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 맥주 성장 질주, 수제 맥주 코스닥 간다, 수제 맥주 전성시대.
요즘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기사의 제목들이다. 2002년 하우스 맥주에서 출발한 수제 맥주는 2013년 이후 꾸준히 성장하며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2015년 약 200억 원이던 수제 맥주의 규모는 지난 해 약 1000억 원으로 커졌다. 성장세만 보면 마치 전기차, 바이오 등과 같은 새로운 먹거리 산업의 도래를 보는 듯하다.
현재 약 150여 개의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가 시장에 뛰어든 가운데, 몇몇 업체들은 편의점과 마트 같은 채널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수제 맥주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부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들은 언론을 통해 ‘수제 맥주 온라인 판매’를 허용해 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코로나로 인한 정부의 비대면 정책과 외식업의 영업시간 단축에 따른 매출 하락을 호소하며 ‘대형 유통매장에 들어갈 수 없는 소규모 맥주’의 온라인 판매를 요구하고 있다. 매년 40% 이상 성장한다는 수제 맥주 시장에서 왜 생존권 위협 문제가 제기되고 수제 맥주 온라인 판매 요구가 나오는 것일까?
2020년 맥주 산업은 종량세와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했다. 1968년 국가 세제개편에서 고급술로 분류된 맥주는 증류식 소주, 위스키와 함께 제조 단가에 세금이 붙는 종가세가 적용됐다. 많은 반발에도 불구하고 시행된 맥주 종가세는 제조 단가의 100%를 세금으로 붙였다. 예를 들어, 맥주 한 병의 제조가가 1000원이라면 공장 출고가는 2000원이 되는 것이다. 세율은 2019년까지 72%로 떨어졌지만 30%에 불과한 와인이나 막걸리에 비해 과도하게 높았다.
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맥주는 고소득층이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에 누진적 성격을 띤 종가세는 세수 목적에 부합했다. 그러나 점차 국민 소득이 높아짐에 따라 맥주는 대중적인 술이 되었고, 높은 맥주 세율로 인한 역차별 이슈가 꾸준히 제기됐다. 결국 시장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던 맥주 종가세는 약 50년 만인 2020년, 1리터에 약 830원의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세로 바뀌며 현실화되었다.
종량세는 전반적인 맥주 산업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었다. 뿐만 아니라 소규모 제조업체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게임 체인져로 여겨졌다. 종가세 체계에서는 대량 생산을 하는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누리기 때문에 비용면에서 소규모 제조업체들보다 훨씬 유리했다.
하지만 종량세에서는 상대적으로 규모의 경제 효과가 낮아 소규모 업체도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는 수제 맥주의 경우, 세금과 관계없이 홉과 몰트를 더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다채로운 맥주 스타일을 구현할 수 있다. 즉, 합리적인 가격의 높은 부가가치를 갖는 맥주 생산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종량세가 되면 수제 맥주도 ‘4캔 만원’이 가능하다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오기도 했다.
수제 맥주는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에서 만드는 높은 품질과 가격, 다양성을 갖는 맥주로 인식되어 왔다. 대량 생산과 단순한 향미 그리고 낮은 가격으로 대변되는 대기업 맥주 시장은 일반적으로 수제 맥주의 영역이 아니었다. 설사 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수제 맥주라도 프리미엄의 가치를 지키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수제 맥주 업체는 마트나 편의점이 아닌 탭하우스, 펍, 레스토랑 같은 온시장(on-market)을 주거래로 삼았고, 병과 캔보다 케그로 유통되는 생맥주에 주력했다.
하지만 종량세가 시행되자, 몇몇 수제 맥주 회사들은 캔맥주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대량 생산을 통해 ‘대형 유통매장’에 적극적으로 진입하기 시작한다. 마트와 편의점이 만든 ‘4캔 만원’ 시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낮은 공급가가 필요했기에 이들은 마진은 낮지만 판매량을 높이는 대중 맥주의 문법을 받아들였다. 그러는 와중, 작년에 발생한 코로나로 인한 외식 감소와 홈술 증가는 이런 전략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또한 곰표 맥주와 말표 맥주 등, 대중들에게 익숙한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소비자 진입 장벽을 낮추고 OEM 방식을 통해 매출 볼륨을 확대하기도 했다. 대형 유통시장에 진입한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렸고 전체 수제 맥주 시장도 명목적으로 성장했다.
반대로 대형 유통매장에 진입할 수 없는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들은 점점 코너에 몰리기 시작했다. 대량 생산을 위한 시설을 갖추지 못했을뿐더러 캔이나 병입 장비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업체들이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 일반음식점을 대상으로 영업을 전개한 업체들은 더욱 타격이 컸다. 코로나 발병 건 수도 많았고 그에 따른 영업 규제도 강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언론에서 언급하는 수제 맥주 전성시대는 다른 나라 이야기였다.
