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이 Mar 12. 2017

연애담과 데스페라도

첫 키스, 첫 경험, 첫 연애, 그 모든 처음의 완연한 민낯

인생의 모든 처음 순간들을 가만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걸’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부끄러운 순간이 있다. 하지만 ‘처음’이기에 괜찮다고 자신을 달래고, 그때의 기억을 애써 밀어내 보곤 한다. 그때 나는, 우리는 서툴렀으니까. 그래서 그랬으니까.



하나, 사랑과 상실을 온전히 담아내는 이상희의 연기.

윤주는 그랬다. 지수를 온전히 사랑했고, 그래서 서툴렀다. 지수에 대한 사랑과 미움을 얼굴에 숨기지 못했고, 그 덕분에 나는 마치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연애를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윤주의 감정을 고스란히 알아버린 듯해 미안했고, 그런 윤주의 모습에서 지난 내가 보이는 것 같아 간지러웠다.

이상희는 그렇게 윤주를 담아냈다. 크고 작은 작품에서 커리어를 쌓으며 만들어온 큰 품으로 윤주를 담아낸 것이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모두의 첫사랑이 보였고, 표정 하나하나에서 설렘과 상실이 보였다. 빈틈없이 완벽했다. 그래서 감히 확신해본다. 윤주를 만난 관객들 모두, 그들의 첫 연애를 여러 번 곱씹었을 것이라고. 이상희의 온전한 연기 덕분에.



둘, 지극히 평범한 모두의 이야기.

‘아, 그거 퀴어야?’ 맨 처음 <연애담>을 추천해준 지인에게 들은 질문이다.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잠시 망설인 이유는 내게 <연애담>이 지극히 당연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떠한 프레임으로도 가둘 수 없는 당연하고도 평범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연애담>은 노골적으로 ‘예술영화’라는 타이틀을 얻고 싶어 하는 현재의 모든 퀴어영화에게 일침을 가한다. 특별하다는 소리를 듣고자 안달이 난 작품들에게 크게 한 방 먹인다. 같이 밥 먹고, 걷고, 자고, 눈 뜨는 그 모든 사소함을 이야기함으로써 말이다.

윤주와 지수의 연애 역시 조건에 부딪힌다. 많은 2, 30대가 무릇 그러하듯, 경제적 불안정성은 위태로운 환경을 조성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들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자취방에서 아버지의 집으로 옮겨간 지수와 친구의 집에 월세를 내고 살면서 그녀의 정체성과 싸워야 하는 윤주의 모습이 그러하다.

누군가 내 삶으로 들어온다면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전보다 무거워진 삶의 무게를 기꺼이 이겨내리라 다짐하고, 또 그것이 너무 버거워 내려놓기를 수십 번 반복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평범한 ‘연애담’이 아닌가.



셋, “잘 보이고 싶어서”와 “보고 싶었어”

지수로 인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사랑을 시작한 윤주는 그녀에게 끊임없이 다가간다. 행여나 식어버릴까 꼭 품고 온 군고구마가 이를 보여준다. 이게 뭐냐며 웃는 지수에게 윤주는 “잘 보이고 싶어서”라는 말을 건넨다. 그냥 그거다. 다른 이유는 없다. 윤주는 정말 지수에게 잘 보이고 싶었던 것이다. 처음으로 함께 자고, 먹고, 웃고 싶은, 설레는 사람이 생겼으니 말이다.

아버지의 권유로 선을 보고, 그 만남에서 윤주에 대한 마음을 확인한 지수는 윤주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보고 싶었어”라고 한다. 그녀가 건넨 한 마디는 극복이다. 그들의 화해는 다시 삶의 무게를 견뎌내 보겠다는 다짐이며, 기꺼이 모든 걸 감내하겠다는 행위이다.


그 달달함이 좋았다가도 씁쓸함 때문에 다시 찾게 되는,
잊을 법하면 다시 생각나는




마냥 달달한 줄 알았는데 데낄라 베이스였다.  달달하기 그지없는 첫맛에 속아, 한 캔을 더 마시면 그때서야 그 씁쓸함을 알 수 있다. <연애담>을 보고 나니 데스페라도를 두 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데스페라도는 왠지 한 캔만 마시기 아쉬운 맥주다. 사실 모든 맥주가 그러하지만.

데낄라를 좋아하진 않지만 데스페라도는 좋다. 우리가 겪고 있는 연애의 순간도 그러할 것이다. 상대방의 어떠한 면이 좋아 연애를 결심하고, 점차 싫은 구석이 보여 망설이다, 이 망설임에서 한걸음 나아가면 이별을 결심한다. 허나, 그 망설임에서 다시 뒤를 보면 내가 연애를 결심했던 그 순간이 보인다.

그래서 내게 연애는 데스페라도 같은 것이다. 싫어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도 그냥 다 더해 잘 담아두면 한 캔만 마시기에는 아쉬운 존재가 된다. 그 달달함이 좋았다가도 씁쓸한 맛 때문에 다시 찾게 되는, 잊을 법하면 한 번쯤 더 맛보고 싶어 지는 그런 것 말이다.


데스페라도를 마시고 싶은 날이면 이제 <연애담>이 생각날 것이다.

<연애담>의 윤주와 지수는 어쩌면 다시 포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처음이니까. 그들이 함께 겪을 모든 것들이 처음일 것이니까. 그냥 그렇게 사랑하고 또 울고 웃으면 된다. 어차피 우리 모두 처음 사는 삶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문라이트와 토마토당근맥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