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맛나는 맥주 찾아 이만리 2
바흐는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음악의 아버지 앞에 서자 거짓말처럼 정신이 맑아졌다. 성 토마스 성당에 흐르는 고요함과 십자가의 거룩함은 알코올에 찌든 내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피로가 따르는 짧은 기간의 여정은 종종 맥아일체의 경지를 경험하게 한다. 내가 맥주인지, 맥주가 나인지 때론 괴롭지만 사실 감사한 경험이다. 성 토마스 성당의 영험한 기운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알코올 배터리를 만땅으로 채워 주었다.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작전대로 고제를 위한 일정에 돌입한다.
라이프치히 고제를 대표하는 브랜드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오리지널 리터구츠 고제(Ritterguts gose)이고 다른 하나는 라이프치거 고제(Leipziger gose)다. 리터구츠 고제는 라이프치히 남쪽에 위치한 캠니츠라는 도시에서 위탁 양조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있어 일정 상 방문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시내에 있는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 브로이(Bayerischer banhof gose brau)에서 라이프치거 고제를 마신 후, 고제 전문 펍인 오네 베덴켄(Ohne bedenken)를 방문해 리터구츠 고제를 맛보기로 했다.
바이어리셔 반호프는 바이어리셔 기차역이란 뜻으로 라이프치히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었다. 1824년, 라이프치히와 알텐부르크를 연결하는 최초의 철도가 놓이는데, 바이어리셔 반호프가 그 시작이었다. 바이에른과 오스트리아를 잇는 관문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으나 1912년에 새로운 중앙 역이 들어선 뒤 쇠퇴하기 시작했다. 세계대전 동안 폭격으로 거의 파괴된 후, 구 동독 치하에서 예산 부족으로 복구되지 못한 채 남아있던 이 역은 1999년 라이프치히 문화지구로 리뉴얼되는 과정에서 지역음식과 맥주를 파는 브루펍이 들어오기로 결정된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사람은 토마스 슈나이더였다. 1986년부터 고제를 OEM 생산하던 토마스 슈나이더는 1999년 역사였던 이 곳에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 브로이를 설립한 후, 자신만의 고제를 만들기 시작한다. 사라진 기차역이 전통 맥주 양조장이라는 방식으로 부활한 것이다.
이 곳에 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S-Bahn역인 바이어리셔 반호프 역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 토마스 성당에서 가장 가까운 라이프치히 마크트(Leipzig Markt) 역에서 전철을 탔다. 사실 걸어가면 20분 정도 거리지만 어차피 오후에 오네 베덴켄을 가야 했기에 데일리 티켓을 이용하기로 했다. 역을 나오자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이 우리를 맞았다. 어제 구시가지에서 고제를 찾을 수 없어 삐졌던 마음과 우울했던 기분이 한방에 풀리는 듯했다. 넓은 교차로를 뒤로 하고 돌아보니 과거의 역을 상징하는 아름다운 흰색 아치 건물이 보였다.
바이어리셔 반호프를 보고 있자니 비슷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구 서울역사였다. 현재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지만 구 서울역사는 언젠가부터 내 기억에서 사라졌다. 가끔 서울역에 갈 때마다 스쳐 지나치는 구 서울역사에서 받은 인상은 ‘죽음’이었다. 멋대가리 없는 신 서울역사 옆에 마치 껍질만 남긴 채 죽어있는 벌레 같은 느낌.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문화재, 구 서울역사는 그냥 박제된 표본과 같았다.
문화를 체험하고 기억하는 방법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한다. 구 서울역사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꼭 정형화된 박물관이 아니어도 괜찮지 않을까? 사람들의 온기가 계속 그곳을 데울 수 있는, 음식과 맥주로 우리의 오감과 기억이 머물도록 하면 어떨까? 이 도시 사람들은 이 곳에서 고제를 마시며 바이어리셔 반호프의 옛 모습과 의미를 기억하고 있다. 서울역은 유리와 철근으로 만들어진 지금의 추한 모습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 한 서울의 역사(歷史)를 간직한 역사(驛舍)로 기억돼야 한다.
