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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13. 2017

23 아이덴티티와 기네스

학대가 낳은 결과들의 좋지 않은 만남


샤말란 감독이 식스센스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듯했다. 이미 영화계에 낭자한 자아분열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풀어냈을까를 기대했고, 예고편을 보며 그가 풀어낼 공간적 장치를 상상해봤으며, 무엇보다 맥어보이가 더해진다면 가히 완벽하리라 싶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샤말란은 희미하고 맥어보이는 선명했다. 샤말란에 맥어보이가 더해질 것으로 보였으나 맥어보이가 그나마 샤말란을 보이게 했다. 지난 20회 부산영화제에서 <더 비지트>를 가볍게 즐기고 온 탓에 가해진 기대 역시 한몫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실망을 감추기는 어렵다.




하나, 장르적 쾌감을 위해 소비되는 여성 캐릭터에 대한 단상

<23 아이덴티티>는 케이시와 클레어, 마르샤의 뚜렷한 경계선을 확인하면서 시작된다. 오프닝 시퀀스를 통해, 적어도 극을 풀어나가는 하나의 키가 되리라 예상했던 이 경계는 단지 '상처받은 자들이 더 우월하다'는 메시지의 증폭을 위한 상처받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경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제물에 지나지 않았다.

데니스의 강박에 가까운 결벽을 핑계 삼아 그들은 벗겨진다. 작품의 설정을 핑계 삼아 철저히 소비되고,  역할을 다한 후엔 장렬히 퇴장당한다. 극 중 '제물'이라는 설정은 스크린을 구성하는 실재의 시간에서도 적확히 들어맞았다. 그들은 장르적 쾌감을 위한 제물이었다.

또한, 극을 이끌어나가는 축인 듯 보였던 플레처 박사 역시 무기력했다. 케빈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현재 불빛을 차지하고 있는 자아가 누구인지를 분별해내던 그녀는 비스트에 의해 힘없이 소멸된다. 허무는 여기서 극에 달했다.



앞서 말한 케이시와 클레어, 마르샤의 경계는 작품 끝에서 살아남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마무리된다. 이는 고전적 호러영화에서 익히 찾아볼 수 있는 성적, 윤리적으로 문란한 여성 캐릭터는 반드시 사망하며 그렇지 않은 캐릭터는 생을 지킬 수 있다는 원칙을 생각나게 한다. 1999년작으로 전성기를 누렸던 감독에게 남아있는 여전한 스테레오 타입일까. 혹은 작품 말미에서 느낄 수 있는 후속에 대한 암시를 위함일까.

하나 확실한 것은 그 경계를 넘어 세 배우가 모두 노출이라는 쾌감 형성을 위해 벗겨졌고, 이것이 불편했다는 점이다.

한걸음 물러서 본다면 유독 내가 불편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단순한 쾌감을 위해 소모되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이제 꽤 많은 관객들이 실증을 느낄 때도 되지 않았나 싶다. 작품 속에서 움직이는 모든 캐릭터는 그 자체로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들은 자신이 주연인지 조연인지 혹은 단역인지에 대해 전혀 몰라야 한다. 그들의 삶인 작품 속에서 모두가 주연이기 때문이다. 캐릭터는 그 자체로 살아있어야 한다. 설사 관객이 그들의 죽음을 목격할 지라도, 이를 예상하고 있을지라도, 그들은 몰라야 한다는 것이다.



둘, 화두는 던져졌으나 그 깊이가 희미하다.

트라우마와 상처가 강점으로 변하는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작품의 말미에 케이시가 비스트에게 당긴 방아쇠는 이전에 삼촌에게 미처 당기지 못했던 것이었고, 그 상처로 인해 결국 케이시는 살아났다. 허나, 던져진 화두에 비해 모호한 점이 많다.

아동학대는 헐크를 만들어냈고 친족 간 성폭행은 부수물이 되어 소비됐다. 결국 그 두 학대가 만나 좋지 못한 결과가 탄생했다. 이를 후속에 대한 암시라 믿고 미적지근한 느낌을 달래 가며 극장을 나섰다.



희미함과 밍밍함을 극복할
기다림의 미(味) 학

맥주란 자고로 얼음장같이 차가운 캔을 탁 소리가 나게 따서 꿀꺽꿀꺽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갈증에 직격타이자 숨을 참아가며 마시는 그것만이 맥주의 진가라고 생각한다. 허나, 모든 것엔 예외가 있는 법이다.


뭐가 이리 밍밍해. 차갑기 그지없는 기네스를 한 모금 마셨을 때의 느낌이었다. 물과 맥주를 잘 섞어서 맥주 향이 나는 물을 마시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후 한동안 기네스에 손이 가지 않았고, 흑맥주와 안 맞는 줄만 알았다. 그러다 <킹스맨>을 보고서야 기네스를 맛있게 마셔봐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출처: http://bluecactus.tistory.com/233


일단 냉장고에서 꺼낸 기네스에게 잠깐 시간을 주자. 기네스는 온도에 따라 풍미가 달라진다. 냉장고에서 꺼낸 후 잠깐 실온에 두었다가 이 정도면 시원하다 싶을 때쯤 마시자. 우리가 따듯한 요리에서 맛을 더 잘 느끼듯, 차갑디 그지없는 기네스는 밍밍한 맥주 물 맛이었다면, 실온에서 잠깐 기다린 기네스는 로스팅 맥아 향이 가득한 특유의 맛을 선물할 것이다.

또한, 기네스는 꼭 잔에 따라서 마셔야 한다. 캔 안에 들어있는 위젯은 크레미 헤드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으로, 소량의 질소를 내포하고 있고 캔이 열려 압력이 줄어들면 위젯에서 나온 질소와 맥주가 섞여 드래프트의 맛과 유사한 맛을 내도록 돕는다고 한다. 이것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잔에 따라 마셔야 한다. 기네스 특유의 질소 거품은 바깥공기와 닿았을 때 진가를 발휘한다.

기네스를 잔에 따랐다면 이제 맥주와 거품층이 분리될 수 있도록 조금만 기다려주자. 잔에 따르는 순간 맥주와 거품층이 섞이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나뉘기 전에 황급히 마셔버린다면 질소 거품 때문에 느끼한 크림을 먹는 기분이 들 것이다.


잠깐 기다리면 깊은 풍미를 맛볼 수 있다.

샤말란 감독이 던진 화두를 받아들일 깊이가 아직 내게는 없지만, 극장을 나섰을 때의 그 마음가짐이라면 잠깐 기다려볼 만하다. 그리고 후속이 나온다면 다시 기대를 안고 극장으로 찾아갈 것임이 뻔하다.



+) 샤말란 감독의 <더 비지트>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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