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스팅을 위한 자세와 마인드에 대하여
지구 상 생명체 중 인류는 맛과 향의 조화를 추구하는 유일한 존재다. 수만년 전 현생인류가 동굴에서 불을 사용해 음식을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향미를 탐닉하도록 진화했다. 불에 익힌 음식은 빠른 소화를 도와 뇌에 더 많은 에너지를 공급했을 뿐 아니라 수 만가지 향을 느끼게 해주었다. 우리 혀는 5가지 맛(단맛, 쓴맛, 신맛, 짠맛, 감칠맛)을 느끼게 되었고 뇌는 다양한 향에 대한 선호를 갖도록 발전되었다.
우리는 음식을 5감을 통해 평가한다. 하지만 맥주는 시각, 후각, 미각 그리고 구강촉각 4가지를 통해 인지되고 평가된다. 시각은 가장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감각이지만, 진정한 평가는 마시는 과정에서 진행된다. 혀로 전달되는 맛과 비강을 통해 올라오는 향은 맥주의 모습을 또렷하게 한다. 가장 핵심적인 감각은 후각과 미각인 것이다.
미각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 5가지 맛으로 진화된 반면, 후각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향을 맡도록 발전해왔다. 비록 인간의 후각은 동물에 비해 퇴화되긴 했으나 다행히 풍성한 식문화를 즐길 수 있는 비강을 갖고 있다. 이 비강으로 인해 인간은 두 가지 통로, 즉 전비강성후각과 후비강성후각으로 향을 인지한다. 전비강성후각은 외부에서 코를 통해 들어오는 향을 인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후비강성후각은 입과 코를 연결하는 비강을 통해 향을 인지하는 것으로, 음식을 씹거나 음료를 마실 때 깊고 복합적인 느낌을 받는다. 이것이 바로 인류 식문화 진화의 열쇠다.
우리는 전비강성후각으로 인지되는 향을 아로마(Aroma)라고 하고 혀의 맛과 후비강성후각으로 인지하는 향미를 플레이보(Flavor)라고 한다. 혹은 혀에서 느껴지는 맛을 테이스트(taste), 비강을 통해 올라오는 향을 플레이보라고 따로 구별하기도 한다.
맥주 테이스팅(tasting)이란 색과 같은 시각 정보와 입안에서의 질감과 같은 구강촉각 정보, 그리고 아로마와 플레이보, 테이스트를 종합하여 맥주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단순히 판단하는 것만으로 부족하다. 테이스팅의 마무리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까지다. 우리의 감각적 느낌이나 생각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말이나 글로 풀어내야 한다. 아무리 감각적으로 뛰어나더라도 혼자만의 언어를 사용한다거나 구체적인 표현을 하지 못한다면 진정한 테이스팅을 했다고 할 수 없다. 따라서 좋은 맥주 테이스팅을 위해서 정확한 센싱과 적확한 표현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감각이 매우 객관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인간의 감각은 절대 객관적일 수 없다. 기본적으로 향미를 느끼는 세포의 수가 개인마다 큰 편차를 갖기 때문이다. 같은 쓴맛 분자를 감지하더라도 누구는 더 쓰게 느낄 수 있고, 다른이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흔히 미각세포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맛을 더 세심하게 느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의 경우가 더 많다. 더 많은 미각세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쓴맛에 더 민감하기 때문에 소믈리에나 맛을 평가하는 직업에 부적합할 수 있다.
그러면 적확한 표현은 쉬울까? 그렇지 않다. 후각과 미각에서 느껴지는 감각 정보는 뇌의 편도체에 전달된다. 편도체는 기억을 관장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후각과 미각은 기억과 함께 저장된다. 우리가 외국에서 김치찌개를 먹으면 구체적인 언어보다 엄마가 생각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후각과 미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언어적 표현이 용이하지 않으며 개인의 경험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일 수 있다.
또한 문화, 환경, 인종 등에 따라 테이스팅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우리에게 구수한 청국장 향이 외국인에게는 매우 불쾌한 경험을 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사람들은 강한 탄산을 좋아하기 때문에 탄산이 강한 맥주를 맛있다고 느낄 수 있다. 반면 다른 문화에 있는 사람들은 강한 탄산을 가지고 있는 맥주에 낙제점을 줄 수 있다. 누구에게는 아주 맛있는 음식이 다른 이에게는 불쾌한 음식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테이스팅은 매우 주관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테이스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감각이 불완전하고 주관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내 감각이 향미분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느끼는지, 파악해야 한다. 자신을 모르면 맥주가 전달하는 향미에 객관적일 수 없다. 그래서 맥주 테이스팅의 기본은 자신의 감각에 솔직하고 그 기준치를 설정하는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좋은 소믈리에나 테이스터가 되려면 독선과 자만을 버려야 한다. 다른 이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신이 아닌 이상 이 세상의 문화와 환경을 모두 알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각세포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판단할 근거도 모호하다. 다른 사람들과의 토론을 통해 경험을 나누고 내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마인드와 자세만이 독선이라는 악에서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부단한 노력은 훌륭한 맥주 테이스팅을 위한 마지막 보루와 같다. 많은 사람들이 테이스팅에 있어 선천적인 감각이 중요하다는 오해를 한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테이스팅은 단순히 맛을 보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시각, 후각, 미각, 촉각의 날을 세워, 향미를 인지, 평가한 후,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생각보다 큰 집중력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선천적인 감각이 뛰어난 것 보다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감각을 단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두려움 없이, 도전적인 태도로 다양한 향미를 경험하려는 자세, 그리고 새로운 향에 대해 항상 오픈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필요한 건, 맥주를 향한 끊임없는 열정일 것이다.
맥주를 테이스팅하는 것은 가슴 떨리는 일이다. 반드시 전문 소믈리에가 아니더라도 테이스팅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다. 맥주와 나의 감각이 마주하는 일은 벅찬 경험이기 때문이다. 가끔씩 맥주를 마실 때 감각을 깨우고 자신에게 솔직한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맥주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는 삶을 사는 것, 우리가 맥주 라이프에서 얻을 수 있는 또다른 즐거움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