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한샘 Sep 23. 2022

꿀물 같은 축제 맥주,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로 우리 만의 가을 맥주 축제를 만들어볼까?

아인 프로지트, 아인 프로지트, 행복한 삶을 위하여!


텐트 안은 맥주 냄새로 가득했다.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커다란 맥주잔을 들고 원샷을 시도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야유와 휴지가 돌아왔다. 그렇지만 모두가 웃고 있었고 행복해 보였다. 거대한 옥토버페스트 텐트 안에서 사람들은 맥주 하나로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잊은 듯했다.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뮌헨의 테레지안비제(Theresienwiese)는 중년을 넘긴 나에게 맥주 놀이동산과 같았다. 하늘 높이 걸려있는 맥주잔은 롤러코스터 표식 같았고 텐트 입구에서 움직이는 모형들은 흡사 사파리 입구의 인형처럼 보였다. 거리에는 소세지 굽는 냄새가 진동했고 흥겨운 브라스 음악은 거리를 물들이고 있었다. 뢰벤브로이, 학커-프쇼, 슈파텐, 아우구스티너 등 뮌헨 출신의 맥주들이 즐비했지만 내가 선택한 텐트는 멋진 수도사 얼굴이 각인된 파울라너(Paulaner)였다.



세계 최대 맥주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

뮌헨 옥토버페스트. 저 멀리 파울라너 맥주잔이 보이는가  @윤한샘
19세기 옥토버페스트

600만 명이 방문하고 800만 리터의 맥주가 소진되는 세계 최고의 축제, 매년 9월 마지막 주부터 약 2주에 걸쳐 진행되는 이 엄청난 이벤트는 원래 맥주축제가 아닌 경마대회였다. 1810년 10월 12일,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황태자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을 기념하기 위해 막시밀리언 황제는 경마대회를 개최했다. 지금 옥토버페스트의 장소인 테레지안비제가 바로 경마대회가 열렸던 곳이다.


이 대회가 국민들의 인기를 얻게 되자 1918년 뮌헨 시는 옥토버페스트를 매년 열기로 결정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술과 음식이 있는 법, 대회를 보러 오는 손님들을 위해 작은 여관과 선술집이 생기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맥주도 함께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맥주는 경마를 제치고 축제의 주인공이 된다. 이 시기는 양조장들에게 한해 매출을 예단할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버는 기회였고 축제에 오는 사람들도 눈치 보지 않고 질펀하게 취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바이에른 황제도 맥주순수령에 따라 양조된 맥주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한 정치적 도구로 이용하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독일이 통일되며 바이에른 왕국은 사라졌지만 옥토버페스트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현재 옥토버페스트 맥주라 불리는 스타일도 이때 시작된다. 원래 옥토버페스트의 주인공은 어두운 색 라거인 둔켈(dunkel)이었다. 하지만 1871년 새로운 맥주가 등장하며 둔켈을 밀어낸다. 깨끗한 마호가니 색, 캬라멜 힌트와 묵직한 바디감으로 무장한 이 맥주의 이름은 메르첸(märzen)이었다.


사실 메르첸은 둔켈의 대타였다. 축제 도중 둔켈이 동이 나자 프란치스카너 양조장은 막 출시한 메르첸을 급히 투입했는데, 이게 대박이 났다. 심지어 얼마 지나지 않아 옥토버페스트 공식 맥주로 지정되기도 했다. 현재 옥토버페스트 맥주는 메르첸에 바탕을 두되, 살짝 튜닝되었다. 색은 다소 밝아졌고 알코올은 5.8% 정도로 살짝 높아졌다. 축제 맥주의 덕목인 ‘많이 마시게 하라’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바디감과 쓴맛도 낮췄다. 지치지 않고 마시게 하기 위한 모든 요소를 고루 갖춘 무서운 맥주가 된 것이다.



수도사와 빈민을 위한 맥주, 파울라너

파울라너 맥주 마차 @윤한샘

옥토버페스트에는 뮌헨에 양조장을 둔 아우구스티너, 슈파텐, 학커-프쇼, 뢰벤브로이, 호프브로이하우스 그리고 파울라너, 6개 브랜드만 참여할 수 있다. 이 중 파울라너 텐트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건, 순전히 기둥에 달려있는 맥주잔과 입구에 붙어있는 수도사 얼굴 때문이었다. 물론 한국에서 경험했던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와 현지에서 마시는 맥주와의 차이점도 궁금했다.


