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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한샘 Feb 21. 2020

부활을 꿈꾸는 대영제국의 맥주, 포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 포터의 심장을 뚫다.

색의 대비는 강렬함과 아름다움을 전달한다. 하얀 거품과 황금색 맥주가 주는 색의 대비는 다른 술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황금색 맥주 위의 흰색 거품도 분명 눈이 부시지만, 우주와 같은 검은색 맥주와 하얀 거품이 건네는 기품과 세련됨은 아름다움 그 이상이다.


아름다운 검흰(black & white) 맥주하면 바로 떠오르는 스타일이 스타우트(stout)다. 현재 스타우트는 어두운 색을 대표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에일 스타일 맥주다. 그러나 스타우트의 까만 유전자는 우주에서 물려받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 포터(porter)가 없었다면 스타우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포터는 대영제국의 산업혁명과 함께 전 세계를 호령했던 맥주 스타일이다. 하지만 포터의 화려한 과거를 기억하는 이들은 이미 100여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다행히도 포터는 스타우트라는 걸출한 자식을 낳았으며,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에 의한 유전자 복제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나고 있다. 



쓰리 쓰레즈, 브라운 에일 그리고 포터의 시작 


18세기 초 영국에서는 쓰리 쓰레즈(Three Threads) 라는 스타일의 맥주가 유행했다. 이는 세 가지 종류 에일(ale)을 섞어 1파인트(약 568ml)의 맥주잔에 팔던 방식이었다. 당시 펍 주인들은 세 가지 브라운 에일(Brown ale)을 섞거나 또는 에일(ale), 맥주(beer), 투페니(two penny*), 혹은 페일에일(pale ale), 마일드 에일(mild ale), 브라운 에일(brown ale)을 혼합해서 팔았다.

쓰리쓰레즈 (출처 : zythophile.co.uk)

종류야 어떻든 ‘쓰리 쓰레즈‘라는 것은 세 가지 맥주의 혼합물(Mixture of three types of beer)이였고, 펍에 따라 품질도 맛도 일정하지 않았다. 때로는 펍에서 맛이 변한(off) 맥주 또는 오래 숙성(aging)되어서 신맛이 나는 맥주를 감추기 위해  새 맥주와 섞어 팔기도 했다.


그런데 1722년 벨 브루어리(Bell brewery)의 랄프 하우드(Ralph Harwood)는 이런 쓰리 쓰레즈를  아예 양조 단계부터 만들어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예 다른 종류의 몰트를 섞거나 아니면 한 가지 몰트로 세 종류의 맥즙을 섞어서 양조했다. 대중들에게 제대로 된 맥주를 마실 권리를 돌려주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은 쓰리 쓰레즈를 자신의 브랜드로 상품화 한 것이었다. 당시 이 맥주는 인타이어 버트(entire butt)라고 불렸다.


한편 다른 곳에서는 세 가지가 아닌, 두 가지, 네 가지 또는 여섯 가지 맥주를 섞거나 심지어는 스물세 가지 맥주를 섞기도 했다. 다시 말해 당시에는 다양한 맥주를 섞는 칵테일 형태의 맥주 스타일이 일반적이었던 것이다.


이런 맥주 혼합물의 중심에 있었던 맥주는 브라운 에일(brown ale)이었다. 짙은 갈색을 띄는 맥주를 지칭하던 이 불분명한 스타일로 인해  ‘맥주 혼합물’의 색은 거의 검정색에 가까웠다. 



산업혁명, 노동자 그리고 포터의 전성기


18세기 이후 시작된 산업혁명은 사회의 구조와 방식을 완전히 바꾸기 시작했다. 식민 제국주의로 인한 시장의 형성과 증기기관을 통한 생산구조의 혁신은 인류 역사 상 유래 없는 비약적인 생산성을 불러왔다.


농촌의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었고 런던은 최첨단을 달리는 도시가 되었다. 해가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의 시작이었다.

1757년 템즈강 항구(출처 : 위키피디아)

런던 템즈강 항구에서 하역 노동을 하는 짐꾼들은 고된 노동을 끝낸 후 펍에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것이 중요한 일과 중 하나였다. 당시 펍은 노동자들의 여가시간을 책임져주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노동자들이 가장 좋아했던 맥주는 다름 아닌 인타이어 버트와 같은 어두운 색 맥주였다. 그리고 이 맥주는 짐꾼(porter)들이 애용하는 맥주라는 의미에서 포터(porter)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와는 다른 주장도 존재한다. 인타이어 버트가 판매 된 후, 펍에서는 더이상 맥주를 섞지 않고 양조장에서 이를 구매하여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때 양조장부터 맥주를 펍으로 배달하는 사람은 포터라고 외치면서 자신이 온 것을 알리곤 했다. 포터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했으며 노동자들만이 아닌 다양한 계층에게 소비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탄생 비화가 어떻든 250여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포터가 누구에 의해 발명되거나 시도된 것이 아니라 아주 자연스럽게 만들어지고 퍼지게 된 맥주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포터의 심장을 뚫은 자본주의


