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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12. 2017

문라이트와 토마토당근맥주

경험하기 전엔 감히 추측하지 말 것.

<문라이트>를 꼼꼼하고도 차분하게 감싸고 있는 소수자성은 리틀의 눈동자를 통해 짙게 드러난다. 소년, 흑인, 게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주인공은 엄마, 후안, 그리고 케빈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이 작품에서 꼭 짚고 싶은 것이 있다면, 바로 선형적 서사를 잇고 있는 점멸일 것이다.



하나, 리틀과 샤이론 사이 "긴장 풀고, 잡고 있으니까"

<문라이트>에 두 번 등장하는 점멸은 처음엔 푸른색으로 그리고 두 번째엔 붉은색으로 형상화된다.

<문라이트>에서 명장면을 꼽으라는 질문을 들은다면 단연 리틀이 후안에게 수영을 배우는 장면일 것이다. 마약 밀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에서 리틀을 발견한 후안은 그를 세상의 중심으로 데려가려 한다. 자신 역시 그 변두리에서 어두운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자신을 괴롭히던 또래 아이들을 피해 끊임없이 끝으로 도망치고 있던 리틀에게 이러한 후안은 '안정감'이었을 것이다.

리틀이 샤이론이 되기까지의 그 시간을 우리는 깜빡이는 푸른 점멸로만 짐작한다. 점멸이 끝나면 부쩍 자란 샤이론이 있을 뿐, 그 긴 시간이 어떠했을지는 잘 모르겠다. 허나, 그 점멸을 사이에 둔 리틀 그리고 샤이론은 자신을 변두리로 밀어 넣으려는 사건들이 벌어질 때마다 물을 찾는다. 욕조에 뜨거운 물을 부어 거품목욕을 하기도 하고, 얼음물에 얼굴을 담그기도 한다. 그래서 감히 짐작만 해본다. 리틀과 샤이론은 후안을 무척 그리워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둘, 샤이론과 블랙 사이 "물 좋아하니? 불도 소개시켜줄게"

후안이 물이었다면 케빈은 불이었다. 위의 대사는 작품 속에서 케빈이 샤이론에게 담배를 권하며 뱉은 말이다. 케빈은 샤이론에게 처음으로 생긴 친구였으며 처음으로 느낀 사랑이었다. 하지만 디니아얼 게이로 보이는 친구(샤이론을 괴롭히는)에 의해 케빈은 샤이론을 배신한다.

이후 붉은 점멸과 함께 또 한 번 긴 시간이 지난다. 그 시간 동안 케빈은 불을 다루는 직업을 갖는다. 잔잔한 파도를 좇았던 샤이론에게 케빈은 요동치는 불꽃같았고 그 불꽃은 붉은 점멸이 상징하는 긴 시간 동안에도 꺼지지 않았다. 케빈과 샤이론이 다시 만나는 순간, 우리와 그들은 함께 'Hello Stranger'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It seems so good to see you back again

How long has it been?

...

Ohh I'm I'm I'm I'm I'm so glad.


샤이론을 블랙으로 만든 그 시간 동안, 그에게는 단단한 근육과 큰 덩치가 생겼다. 하지만 케빈의 전화를 받는 순간 블랙에게서 리틀의 눈빛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케빈에게서 케빈 주니어의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에도 그는 여전히 리틀과 같은 눈빛이다. 지금껏 꺼지지 않았던 그 불길을 다시 마주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라이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내 몸에 손댄 건 너뿐이야, 그때 이후로 관계 가진 적 없어."




경험하기 전엔 감히 추측하지 말 것
맛보기 전엔 감히 짐작하지 말 것



상수역 근처에 달큼한 맥주들을 파는 곳이 있다. <문라이트>의 점멸의 서사를 곱씹을수록 이와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요새는 워낙 다채로운 스몰비어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터라 어디서든 과일맥주, 칵테일 맥주를 맛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과일맥주도 이곳의 토당맥주를 이길 순 없다. 적어도 내가 가본 곳 중에선 말이다.



토마토주스와 당근주스 그리고 맥주 사이의 그 오묘한 맛.


처음 이곳을 방문했을 땐 함께 간 지인과 가위바위보를 했었다. 이름도 특이하고 처음 보는 맥주이기에 진 사람이 먹어보자는 농담이었다. 그 첫 잔을 시작으로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토당 맥주를 마셨다.


토마토, 당근 그리고 맥주를 담은 저 한 잔이 그러하듯, <문라이트>는 오묘하다. 성장하는 듯 보이지만 성장하지 못하는 성장기를 다뤘고, 그 성장을 돕는 듯 보이는 후안과 케빈 역시 마약상과 엇갈린 성 정체성이라는 한계 속에서 오히려 샤이론을 가둔다.

그래서 <문라이트>는 결국 블랙이면서도 샤이론이고, 샤이론이면서도 리틀인, 그리고 무엇보다 리틀이자 블랙인 한 소년의 이야기이다. 이를 관통하고 있는 '물'과 '불'의 상징성은 성장을 위해 그에게 꼭 필요했던 안정감과 욕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내가 보지 못했던 그 점멸속에 담긴 그의 이야기처럼, 그에겐 3막에서 4막으로 나아갈 시간과 점멸이 또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이 성장 없는 성장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에 대한 고민을 않기로 했다. <문라이트>가 서사와 상징과 그 은유를 통해 남기고자 했던 것이 '성장'만이 아님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토마토당근맥주를 처음 마셔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그 순간, 가위바위보를 하자고 했던 그때처럼. 그 점멸 속에 담긴 무수한 시간들을 감히 짐작하지 않기로 했다.

그 짐작이 두려움을 낳아 결국 그 시간으로 도달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가위바위보를 하려고 결심하지 않았다면 내게 이토록 분위기 좋은 곳에서 오묘하고도 달큼한 과일맥주를 대여섯 잔째 마시는 행복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라이트>를 보고 오묘한 과일맥주를 마시며 스스로의 인생은 몇 번째 막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길 추천해본다. 그리고 과연 그 막을 지나치며, 얼마나 변해왔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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