현재 대부분의 소규모 맥주 업체들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코로나 팬데믹 속 상황은 소상공인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소기업 법인으로 분류되어 직접적인 지원을 받지 못했다. 소상공인과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는 공생 관계로 얽혀있지만, 지원의 규모와 적용 범위는 편중되어 있는 것이다. 특히 외부 유통을 주로 하는 작은 업체들은 정부의 코로나 영업 규제가 계속될수록 더욱 어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현실적으로 자금이 넉넉하지 않은 대부분의 소규모 제조업체들은 신규 투자나 직접 영업을 하기 어렵다. 더구나 술이라는 태생적 한계는 온라인 판매를 법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마트와 편의점, 슈퍼 등 가정용 시장의 진입도 생산량의 한계 때문에 쉽지 않다. 또한 생맥주는 가정용으로 판매할 수 없을뿐더러, 맥주의 ‘품질유지기한’은 재고 비용을 증가시킨다. 다른 공산품처럼 할인 판매를 쉽게 진행할 수도 없고 심지어 유통기한이 지난 제품은 국세청에 신고하고 폐기를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비용이 발생되기도 한다.
이처럼 생존 전략이 사방으로 막혀있는 가운데, 대형 유통매장에 들어갈 수 없는 소규모 제조업체들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온라인 판매’다. 현재 술은 원칙적으로 온라인 유통이 금지되어 있다. 다만 국산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전통주만이 유일하게 예외 적용을 받고 있다.
온라인 판매를 금지하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우선 청소년 음주 가능성에 대한 여성가족부의 반발이 있다. 사실 시스템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청소년 구매는 규제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가족부는 청소년이 편법적인 방법으로 맥주를 수취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맥주 온라인 유통이 음주로 인한 사회 문제를 증가시키고 국민 건강의 질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보건복지부의 반대도 있다. 맥주 온라인 판매가 음주 문화를 촉진하고 형평성 문제로 소주, 위스키, 와인 등 다른 주종에 대한 규제마저 해제되면, 국민 건강의 하락과 범죄율 증가 같은 사회적 비용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가능성만으로도 사회적 제약의 근거를 갖는다.
현실적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업체 내의 온라인 판매 기준을 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현재 주세법은 소규모 맥주 제조자를 당화 자비조 0.5kl, 발효조 5kl~120kl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 기준에는 대형 유통매장에 진입한 수제 맥주 회사들도 포함되어 있다. 수제 맥주 온라인 판매 이슈가 대형 유통매장에 들어가지 못한 소규모 제조업체들의 판로 개척에서 시작된 만큼,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이해관계에 따른 갈등이 첨예해질 수도 있다. 소규모 제조업체 중 어떤 업체들에게 온라인 판매를 허용할지, 그 기준을 정하는 것은 기획재정부와 국세청만의 문제가 아니다. 시장 관계자들이 이 문제를 지혜롭게 풀어야만 ‘수제 맥주 온라인 판매’의 길이 열릴 것이다.
다양한 우려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제 맥주 온라인 유통에는 반드시 합당한 명분과 의무가 동반되어야 한다.
첫째, 이 제도가 판로 개척이 어려운 소규모 맥주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시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온라인 판매는 사업의 확장성보다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안 중 하나여야만 한다. 작지만 가치 있는 업체들을 위한 지원책으로 기준과 한계를 명확히 둘 필요가 있다. 이는 전통주 온라인 판매에도 적용되고 있다.
둘째, 지역 경제와 공동체, 국민 편익에 기여를 해야 한다. 사실 온라인 주류 판매가 한국에서 처음 실행되는 제도는 아니다. 이미 알코올 도수와 상관없는 수많은 전통주가 카카오나 네이버를 통해 판매되고 있다. 최근 들어, 전통주는 청년 창업과 새로운 기회 창출 모델로 여러 매체에 소개되고 있다. 국산 농산물 사용과 청장년 창업의 명분으로 온라인 판매의 정당성을 확보한 것이다. 이는 수제 맥주 업계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렇다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국민 편익 기여를 어떻게 맥주로 풀어낼 수 있을까? 맥주는 99% 이상 수입산 재료를 사용한다. 전통주처럼 100% 국산 농산물을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면 국산 농산물 사용 비율에 따른 온라인 판매 쿼터를 둘 수 있다.
국산 농산물의 범위를 쌀과 같은 곡물뿐만 아니라 과일, 향신료 등으로 넓혀 세금 경감과 온라인 판매까지 허용하는 것도 합리적인 접근이다. 이미 쌀을 이용한 맥주에 대해 일부 세금을 경감시켜주는 제도가 존재하지만 영향력은 미비하다. 지역 농산물 사용량에 따라 온라인 판매량 혹은 매출액을 늘려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국산(지역) 농산물 사용 진작은 물론 수제 맥주 온라인 판매의 명분도 세울 수 있는 방법으로 생각해볼 만하다.
마지막으로 청소년 음주문제에 대한 책임의식과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중간 도매상 없이 최종 소비자와 양조장의 직거래 방식을 허용하고 인당 일회 구매량에 한계를 둔다면 시스템적으로 해결 가능하다. 자사 홈페이지 쇼핑몰에 19세 이상만 구매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신용카드 결제만 가능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또한 청소년 음주 문제에 대해 자발적으로 대책을 마련하고 지속적인 캠페인과 운동(movement)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맥주는 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진 상품이지만 산업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국산 농산물 소비를 가능하게 하는 6차 산업, 공동체 문화를 공유하고 전파할 수 있는 문화 산업, 그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조 사업이 될 수 있다. 특히 소규모 맥주 제조업은 다양성과 진정성이라는 가치를 맥주를 통해 사회에 제공할 수 있는 분야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의 온라인 판매와 유통에 대한 우려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비록’ 맥주지만 사회에 두세 배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수제 맥주가 단순히 시장 관계자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적 이익을 공유할 때, 비로소 작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