산업혁명은 자본주의를 더욱 가속화 시켰다. 공장제 산업의 발달과 무역의 증가로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은 투자수익율을 얻을 수 있는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된다. 당시 자본이 찾아낸 두 산업이 바로 은행과 맥주였다. 맥주는 은행 다음으로 가장 각광받는 산업 중 하나였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퍼블리칸(Publican)이라는 맥주 양조를 허가받은 사람들이 펍에서 맥주를 만들어서 팔았다. 가내수공업 또는 길드형태로 맥주를 만들어서 팔았던 것이다.


그러나 자본가들이 판매 수익 뿐만 아니라, 투자를 통해 수익을 남기는 자본 수익율에 초점을 맞추게 된 이후, 주식의 개념과 같이 맥주에 투자를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첫 번째 투자 대상인 된 맥주는 다름 아닌 대중들의 인기를 끌고 있었던 포터였다. 

19세기 포터 브루어리 (출처 : 구글 이미지)

투자 수익율을 위해서는 생산효율성 증대와 비용절감이 중요했다. 이를 위해 양조장 규모는 더 커지고 생산 기술도 향상되었다. 맥주 산업에서 자본에 의한 규모의 경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가내수공업의 형태였던 맥주 양조가 점차 기업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맥주 양조만을 위한 브루어(Common brewer)가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도 바로 이 때부터였다. 


또한 이 시기에 맥주의 유통구조도 바뀌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펍은 맥주를 직접 만들지 않고 공장에서 완성된 ‘제품’을 주문해 팔기 시작했다. 기업 형태의 양조장들은 자신들의 시장지배력을 강화시키기 위해 펍들을 일종의 ‘프렌차이즈’ 형태로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타이드 펍(Tied Pub)의 유래다.  


포터는 산업자본이 투자되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양조된 맥주였다. 즉 판매 수익률 뿐만 아니라 투자 수익률도 고려하여 만들어진 최초의 맥주였던 것이다. 1820년 포터는 최고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당시 두번째로 컸던 Truman, Hanbury & Buxton Brewery는 1845년에 무려 305,00 헥토리터의 포터를 양조할 수 있는 규모였다고 한다. 


19세기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의 등에 탄 포터는 런던 뿐만 아니라 영국 전체를 호령했고 심지어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수출되어 영국을 대표하는 맥주가 되었다. 



포터, 페일에일 그리고 쇠락


18세기부터 승승장구했던 포터는 19세기 중반 점차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바로 페일에일(Pale Ale)이라는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 때문이었다. 페일에일은 앰버(amber) 색을 가진 에일로 어두운 색이었던 포터에 지루해했던 대중들에게 새로운 트렌드로 다가왔다. 


페일에일은 18세기 런던에서 이미 양조되고 있었지만 런던의 경수(영구경수)는 밝은 색의 페일에일보다 어두운 색의 포터에 더 적합했다. 런던의 물로 만들어진 페일에일은 여러모로 풍미와 품질이 떨어졌다. 


하지만 1820년 ‘버튼 온 트렌트’라는 지역에서 색이 더 밝고 홉의 세련된 풍미를 갖는 페일에일이 만들어지며 전세는 역전된다. 

버튼 온 트렌트 바스 브루어리(출처 : 구글 이미지)

버튼 온 트렌트의 물은 같은 경수였지만 밝은 색 맥주를 만들기 적합한 물(일시경수)였다. 물 속에 있는 풍부한 황산염도 홉의 풍미를 이 전 맥주와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끌어냈다. 또한 산업혁명으로 만들어진 철로는 런던과 버튼 온 트렌트를 가깝게 연결시켜 ‘버튼 온 트렌트 페일에일’을 아주 훌륭한 상태로 런던으로 공급할 수 있게 했다. 


페일에일의 밝은 색과 부드럽고 세련된 홉의 풍미 그리고 드라이한 바디는 점점 포터를 시장에서 밀어냈다. 트렌드와 수익률에 민감한 자본은 그 눈을 포터에서 페일에일로 돌리게 되고, 이후 포터는 순식간에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1차 대전 이후 포터는 1940년 런던에서 생명을 다했을 뿐더러 1974년 기네스가 공식적으로 기네스 포터의 생산을 끝낸 이후, 그 존재를 찾기 힘들게 된다.



Stout Walker, 아임 유어 파더


1759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기네스라는 맥주 회사가 창업한다. 런던의 포터는 1770년 이후 아일랜드로 수입되어 큰 인기를 끌게 된다. 힘든 시기였지만 기네스는 오히려 런던의 포터를 철저하게 연구하여 자신들만의 장점을 갖춘 포터를 만들게 된다. 