상념에 휩싸여 걷다 보니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 브로이 문 앞이다. 드디어 라이프치거 고제를 마셔보는 건가. 오리지널을 맞이할 때 느끼는 설렘, 이 설렘은 매니아라면 평생 꿈꾸는 감정이다. 특히 평생 자신만의 장난감을 품고 사는 남자들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남자들의 장난감은 대게 시뮬라르크다. 자동차든, 맥주든, 축구든 상관없이 대부분의 장난감은 오리지널을 품은 판타지다.
맥주 환자로서 시뮬라르크는 마트에서 판매되는 맥주다. 대부분 맥주는 오리지널 양조장에서 만들어지지만 어떤 맥주는 위탁 양조되어 브랜드만 붙여 판매된다. 대중상품으로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잘못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맥주는 단순 공산품이 아니라 문화를 대변하는 상품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채우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 설사 원산지에서 제조되고 유통된 맥주라 할 지라도 양조장에서 오리지널을 경험하는 건 맥주 환자의 최고 판타지이다. 막 완성된 맥주를 양조장에서 바로 맛본다는 것은 향미를 떠나 그 맥주의 철학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정서적이고 문화적인 행위이기에 우리는 오리지널을 만나는 순간을 평생 고대하며 살아간다.
좋아하는 맥주는 물론이거니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맥주 혹은 유통되지 않아 그 지역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맥주를 양조장에서 직접 마시는 건, 맥주라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사람에게 최고의 행복이다.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 브로이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바로 지금이, 맥주 아드레날린이 마구 분출되는, 맥주 환자가 가장 고대하던 순간인 것이다.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 브로이 내부는 여느 독일 가스트 호프와 조금 달랐다. 아치 형상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왔고 긴 바와 작은 테이블 그리고 많은 인원이 함께 할 수 있는 룸도 있었다. 밖에는 넓은 비어가든도 보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구릿빛 장비들이었다. 아름답게 빛을 반사하고 있는 양조 장비들은 이 곳이 고제 맥주 양조장이라는 무언의 시위를 하고 있는 듯했다. 평상시에 예약을 하고 와야 하는 곳이지만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다. 2인 테이블에 앉아 메뉴를 펼치니 다양한 고제가 보인다. 여러 종류의 고제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고제를 이용한 다양한 칵테일과 믹스쳐였다.
맥주 순수령의 나라, 독일. 정말 독일 맥주들은 ‘순수’할까? 바이에른을 벗어나면, 특히 북독일 지역 맥주는 반드시 ‘순수’하지만은 않음을 알 수 있다. 맥주에 콜라, 레모네이드, 증류주 또는 다른 맥주를 섞는 맥주 칵테일도 있으며 라즈베리 시럽이나 허브를 넣은 믹스쳐도 있다. 다양한 고제 믹스쳐들을 보고 있자니 비슷한 문화를 가진 맥주가 떠올랐다. 베를리너 바이세, 베를린 밀맥주다. 그러고 보니 이 양조장은 베를리너 바이세와 큰 인연이 있다.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 브로이를 제안한 토마스 슈나이더는 원래 베를리너 바이세를 만들었던 사람이었다. 베를리너 바이세는 자연발효를 통해 만들어져 신맛과 쿰쿰한 향 그리고 낮은 알코올 도수를 가진 베를린의 전통 밀맥주다. 한때 나폴레옹이 북독일의 샴페인이라 칭할 만큼 번성했지만 지금은 베를린에서도 쉽게 마실 수 있는 맥주는 아니다.
로타 고드한이 고제를 부활시키기 위해 위탁 양조를 알아보려 다닐 때, 대부분 양조장은 이 맥주를 만들기 꺼려했다. 자칫 잘못하면 자연발효에 사용된 젖산균과 야생 효모가 양조장 전체를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선뜻 위탁 양조를 맡은 곳이 안드레아스 슈나이더라는 브루어리였다. 그들은 이미 자연발효를 이용하는 베를리너 바이세를 다루고 있었기 때문에 고제 양조를 컨트롤할 수 있었다.
