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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한샘 Jun 08. 2024

힘을 내요. 맥주 파월~

여름아 기다려! 더위를 날려 줄, 시원한 맥주들

여름이다. 맥주의 계절이다. 차가운 손끝, 유리잔에 송송 맺힌 이슬,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탄산, 이 유혹을 마다할 사람이 과연 있을까. 뜨거운 태양이 숨을 죽이면 이 갈망은 더욱 커지기 마련이다. 여름에 맥주를 이길 수 있는 술은 존재하지 않는다.


황금색 라거는 이 계절의 영원한 승자다. 섬세한 쓴맛, 날카로운 탄산, 깔끔한 목 넘김은 갈증해소라는 인간 본연의 욕망을 완벽히 충족시킨다. 100년이 넘도록 라거가 맥주 세계의 권좌를 틀어쥐고 있는 이유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맥주는 아메리칸 라이트 라거다. 이 스타일의 한국 대표는 카스와 테라다. 전분이 들어가 더 가볍고 깔끔한 목 넘김을 자랑한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탄산도 꽉 차있다. 누구는 이 녀석들을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고 했지만, 동의할 수 없다.


샤워로 땀에 젖은 몸을 씻었다면 우선 가장 저렴하고 구하기 쉬운 카스와 테라로 더위를 몰아내자. 다음 맥주로 또 카스, 테라를 집을 예정이라면, 잠깐! 같은 맥주로 여름을 보낸다니, 너무 지루하지 않은가. 조금만 둘러보면 재미있고 짜릿한 6월을 약속하는 맥주들이 있다. 장바구니에 다양한 맥주를 담을수록 불쾌지수는 낮아지는 법이다.


체코가 사랑하는 필스너, 부드바이저 부드바(Budweiser Budvar)

부드바이저 부드바

보헤미아는 체코의 옛 이름이다. 체코는 필스너의 고향이다. 1842년 체코 필젠에서 태어난 필스너 우르켈은 모든 황금색 라거의 어머니다. 하지만 체코를 대표하는 맥주에 필스너 우르켈만 있는 건 아니다. 여기 체코인들이 사랑하는 맥주, 부드바이저 부드바가 있다.


부드바이저 부드바는 프라하 남쪽, 체스케 부데요비체에서 1895년 태어났다. 이 양조장은 1265년 보헤미아 왕 오토 칼 2세가 설립했다. 그리고 여전히 체코 공화국이 주인으로 남아있다. ‘Beer of King’이라는 부드바이저 부드바의 별명은 과장이 아니다.  


눈치 챈 사람도 있겠지만 미국 대표 맥주, 버드와이저가 이 맥주에서 이름을 따왔다. ‘King of Beer’라는 별명도 부드바이저에서 가져왔다. 상표 분쟁이 붙자 버드와이저에서 큰 매각 대금을 제시했지만 체코는 거절했다. 필스너 우르켈이 사브밀러에 매각된 것을 보면, 체코가 얼마나 이 맥주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다.  


부드바이저 부드바는 색부터 기품이 묻어난다. 멋드러진 황금색이 그라데이션처럼 펼쳐진다. 5% 알코올은 섬세한 홉 향을 지긋이 끌어올린다. 쓴맛은 명징하지만 도드라지지는 않는다. 밸런스는 세계 최고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부드바이저 부드바는 꿀물처럼 넘어간다.


한국에는 미국 버드와이저 때문에 부드바이저 부드바가 아닌, 부데요비체 부드바로 판매되고 있다. 마트 선반을 잘 살펴보면 버드와이저 원조 맥주가 눈빛을 반짝이며 쳐다보고 있을 것이다. 꼭 찾으시라.


여름 맥주의 골목 대장, 슈나이더 바이세 탭7 (Schneider Weisse Tap 7)

슈나이더 바이세 탭7

라거와 유일하게 맞짱 뜰 수 있는 맥주, 라거보다 속을 더 뻥 뚫리게 하는 맥주, 바로 바이스비어(weissbier)다. 흔히 밀 맥주로 불리지만,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독일 바이에른 밀 맥주라고 해야 한다.


바이스비어라고 부르기 위해서는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50% 이상 밀이 들어가야 한다. 필터링도 하면 안 된다. 병에 남아있는 효모는 밀의 단백질과 만나 불투명한 탁도를 만든다. 섬세한 자연 탄산과 풍성한 거품도 이 덕분이다.   


라거에는 특별한 향이 없는 반면 바이스비어는 멋진 바나나와 정향 아로마를 품고 있다. 이 향은 바이스비어의 영혼이다. 신선한 바나나 향은 살아있다는 징표다. 낮은 쓴맛과 단맛은 원샷이 가능한 밸런스를 선사한다.


바이스비어의 왕은 슈나이더 바이세 탭7이다. 1872년 독일 바이에른 켈하임에서 탄생한 이 맥주는 현대 바이스비어의 원조다. 꽃병처럼 생긴 전용 잔에 따르면 불투명한 짙은 황금색이  두꺼운 거품을 만들며 가득 피어오른다. 거품은 바나나와 정향 아로마를 붙잡고 있다가 동시에 터트리는 마술을 부린다.


한 번 입으로 들어간 슈나이더 바이세 탭7을 끊기는 쉽지 않다. 부드러운 목 넘김과 탄산은 묵은 갈증을 깨끗이 날려버린다. 더 무서운 건, 이 맥주가 모든 음식과 어울리는 치트키라는 사실. 한 여름 지긋지긋한 후텁지근함도 삭제할 치트키라는 것도 기억하자.


농부의 땀을 씻어주던 맥주, 세종 듀퐁(Saison Dupont)

세종 듀퐁

세종은 벨기에 남부, 왈로니아 지역의 맥주다. 우리말로 계절, 영어로 시즌을 뜻하는 세종은 농부의 맥주다. 한 여름 밭일에 지친 농부들은 갈증을 해소하고 힘을 보충하기 위해 이 맥주를 빚었다.


깔끔한 목 넘김, 풍성하고 날카로운 탄산과 낮은 쓴맛은 여름 맥주, 그 자체다. 그러나 이게 끝이라면 굳이 세종을 소개할 리가 없다. 세종의 매력은 효모가 내뿜는 독특한 아로마에 있다. 향긋한 흰 후추, 지긋이 코끝을 맴도는 수지 향은 어떤 맥주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인 마력이다.


세종 듀퐁은 현대 세종의 원조다. 살짝 불투명한 황금색 속에 흰 후추, 수지, 젖은 낙엽 향이 숨어있다. 이 향들은 노동 뒤에 남아있는 찝찝함을 깨끗하게 씻어준다. 6% 남짓 알코올로 에너지도 보충할 수 있으니, 일석이조. 섬세한 탄산과 시원한 목 넘김은 여름 맥주임을 상기 시켜준다. 농부들이 창조한 맥주이니 의심할 여지가 없다. 믿고 마시자.  



전기저널 6월호에 기고한 맥주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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