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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17. 2017

해빙과 IPA

불친절한 서사로 망쳐진 안타까운 시퀀스의 연속


이수연 감독은 <4인용 식탁> 이후 꽤 긴 시간을 고군분투했다. 초조함이 여러 이야기를 만들어내긴 했으나, 결국 감독의 마음에 드는 작품이 없었을 것. 오랜 시간 끝에 <해빙>이 빛을 봤다. 빠른 호흡의 예고편과 포스터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기 충분했다.

너무 오랜만이었을까. 감독은 불친절했고 그 속에서 낭비되는 시퀀스들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시퀀스 속에서 소모되는 조진웅, 김대명, 신구의 완연한 연기도 그러했다.





하나, 꼭 그렇게 끝냈어야만 했나

<해빙>의 관객은 승훈의 호흡을 따라간다. 승훈에게 공감하고 동조하며, 그가 처한 숨 막히는 상황을 해결하려 숨을 죽인다. 작품의 2/3를 차지하는 시간 동안 공공연해진 정육점 부자라는 악을 해치우기 위한 하나의 팀이 된다.


감독은 관객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원한 것일까. 내 편이다! 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알고 보니 악(惡)이었다. 내가 지금껏 따라온 것은 악의 환상이었고, 완벽하게 속은 것이다. 여기까지 좋다. 그렇다면 정체를 들킨 악이 어떻게 악이 되었는지. 악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지에 대한 차분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충분히 납득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지금까지 내 편이었는데, 저 사람이 왜 나를 배신했는지에 대해서는 알아야 대처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러한 내 의문에 대해 작품은 자상하지 못했다. 알고 보니 승훈이 프로포폴 중독이었다는 설정은 고전적이면서도 파격적이었다. 새롭긴 힘들고 탄탄하지도 못했다.



작품의 주인공이 난관에 빠지거나 영웅일 때, 관객은 그에 감정이입한다. 그 감정을 배반하기로 작정했다면 보다 치밀한 계획이 필요했다. 이건 마치 오래 사귄 애인이 알고 보니 친척인 느낌이다. 내 감정은 상관없이 관계를 끊어야 하는 상황을 맞닥뜨린 것. 불쾌하다.

결론은 승훈의 이야기가 조금 더 필요했다는 것이다. 작품의 중반이 훌쩍 지날 때까지 오롯이 승훈의 감정만을 따라간 나에겐 그를 이해할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게다가 과거의 그를 다 이해하지도 못했는데, 그가 처한 현재의 억울한 상황을 이해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엔딩은 더욱 난해했다.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뼈대도 살점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IPA의 풀네임은 인디아 페일 에일(India Pale Ale)이다. 이는 19세기에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 시절일 때, 영국에서 인도로 페일 에일 맥주를 가져오면서 변질을 막기 위해 알코올 도수를 높이고 홉의 양을 늘려서 만든 맥주이다. 에일의 큰 장점인 홉 향이 더욱 더해진 IPA는 다수의 맥주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는다.


재료는 요리의 장점에 맞춰 첨가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요리는 결국 영화를 관통하는 이야기이며 이를 위해 캐릭터와 배경, 그 외의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변질을 막겠다는 하나의 이유를 위해 홉이나 알코올을 가득 넣었다면, IPA가 세상의 빛을 볼 수 있었을까.

특출 난 재료들을 담기에는 <해빙>이라는 그릇이 작았을지도 모른다. 감독이 추구했던 하나의 특출 난 목표는 짐작이 간다. 그래도 과도하게 사용된 재료는 안타까움을 자아낼 뿐, 잔뜩 넣은 고급스러운 재료가 아깝지 않으려면 뼈대를 구성하는 이야기가 그 어떤 것보다 단단해야 함을 느낀다.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뼈대와 그를 구성하는 말랑한 살점들이 살아 움직이는 작품을 만든다.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뼈대도 살점도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IPA는 에일의 장점이 가득한 맥주다. <해빙>이 배우들의 연기가 가득한 영화가 되고 싶었다면, 에일이라는 뼈대에 홉 향이라는 재료가 적당히 그리고도 어우러지게 더해졌어야 할 것이다. <해빙>의 허무함을 IPA의 씁쓸함으로 위로하며, 이수연 감독의 다음 작품은 보다 빨리 만나볼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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