베를린에서 마신 베를리너 바이세는 마치 음료수 같았다. 라즈베리 시럽을 넣은 것은 붉은색을, 우드러프 시럽을 넣은 것은 초록색을 띄었다. 알코올 도수도 낮고 신맛도 높지 않아 실제 여름에는 얼음을 넣어 빨대를 꽂아 마시기도 한다. 베를리너 바이세가 고제의 재탄생을 도왔다는 걸 생각하면 두 맥주의 음용 방식이 비슷한 것이 얼추 이해가 된다. 고제와 베를리너 바이세의 거리는 라이프치히와 베를린만큼 가까웠다.
메뉴판에는 다양한 시럽과 리퀴르를 넣은 고제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시럽이나 허브가 들어가지 않은 오리지널 라이프치거 고제를 주문했다. 꾸미지 않은 맨 얼굴과 원래 가진 성격을 마주하고 싶었다. 잠시 뒤, 밝은 황금색 액체가 눈 앞에 놓였다. 흰색 거품과 불투명한 이 맥주는 한눈에 봐도 아름다웠다. L원장님과 나는 모든 것을 각설하고 가벼운 건배와 함께 서둘러 한 모금 들이켰다.
아니, 이건 맥주라기보다 음료수 아닌가? 순간 한강 둔치에서 이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머리에 그려졌다. 당연히 짠맛이 꽤 느껴질 거라 생각했는데 잔잔했다. 자연발효에서 나오는 신맛이나 코리안더 시드(고수씨)가 주는 자극적인 향도 은은할 뿐이었다. 라이프치거 고제는 온화했고 부드러웠으며 살가웠다. 오늘 같은 날씨에서는 몇 잔이고 마실 것 같았다. 햇살을 받으며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그런 맥주였다.
흔히 독일 밀맥주인 바이스비어를 모든 음식과 어울리는 치트키라고 하는데, 라이프치거 고제도 그러했다. 지금 먹고 있는 가벼운 치킨 윙과 감자튀김뿐만 아니라 돼지고기, 견과류, 샐러드와 마셔도 좋은 궁합을 보일 듯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다른 모두를 감싸 안을 수 있는 맥주였다.
고제 문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재미는 병이다. 입구에는 테이크 아웃을 위해 고제를 냉장고에 진열해 놓고 있는데 그 병 모양이 특이하다. 긴 주둥이와 넓은 몸을 가지고 있는 병은 고제의 시그니처와 같다. 디자인이 이렇게 된 이유는 과거 고제 맥주의 특징에서 찾을 수 있다. 원래 고제는 미발효된 채 나무 배럴에 담겨 펍으로 이송된 후, 추가 발효가 되곤 했다. 배송된 고제는 깔때기를 이용해 병에 소분되었고 그 안에서 서서히 후발효가 되었던 것이다. 병에서 발효를 마친 효모는 점점 좁은 병목에 쌓이면서 슬러지처럼 되어 일종의 자연 코르크를 만들었다. 현재는 병 내 추가 발효를 진행하지 않아 스윙탑이 효모 코르크를 대신하고 있지만 병은 여전히 문화적 정체성을 담는 용기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많아진다. 대부분 지역 사람들이다. 분명 이 중에는 이 역이 철거되기 전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라이프치히 요리와 맥주를 즐기며 그 추억을 나누고 전하는 모습이 부럽다. 맥주가 도시 문화의 정체성을 대표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고제 500ml를 한 잔씩 한 후, 시그니쳐 병을 하나씩 들고 밖으로 나선다.