다행히도 더블린의 경수는 까만 색 맥주를 만들기에 최고의 재료였다. 19세기 중반 기네스의 포터는 런던 포터의 품질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또한 자신만의 새로운 몰트 구성을 통해 더블린 포터만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당시 스타우트(stout)라는 단어는 스트롱(strong), 즉 ‘강한‘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특히 알콜 도수가 높은 포터는 스타우트 포터(stout porter)라고 불렸으며 프리미엄 포터로 판매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스타우트 포터는 단순히 ‘스타우트’라고 줄여서 사용되었고 포터가 자취를 감춘 후, 기네스는 스타우트를 어두운 색의 에일을 의미하는 자신들의 일반명사로 만들게 된다.


1880년 런던의 포터가 페일에일로 인해 쇠락해갈 때, 기네스는 오히려 어두운 색 맥주를 중심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낸다. 귀리와 호밀을 넣어 드라이하고 부드러운 질감과 낮은 도수를 가진 검정 맥주를 출시한 후, 아이리시 드라이 스타우트(Irish dry stout)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이 맥주는 아일랜드와 기네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맥주로 성장하게 된다. 


수백년 동안 영국에 위축되었던 아일랜드의 맥주가 포터를 뛰어넘어 다크 에일의 중심이 된 것이다. 



크래프트 맥주, 포터의 DNA를 되살리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진 포터를 다시 현실세계로 등장시킨 것은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리였다.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양조장이었던 앵커 브루어리(Anchor brewery)는 1972년 앵커 포터(Anchor porter)를 출시한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의 시작인 앵커는 사라진 영국 맥주 스타일을 미국 재료를 통해 재해석했다. 영국 발리와인(barley wine)을 올드 포그 혼(Old Fog Horn)으로, 영국 페일에일을 리버티 에일(Liberty ale)로 재해석한 것과 같이 앵커 포터 또한 잉글리시 포터(English porter)를 오마주하고 재해석한 맥주였다. 

앵커포터 (출처: anchorbrewing.com)

앵커 포터는 미국 마이크로 브루어리에 새로운 영감을 불어넣었으며 시에라네바다 포터 등 많은 크래프트 브루어리들이 자신들만의 포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으로 1995년에는 영국 풀러스(Fuller‘s)가 런던 포터(London Porter)를 만들었고 이후 세계 맥주 대회에서 수상하며 정통 포터의 부활을 알렸다. 


영국 정통 에일을 이어가고자 하는 캄라(CAMRA**)의 비호 아래 정통 포터가 힘을 얻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포터의 미래는 크래프트와 함께 한다. 2010년 이후, 포터는 미국 크래프트 씬 뿐만 아니라 민타임(Meantime)과 같은 영국 크래프트 브루어리 성장과 함께 전통을 뛰어넘는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고 있다. 또한 2014년 기네스는 자신들이 1796년에 만들었던 레시피에 영감을 받아 더블린 포터와 웨스트 인디스 포터를 새로 출시하기도 했다.

기네스 더블린 포터 (출처 : 기네스)


포터, 전통과 혁신의 갈림길에 서다 


현재 포터가 어떤 스타일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테이스팅 비어(Tasting Beer)의 저자 랜디 모셔는 포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니들 포터가 뭔지 알아???… 난 모르겠는데…


‘The Oxford Companion to Beer’의 저자이자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마스터 브루어인 올리버 가렛도 포터를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하며 불분명한 스타일이라고 하고 있다. 또한 영국 맥주역사가인 마틴 코넬 역시 자신의 저서 ‘Amber, Gold and Black’에서 지금의 포터는 스타우트와 향미적, 스타일적 관점에서 차이점이 없다라고 했다. 


실제 했지만 실체를 알 수 없는 맥주 포터. 현재의 포터는 그 원형을 찾기 힘든 맥주인 만큼, 이를 만드는 브루어들의 상상력과 그로 인해 나오는 맥주 자체를 즐기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을까? 오히려 자유로운 영혼이 종종 원형을 뛰어넘기도 하니 말이다. 


1차 산업혁명의 전통(tradition)과 4차 산업혁명의 혁신(innovation)을 포터에서 보고 싶다면 맥주 매니아의 과한 바램일까? 아니면 변화에 대한 즐거운 설렘일까?



* 투페니는 저렴한 가격의 브라운 에일이며 당시 영국에서 에일은 홉이 들어가지 않은 몰트 발효주, 맥주는 홉이 들어간 몰트 발효주를 의미했다.


** 캄라는 Campaign for Real Ale의 약자로 영국 정통 에일을 살리기 위한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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