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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y 07. 2017

긴 휴가를 떠나보내며

삶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부분에 대한 단상

3월에 입사한 후, 쭉 기다려왔던 황금 같은 시간이 있었다. 바로 오늘로 끝이 나는 연휴 기간.

8월이면 또다시 백수가 될지도 모르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징검다리 연휴에 월차를 끼워 맞춰보겠다고 전전긍긍한 결과, 9일의 휴가를 쟁취했고, "난 다 나오긴 하는데, 은지씨는 편히 쉬고 와요."라는 팀장님의 말에도 웃으며 "감사합니다." 했다. 뻔뻔하기보단 멍청해 보였기를 빌어본다.


나의 첫 JIFF.


휴가는 전주에서 시작됐다. JIFF 개막을 맞춰 출장을 갔고, 개막일인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업무를 포함한 다양한 술자리에 함께했다. 꽤 많은 영화제를 다양한 신분으로 참여했지만, 내 첫 전주 영화제 방문에 출장이라는 경험이 더해지니 상당히 두근거렸다. 게다가 개막일 날씨가 얼마나 좋았는지.

전주 출장을 기점으로 여름이 찾아온 것 같다. 이튿날부터 서울에서 싸간 긴 옷들을 입을 수 없는 날씨가 되어 반팔티도 한 장 샀다.

전주 객사는 그야말로 영화인들의 거리였다. 세네 걸음마다 일행들이 각자의 지인을 만났고, 유명인들 역시 편안한 모습으로 콩나물국밥과 칼국수를 먹으러 왔다. 지난겨울, 단기로 근무했던 직장을 떠나며 이제 국내의 웬만한 배우들은 다 봤으니 신기할 것도 없겠다고 생각했지만, 연예인들은 봐도 봐도 신기하다.

계획했던 영화를 꽤 많이 보긴 했지만, 아침에 아무리 부지런을 떨어도 예매할 수 없었던 작품이 몇 있다. 채 보지 못한 영화들은 더 부지런히 움직여 꼭 극장에서 챙겨봐야겠다.


오랜만이지 않니 우리.

일요일 오후 느지막이 광주로 향했다. 바로 본가로 가지 않고, 친구 집에서 하룻밤 머무를 계획이었다. 집을 내어준 친구도 꽤 오랜만에 보는 친구였고, 함께 보기로 한 친구는 더욱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친구였다. 전주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술자리를 가졌기에 술보다는 마주할 얼굴들이 기다려지는 자리였다.

'긴 공백이 무색할 만큼 하나도 어색하지 않아'라는 말이 있다. 물론 나도 그런 사이의 친구가 있다고 생각했다. 허나, 요새는 어색하지 않다기 보단 '어색하지 않을 수 있게 터놓을 이야기가 많은 사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의 변화가 잦고 다채롭다거나, 자지러질 만큼 웃긴 이야기가 있다거나,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성과를 만들었거나.

사실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꽤 긴 시간 고시공부 중인 친구와 교대에 재학 중인 친구 그리고 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출근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인 것 같아.' '그래 나도 요새 교생실습 때문에 여섯 시에 일어난다니까.' '공부하는 나보다 훨씬 빠른 시간이네.'

그래도 술술 들어가는 술 덕에 시간은 잘 흘렀다. 조금 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이야기는 계속됐고, 나는 요새 글을 쓰고 싶다는 오랜 꿈을 이뤄보려고 찔끔거리고 있다고도 고백했다. 그 덕에 고등학교 때로 거슬러간 우리는 그때, 각자의 꿈이 뭐였는지 잠깐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랑 얼마나 같고 다른 지도.

아마 이러한 회상은 나이를 많이 먹어도 아니 죽을 때까지 계속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회상 속에서 언제나 그 꿈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 같이 교복 입고 앉아있었던 때로 돌아갔던 것 같다. 각자 어떤 감정 속에 있었을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이야기 같이 하는 거, 진짜 오랜만이지 않니 우리!"


집이라는 공간.

스무 살부터 자취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때도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어떻게 보면 집을 나와 산지 정말 오래되었다. 자취와 기숙사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을 말하자면, 바로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땐, 외박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으며 부모님이 계신 집에 도착해서야 '아 집에 왔다'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새는 본가에 다녀왔다 자취방에 도착하면 '집에 왔네'하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이 생각이 자취 초반에는 참 싫었었다. 본가에 가면 손님처럼 대해지는 게 싫었고, 없어진 내 칫솔과 이부자리, 내 공간이 서러웠다. 뭔가 난 아직 여기가 내 집이었으면 좋겠는데 쫓겨나는 기분. 그래서 방학 때나 연휴기간은 꼭 본가에서 꽉꽉 채워서 보냈으며, 그곳에 내 흔적이 남아있길 몰래 바라곤 했었다.

집이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다. 지금 내게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는 이제 내 자취방이 다 차지한 것 같다. 그리고 부모님이 계신 본가는 또 다른 의미로 채워지고 있다.





휴가 직전, 친구와 소맥을 마시며 신세 한탄 비슷한 것을 했었다. 내 삶을 차지하는 다양한 부분들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요새 나를 괴롭힌다고. 가족도 연애도 직장도 친구도.

도대체 인간은 왜 사회적 동물이냐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까지 해가며 말이다.


긴 연휴 기간 동안, 그 부분들이 아직 다 괜찮다는 것을 확인했다. 괜찮고, 막힘 없이 흘러가고 있으니 난 내 위치에서 잘 해가면 된다는 확신이 조금 들었다. 내일부터 다시 잘 해봐야지. 긴 시간 동안 잘 쉬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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