여전히 파란 하늘이 반겨준다. 오네 베덴켄에서 고제 마시기 딱 좋은 날씨다. 오네 베덴켄은 S-bahn을 타고 라이프치히 골리스(Leipzig-Gohlis) 역에 내려 약 15분 정도 걸어가야 했다. 이 곳은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제펍으로 1985년 고타 로드한이 발견하기 전까지 불에 그을린 채, 버려져 있었다. 다행히 1986년 복원되었으며 지금까지 고제의 숨결을 유지하고 있는 유일한 성지로 남아있다.
오네 베덴켄에서 마실 고제는 리터구츠다. 리터구츠는 1824년 라이프치히 남쪽 될리츠(Dolitz)에 설립된 최초의 고제 양조장이다. 한때 80개가 넘는 고젠쉔케에서 백만병 이상 팔릴 정도로 당대 최고 맥주였다. 세계대전 이후 1966년 마지막 서빙을 끝으로 사라졌다가 1999년 틸로 야니헌이 되살렸다. 그는 리터구츠 고제를 복원하기 위해 수많은 조사를 진행하다 과거 양조장에서 일했던 사람을 만났고 그에게서 귀중한 레시피를 얻어냈다. 그리고 전통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오리지널 고제를 복원했다. 여러 자료에서 오네 베덴켄에서 리터구츠 고제를 판매한다는 기록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곳은 다른 어떤 곳보다 리터구츠 고제를 마시기에 가장 이상적이고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동양인을 찾기 정말 힘드네요”
라이프치히 골리스 역에서 나와 길을 걷다 L원장님께 불쑥 한마디 건넸다. 고제를 마시러 이런 구석까지 오는 동양인이라니...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더라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으리라. 고제를 마시러 여기까지 온 동양인은 우리 밖에 없을 거라는 실없는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찰나, 구글 지도가 그곳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오네 베덴켄이었다.
너무 평범했다. 독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맥줏집의 외관이었다. 뭐, 사실 대단한 걸 기대한 건 아니긴 했다. 하지만 한 단어는 확실히 눈에 들어왔다. 바로 고제펍을 의미하는 고젠쉔케(Gosenshenke)였다. 조심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오래된 맥줏집에서 볼 수 있는 독일 전통 인테리어가 익숙하다. 이내 작은 키에 건장한 체격의 중년 남성이 인사를 건넨다. 민머리에 안경을 쓴 그 남성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를 안쪽 자리로 안내했다.
메뉴를 건네받자마자 우리는 리터구츠 고제가 있는지 살폈다. 리터구츠 고제는 물론 라이프치거 고제도 있었다. 그리고 다양한 고제 칵테일 역시 판매하고 있었다. 메뉴에는 두 고제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는데 그 차이가 흥미롭다. 라이프치거 고제를 바이어리셔 반호프에서 1999년부터 만들고 있는 고제라고 설명하고 있는 반면 리터구츠 고제는 1824년부터 만들어지는 오리지널 고제라고 되어있다. 리터구츠 또한 1999년 복원된 고제지만 1824년에 힘을 준 설명이었다. ‘주저 없이’ 리터구츠 고제를 주문하고 찬찬히 내부를 둘러보니 그 이유가 짐작된다.
벽에는 오네 베덴켄은 물론이고 고제에 대한 오래된 기록들이 붙어 있었다. 될리츠 리터구츠 고제의 기사, 광고, 그림 그리고 오네 베덴켄의 사진도 볼 수 있었다. 리터구츠 고제와 이 곳은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메뉴에 있던 소개 문구가 비로소 이해가 된다.
리터구츠 고제는 라이프치거 고제와 꽤 달랐다. 밝고 불투명한 외관은 비슷했지만 신맛이 강했고 야생 효모가 만드는 쿰쿰한 향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자연발효를 통해서 양조된 것이다. 짠맛은 강하지 않았으나 혀 뒤쪽으로 뭉근히 올라왔고 고수 씨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향도 명백히 느껴졌다. 같은 스타일의 맥주지만 리터구츠와 라이프치거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런 문제에 정답은 없다. 사라진 문화의 복원은 이를 전승하고 향유하는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고, 식문화는 시대에 따라 시나브로 변화하는 것이기에.
