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공장장이 되다

에필로그 - 중년 남자의 초보 양조사 분투기

by 윤한샘

항상 이런 식이다. 4캔에 만 원짜리 맥주를 고를 때는 내일이 마지막인 듯 고민하지만, 인생의 큰 결정은 순식간에 하고 만다. 예를 들어, 코로나 시대에 펍 사장이 되는 것 같은 이상한 결정 말이다. 2021년 3월 정동에 있는 맥주 양조장의 대표가 됐다. 내 인생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챌 새도 없이, 손에는 새로 발급된 등기부등본이 들려있었다.


'빌어먹을...'


5년 전 상암동에서 펍을 정리할 때, 다시는 자영업 사장이 되지 않기로 결심했던 나 아닌가. 불규칙한 매출, 반복적인 일상, 감정 노동에서 오는 스트레스, 펍은 내가 싫어하는 것만 들어있는 종합 선물세트였다. 이런 내가 다시 자영업 사장 게다가 맥주를 만드는 양조사가 되려 하다니, 무언가에 홀린 것이 분명하다.

IMG_2652.jpeg 정동 독립맥주공장 (출처 : 윤한샘)

과거와 현대가 공존하고 매력적인 문화가 흐르는 정동.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빨간 벽돌 건물 구석에 직접 만든 맥주와 음식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독립맥주공장(獨立麥酒工場)이라는 작은 간판을 품고 있는 이곳은 정동에 숨어있는 작은 브루펍이다.


이곳의 창업자는 원래 맥주 전문가도 양조사도 아닌 전시 기획자였다. 그는 크래프트 맥주의 문화적 잠재성을 발견하고 정동에 독립맥주공장을 설립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수제 맥주가 아닌 독립맥주(indie beer)로 이름을 지은 것도 맥주가 단순한 술이 아닌 하위문화로서 독립적이고 저항적인 성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동의 크래프트 맥주가 독립 출판, 인디 뮤직 같이 문화의 원류가 되길 바랬고, 독립맥주공장이 그 가치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길 원했으리라.


하지만 이상과 실전은 다른 법. 몇 달 동안 매장을 운영한 그는 이 사업이 쉽지 않음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사업을 한 그에게도 대한민국 자영업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더구나 요리는 물론, 맥주까지 만들어야 했으니... 이는 두 부분에서 모두 선수여야 함을 의미했다. 빠른 손절을 위해 인수자를 물색하던 와중에 연결된 사람이 나였다. 인연이었을까. 그는 나와 함께 맥주문화협회를 설립한 이사님의 지인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독립맥주공장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오간 후, 나는 이곳을 인수하기로 했다. 물론 그가 제시한 파격적인 조건도 한 몫했다. 우리가 그의 철학을 이어 줄 수 있다는 확신, 이것이 파격적인 조건의 유일한 이유였다.


사단법인 맥주문화협회를 막 설립하고 새로운 활동을 하느라 분주했지만, 나에게 독립맥주공장은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왔다. 19세기 문화적 판타지 공간인 정동은 크래프트 맥주와 너무 잘 어울렸고 독립맥주공장이라는 브랜드는 무궁무진한 스토리 텔링을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혼자 할 수는 없는 일. 뜻을 함께 할 몇몇 맥주 지인들에게 이 프로젝트를 제안했고, 다행히 모두 이 공간의 미래 가치에 투자를 결정했다.


이곳을 운영할 생각도 상업 맥주를 만드는 일도 관심 없었지만 독립맥주공장은 나의 로망을 채워주는 판타지였다. 코딱지만 하지만 정식 허가를 받은 양조장의 투자자로서 간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고 바지 이사지만 맥주 전문가 프로필에 한 줄이라도 추가할 수 있었다. 한국맥주문화협회장으로 활동하는 나에게 결코 나쁘지 않은 배경이었다. 오비맥주나 하이트 맥주 다음으로 한국을 대표하자는 가오로 '한국맥주주식회사'라는 법인명도 붙였다. 또 누가 아는가. 나중에 독립맥주공장이 대박이 날지.

3E751874-8CB8-4F02-8E20-0F94D02F2255.jpg 정동 독립맥주공장 (출처 : 윤한샘)

하지만 2021년 3월 코로나라는 폭풍은 이제 막 출항한 독립맥주공장호를 격랑에 빠뜨렸다. 이 배는 새로운 선장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주주들의 손가락은 모두 나를 향하고 있었다. 당연히 싫었다. 이미 자영업이 싫어서 도망친 나 아닌가. 게다가 맥주를 만들어 팔라니. 내 인생에 맥주 양조사는 단 한 번도 상상해본 길이 아니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의지와 상관없이 빠져나올 수 없는 묘한 상황이 생기곤 한다. 바로 지금처럼. 이 회사의 '정관'은 '등기 이사'만 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바지 이사였지만 어쨌든 대표가 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맥주 전문가와 자영업 유경험자라는 배경도 한 몫했다. 코로나 시대의 자영업 사장과 팔자에도 없던 맥주 양조 노동자라는 환장의 조합, 인생은 항상 이런 식이다.


코로나로 영업시간이 9시가 된 2021년 12월, 난 아름다운 정동에서 맥주를 만들고 있다. 고비가 아닌 적이 없지만 직원들에게 월급도 꼬박꼬박 주고 있고, 나름 괜찮은 맥주로 '가끔' 손님들에게 칭찬도 받고 있다. 이 글은 코로나 시대에 도심 속 작은 맥주 양조장을 운영하는 한 중년 남자의 분투기다. 한낱 맥주에 좌절하고 환호하는 불쌍한 영혼의 기록이자 정동이라는 역사적인 공간에 멋진 맥주 문화가 드리우길 바라는 한 몽상가의 끄적임이다.


어두운 밤, 효모가 만드는 보글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매장 불을 끄고 나온다. 무사히 하루가 지났음을 감사하며, 내일도 그러하길 바라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