리 색 거품이 풍성하게 올라왔다, 이윽고 건자두 향이 묻은 다크 초콜릿, 섬세한 볶은 견과류, 알코올의 따스함이 코와 입을 물들였다. 묵직한 바디감이 혀 위에 눌러앉는 순간, 압도적인 균형감과 복합성으로 입에서는 감탄이 흘러나왔다. 당연히 한 병으로는 부족했다. 이미 알딸딸한 기운이 얼굴에서 느껴졌지만 어느덧 잔에는 새로운 12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베스트블레테렌에 왔지만, 한 편으로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과도한 이익을 막기 위한 유통제한과 소량생산이 오히려 이곳을 더 시장통으로 만들고 있었다. 고즈넉한 수도원을 바라보며 베스트블레테렌 12를 즐기는 상상은 일찌감치 깨졌다. 혁명을 파는 일이 더 부각되고 각광받는 자본주의의 아이러니를 베스트블레테렌에서 체감하다니. 한 편으로는 트라피스트 맥주의 진정성이 소비자에게 미치는 영향을 깨닫는 기회기도 했다.
소란스러운 베스트블레테렌을 뒤로하고 바삐 버스에 올랐다. 아쉬운 마음도 있었지만 덩케르크로 가야 했다. 2차 세계 대전 초반 최대 규모의 철수 작전이 펼쳐졌던 덩케르크는 여기서 불과 3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우리에게는 2017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로 익숙한 곳이다.
덩케르크 철수 작전은 전쟁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기적이었다. 1940년 5월 프랑스가 구축한 마지노선을 뚫은 나치는 순식간에 연합군을 괴멸될 위기로 내몰았다. 덩케르크 해변에는 수 십만 명의 군인들이 포위된 채 갇혀있었다. 그러나 거칠 것 없이 진격하던 독일 군이 갑자기 공격이 멈췄고 그 사이를 틈타 5월 26일부터 6월 4일까지 30만 명 이상의 영국군과 프랑스군이 군함과 민간 배를 통해 영국으로 철수했다. 그리고 이 작전의 성공은 연합군의 사기를 진작시키며 전쟁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됐다.
국경을 넘어 프랑스에 접어들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오늘 머무는 호텔은 덩케르크 해변 앞에 있었다. 체크인을 마치고 곧바로 바다로 나갔다. 광활하고 길게 뻗은 모래사장을 밟으니 70여 년 전 철수를 갈망했던 군인들의 심정이 전해졌다.
지평선을 물고 내려가는 태양 옆으로 등대가 있는 방파제가 보였다. 영화에서 탈출을 위해 수 만 명의 군인들이 서 있던 곳이다. 독일 군의 공중 폭격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유일하게 군함이 정박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때도 노을은 방파제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겠지. 막다른 순간에 구조를 기다리는 젊은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평범한 일상을 그리워하지 않았을까. 영화 속 장면들을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상념에 젖었다.
그러나 곧 북해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 뺨을 때렸다. 마치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지금을 즐기라고 말하는 듯했다. 영화 속 우울한 덩케르크는 옆에서 함께 웃고 행복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서서히 지워졌다. 진한, 아주 진한 노을이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의 웃음을 품은 채, 지평선 너머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