중요한 건, 사회 구성원에 내재되어 있는 문화 DNA가 아닐까? 분명 고제는 절멸했던 맥주였다. 21세기 고제가 비록 과거와 정확히 같진 않더라도 내재된 문화 DNA가 본질을 자연스럽게 구현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바 없다. 이것이 같은 문화 공동체가 갖는 힘이다. 이는 많은 것을 복원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옛것 그대로 복원하는 것만큼 가치 있는 건, 더 나은 방향으로 문화 DNA를 이어가며 새롭게 창조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리터구츠 고제를 마시는 도중, 우리는 라이프치거 고제도 주문했다. 둘의 명확한 차이점을 이 도시를 떠나기 전 기억하고 싶었다. 새로운 고제를 건네받는 순간, 자리를 안내해 준 남성이 자신이 매니저라며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어디서 왔어요?”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국이요? 어떻게 한국에서 이 곳에 올 생각을 했어요?”
“맥주 여행을 왔는데 고제를 꼭 마시고 싶었거든요.”
“정말 대단하네요!”
대한민국 맥주 환자임을 인증하고 고제에 대한 애정을 내비치자 매니저 얼굴에 활기가 돌았다. 어느덧 매니저, L원장님 그리고 나는 고제를 주제로 토론 아닌 토론을 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라이프치히에서 고제를 쉽게 찾을 수 없었다고 하자 그는 고제가 관심을 받게 된 게 얼마 되지 않는다는 뜻밖의 이야기를 했다. 놀랍게도 고제라는 맥주가 주목을 받게 된 게, 라이프치히 사람들에 의해서가 아닌, 외부인과 크래프트 맥주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가 오히려 오리지널 고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씀인가요?” 나는 의심 어린 말투로 물었다.
“네, 맞아요. 크래프트 맥주에서 고제를 만들면서 오히려 오리지널이 주목받고 있는 거예요” 그는 담담히 답했다.
그러더니 자신들이 만든 고제가 있다며 우리들이 맛보았으면 한다고 했다. 그가 가져온 맥주는 오네 베덴켄의 상징인 닭이 그려진 잔에 담겨 있었다. 그제서야 오네 베덴켄의 상징이 왜 닭인지 물었다. 그는 “오네 베덴켄은 '주저 없이', '의심할 바 없이'처럼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그중 ‘생각 없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닭이 좀 생각 없이 사는 동물이잖아요” 라며 파안대소했다. 그의 재치에 우리는 건배로 화답했다.
오네 베덴켄 고제는 리터구츠 보다 라이프치거 고제와 궤를 같이 했다. 그 차이점이 궁금해 라이프치거 고제 한잔을 더 주문했다. 확실히 시큼하고 짠맛이 도드라지는 리터구츠 고제보다 부드러운 라이프치거 고제와 비슷했다. 그는 자신들의 고제는 뒤뜰에 있는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다양한 고제들이 근처 작은 양조장에서 양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리지널의 존재가 크래프트 맥주라는 시뮬라르크로 인해 진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맥주 역사가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연대하고 소통하며 발전하고 있음을 우리는 고제를 통해 배우고 있었다.
매니저는 다음에 라이프치히에 오면 꼭 다시 방문해줄 것을 신신당부했다. 우리는 환한 미소와 악수로 화답했다. 라이프치히의 작은 펍에서 많은 것을 얻어간다. 리터구츠, 라이프치거 그리고 오네 베덴켄 고제, 같은 정체성을 갖지만 서로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세 종류의 고제는 결국 맥주는 관념적이고 지식적인 것이 아닌, 문화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했다.
전철 플랫폼을 은은히 밝히는 등 뒤로 하늘은 개와 늑대의 시간을 넘어 이제 군청색이 되고 있었다. 낯선 고제를 찾아 서울부터 건너온 이만리 길이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이 도시와의 인연은 이제 고제를 마실 때마다 기억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