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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Sep 30. 2017

우리 때는 말이야.

지금 내가 명절을 무서워하는 '진짜' 이유


오늘도 별 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지난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작업을 핑계 삼아 느지막이 일어났고, 사과 한 개를 깎아먹으며 늦은 오전을 시작했다. 요즈음의 일과로 자리 잡은 자소서와 인적성 공부를 위로할 겸 친구와 카페에서 만났다. 수다보단 각자의 손가락을 움직이기 바빴고, 뇌 주름이 쫙쫙 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의 우리'가 누려야 할 행복을 핑계 삼아.




자리를 옮겨 소주를 두 잔쯤 먹었을 때, 친구가 오늘 아침 오빠와 펼쳤다던 논쟁거리를 얘기했다. 친구의 오빠는 얼마 전 모두가 아는 기업에 입사했다. 지금의 내가 겪고 있는 불안과 고난을 극복(?)해낸 오빠는, 요즘 젊은 애들이 노력은 안 하고 사회만 탓하는 게 탐탁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뭘 대충 적당히 살면서 사회 구조에 문제가 있다고 떠든다고 말이다.

그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그게 맞나 싶기도 하고.




이번 추석은 내가 처음으로 무섭다고 느낀 명절이다. 지긋지긋한 수험생 시절을 보냈을 때에도, 난 친척들을 만나는 게 당당했었다.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고 워낙 떽떽대기도 해서, 나한테 잔소리를 하는 어른들은 없었다. "시험은 잘 봤니?", "반에서 몇 등이나 하니?"라는 질문이 두렵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이십 대의 중반을 넘어가는 이 시점에서, 질문은커녕 시선조차 두렵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저 눈빛으로 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배가 불러서, 눈이 높아서,  젊은 애가 취직을 못하고 있다더라.


'세대 간의 갈등'

젊은 세대는 사회 구조에 불만을 갖고, 기성세대는 지금 너희는 행복한 시대 속에 살고 있다고 말한다.


멀리 있는 얘기가 아니다. 그리고 내가 늘 '젊은 세대'에 속하는 것도 아니다.

몇 달 전, <우리들>이라는 작품에 대해 쓴 글에 했던 말이 생각난다. "그땐 그래", "지나고 나면 그거 별거 아니야"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 어른이 되기로 결심했던 것.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때엔 반 친구와 싸우고 나면 정말 학교에 가는 게 싫었었다. 특히 그 친구가 반의 흐름을 쥐고 있는 친구라면 더욱 그랬다. '차라리 학교가 무너졌으면'하는 생각도 해봤다.

지금은 '그래 그땐 그랬지'라고 회상할 만큼의 기억이다. 가슴 절절한 상처도,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도 아니다. 그땐 그렇게 우주같이 크기만 했던 걱정이 말이다.


사실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닌 기억이 대부분이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듯.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별거 아니다'라는 사실을 절대 강요해선 안된다. 

어찌 됐건 사람은 다 자기의 세상 속에 산다. 내가 먹어보지 못하고, 만져보지 못하고, 겪어보지 못한 것은 절대 완연히 알 수 없다. 그렇기에 가장 폭력적인 말이 "그거 별거 아니야"다.




"우리 때는 말이야, 지금 같은 고민은 생각도 못했어"

"눈이 높아서 그래, 세상에 일할 데가 얼마나 많은데"


지독한 가난과 독재를 물려주고 싶지 않아했던 모든 인생 선배에게 감사하고, 그들의 삶을 존경한다.

허나, 지금의 현실이 독일에서 석탄을 캐고 민주화를 외치던 시대보다 질적으로 뛰어나 보일지라도, 태어나 겪은 세상이 이것이 전부인 이들에겐 분명 그 세상 속의 상처와 고난이 있다. 그걸 '별거'라고 치부하는 건 분명한 오만이다.




생각해보면 "난 이래서 힘들어요"라는 말에 대한 반응은 "그래 그렇겠구나" 혹은 "그래 그렇니?"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닐까. 왜 우리 주변엔 "난 이래서 힘들어요"라는 말에 "나는 더 힘들어!"라는 반응이 나오는 경우가 더 잦을까.

친구는 고난을 자랑하는 거라고 했다. 이건 사실 비밀 아닌 비밀이지만, 나와 친구는 '성악설'을 꽤 진지하게 믿고 있다. 그래서 뭐든 이겨먹으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고 결론을 냈다. '잘난 거든 힘든 거든, 너보단 내가 더 커!'


네 시간을 달려 부모님을 뵈러 갈지, 그냥 여기 남을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자정을 넘겨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는 연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긴 휴가를 맞아 오랜만에 술을 마시는 사람도, 양손 가득 명절 선물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사실 난 지금의 내가 좋다. 지금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과 고민을 천천히 누려보고도 싶다. 지금은 사소해 보이는 선택이 앞으로의 인생에 닥칠 큰 변화를 결정하는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왜 여전히 조급한 지. 밀린 잡지와 책 보다 취업 사이트에 먼저 손이 가는 이유는 무엇인지.

왜, 명절이 조금 무서워졌는지. 고민을 해야 할 것도 같으면서 안해야 할 것도 같은 이상한 기분이 드는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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