파울라너는 ‘성 프랜시스의 파올라‘의 가르침을 따르는 수도사들을 말한다. 1627년 로마에서 뮌헨으로 건너온 이들은 파올라 수도원을 세운 후 맥주를 만들었다. 이들은 수도원에서 사용하는 맥주를 제외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눠주었는데, 맥주의 품질과 맛이 매우 뛰어나 당시 일반 양조장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18세기 말 나폴레옹이 유럽을 정복하며 교회 재산 몰수와 수익 사업 금지를 시행했고 파올라 수도원 또한 이때 사라졌다.


1806년 한 남자가 뮌헨 시의 재산이던 파올라 수도원을 양조장으로 재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프란츠 크베르츠 차허는 껍데기만 남아 있던 수도원을 임대해 양조장으로 개조한 후 파올라 맥주 복원에 매진한다. 1811년 마침내 복원에 성공한 그는 1813년 양조장을 인수했고 파울라너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재 파울라너는 뮌헨을 대표하는 양조장으로 다양한 독일 맥주를 만들고 있으며 6번째로 잘 나가는 독일 맥주 브랜드로 성장했다.



독일인의 해우소, 옥토버페스트


텐트 밖 테레지안비제는 맥주 없이도 신나게 놀 수 있는 놀이터다. 관람차와 롤러코스터, 소세지를 비롯한 지역 음식들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맥주 텐트 안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이곳은 맥주가 없으면 아비규환이 될 수도 있다.


파울라너 텐트로 들어서자 수십 명이 앉을 수 있는 긴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지붕에 걸린 노란색 휘장들이 햇빛을 분산시켜 텐트 내부는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대충 봐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그 규모가 얼마나 큰 지, 모든 광경이 마치 원근법을 적용한 것처럼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이 초현실적인 모습으로 바뀐 건, 바로 그 다음이었다.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텐트 @윤한샘

중앙에 설치된 무대에서 철 지난 팝송을 연주하던 브라스 밴드가 ‘아인 프로지트’(건배)라는 옥토버페스트 권주가를 시작하자 수천 명의 사람들이 떼창을 하며 동시에 맥주를 마시는 게 아닌가. 개중 흥이 과다한 누군가는 테이블에 올라가 원샷을 시도했고 거나하게 취한 다른 이는 엉덩이를 까고 춤을 추기도 했다. 내가 알던 독일인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본능에 충실한 채, 맥주에 몸을 내던지는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다. 물론 독일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옆에 있던 한 무리는 자신들을 미국에서 왔다고 소개했고 뒤 테이블에는 일본인처럼 보이는 동양인들도 있었다. 나 또한 한국에서 온 맥주광 아닌가.


맥주의 종류와 사이즈는 단 하나, 1리터(mass)짜리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였다. 손가락으로 개수를 알려주자 전통 복장인 디언들(dirndl)을 입은 서버가 양손 가득 맥주를 가져왔다. 두꺼운 흰색 거품과 진한 황금색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보니 벌컥벌컥 들이키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다. 마스 잔은 두껍고 무거웠지만 무슨 상관이랴. 게다가 ‘아인 프로지트(건배), 아인 프로지트’를 외치는 군중들의 소리가 계속 귓등을 때리고 있었다.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 @윤한샘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 @윤한샘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다 @윤한샘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는 과장 조금 보태서 꿀물 같았다. 단맛은 섬세했고 쓴맛은 없었다. 적당한 탄산감과 부드러운 목넘김은 맥주가 아니라 꿀을 탄 청량음료와 다름없었다. 맥주는 ‘여기서는 취해도 상관없으니 많이 마시라‘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있었다.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고 춤추고, 이 텐트는 맥주로 근심과 욕망을 해갈하는 ’해우소‘였다. 맥주를 통해 어울리고 하나가 되는 모습, 옥토버페스트의 본모습은 여기에 있었다.


2022년 9월 17일, 독일 뮌헨에서 옥토버페스트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식으로 재개된다. 많은 사람들이 텐트에서 맥주와 함께 그간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어 놓을 것이다. 물론 한국에서 이 축제를 가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못 간다고 해서 슬퍼할 필요는 없다. 파울라너 옥토버페스트 맥주 하나, 마스잔 하나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바로 그곳이 바로 우리의 옥토버페스트다. 소박해도 괜찮다. 맥주 그리고 사람이 함께 하는 행복한 가을을 그려보면 어떨까? 가을에 마시는 축제 맥주는 그래서 시원하고 더 맛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쾰른의 자유를 담은 맥주, 가펠 쾰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