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라는 사실이 주는 무게감, <택시운전사>
영화 속에는 '당신은 철저하게 스크린 밖에 있습니다.'를 인지시키는 순간이 있다. 작품에 등장하는 특정 인물에 빙의해, 그의 감정을 쫓는 걸 즐겨하는 나는 이러한 순간을 마주칠 때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짜릿함(?)을 느낀다. 공포영화 속에선 '그래, 난 안전해', 전쟁영화 속에선 '난 죽지 않을 거야'로 대변되는 느낌이랄까.
내게 영화는 철저한 관음의 행위이다. 인간 수명이 꽤 길어졌다 한들 살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어찌 됐건 한정되어 있다. 하루는 24시간이고, 내 몸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문학과 예술은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 나와 같은, 수많은 'Peeping Tom'들을 동력 삼아.
<택시운전사>는 '외부의 시선'을 잃지 않는다. '서울 사람, 택시운전사로 그려지는 만섭(송강호 분)이 오롯이 10만 원을 위해 광주로 향한다'는 설정에서도 작품은 당당히 외치고 있다. 광주를 '바라볼 것'이라고.
하나, <택시운전사>가 '바라보는' 광주
<택시운전사>는 관음의 한계에 속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껏 1980년 5월의 광주를 다룬 모든 작품들이 그러했듯, 연출가는 인터뷰를 통해 "실제는 더욱 참혹했으나, 영화에서 미처 다 다룰 수 없었다"는 말을 건네고, 그 시간 속에 있을 수 없었던 수많은 관객들은 그 '실제'를 짐작하기를 무서워한다.
<택시운전사>가 만섭의 시선을 택한 것은 어쩌면 탁월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화려한 휴가>가 희망을 찾아 금남로로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26년>이 1980년 광주의 주범을 심판하기 위해 뭉친 사람들의 시선을 보였다면, <택시운전사>는 그때에 없었던, 지금 스크린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시선을 그렸다. 장훈 감독은 '대중적'인 시각으로 그날의 광주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한다. 만섭이 금남로의 참혹함을 목도하는 순간, 관객이 만섭의 시선을 자신의 시선이라고 느끼길 원했다고도 했다. 이러한 감독의 바람대로, 꽤 많은 관객들이 감독의 의도대로 작품을 바라봤을 것이다. 나 역시 감독이 만든 초록색 택시에 탑승해 감히 짐작도 할 수 없는 그 날의 광주를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바라볼 뿐이다. 총격전 속에서 쓰러져가는 시민들의 모습, 그리고 이를 클로즈업하는 카메라의 시선을 무능하게 따라갈 수밖에 없으며, 그 '불편함'을 함부로 불편하다 느끼고 눈을 감아버릴 수도 없다. 참상(慘狀)을 비추는 카메라, 그리고 이를 그려내는 작품의 윤리적인 태도에 대한 고민이 들면서도 말이다.
참혹한 현장 속에서 하나가 되는 만섭과 피터(토마스 크레취만 분)의 군더더기 없는 호흡, 순천에서 다시 광주로 향하기 직전의 만섭의 노래에 담긴 감정을 동력 삼아 이 불편함을 걷어내려 해봐도, '사실'이라는 사실이 스크린을 바라보는 마음을 무겁게 누른다. 이 무게를 견뎌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무능함에 속상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그리고 그럴 줄 알면서도, 스크린에서 마주할 수 밖에 없었던 작품이다.
둘, 서프라이즈에는 없는 서스펜스만의 스릴
서스펜스와 서프라이즈는 자각의 유무에 차이를 둔다. 테이블 아래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 관객에게 범인이 폭탄을 설치하고 나가는 장면을 보여준 후, 피해자가 들어온다. 폭탄이 터지기 5초 전, 관객에게 스릴을 느끼게 한다면 서스펜스, 반면에 관객에게 피해자의 시선만을 제공하여, 폭탄이 설치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폭탄이 터짐과 동시에 관객에게 스릴을 느끼게 한다면 서프라이즈라 일컫는다. 과거의 이야기, 특히 역사적인 사실을 다루는 모든 작품들은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열한 살 딸을 키우고 있는 만섭은 복에 겨워서 시위를 하고 다니는 대학생들은 전부 사우디에 가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임을 느낄 수 있을 터이니. 딸 은정이만이 세상의 전부인 그가 밀린 사글세를 해결하기 위해 광주로 향한다. 광주를 왕복하는데 기꺼이 10만 원을 내겠다는 독일 손님 피터는 그에게 찾아온 행운인 것만 같았다.
여기서부터 관객은 서스펜스 속에 놓여진다. 피터가 예뻐 죽겠는 만섭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관객은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러닝타임의 1/4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이제 나머지 3/4는 예측과 긴장의 연속이다. 만섭이 언제쯤 광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게 될까, 만섭과 피터가 어떤 일을 겪을까, 그들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심장을 들었다 놓는 서프라이즈와는 달리, 서스펜스에는 심장을 부여잡게 하는 긴장이 있다. 그리고 그러한 긴장은 작품 말미에서 관객이 알고 있는 사실을 스크린을 통해 보여주며 차분히 완화된다. 그 긴장의 완화에 눈물과 감동이 더해진다면, 그 결말이야말로 서스펜스를 기반으로 하는 역사물이 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카타르시스가 아닐까.
관음의 체험이 영화의 수많은 매력 중 단연의 것이라고 여기는 마음에 작은 균열이 생겼다. <택시운전사>는 '바라보는'것이 줄 수 있는 가장 힘든 무게감을 남겼다. 이 영화가 같은 시공간을 담은 다른 작품들보다 더욱 힘겨웠던 이유는 장훈 감독이 택한 그 시선 '덕분'일 것이다. 그 시선을 통해 진상규명에 다가가고자 한다는 감독의 목표가 이뤄질지는 모르겠다. 허나, 만섭의 시선 속에 갇혀있던 스크린 밖의 각기 다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엔딩크레딧이 끝난 이후에도 그 시선과 무게감을 길게 느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