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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Mar 17. 2017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과 과일소주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누구십니까.


관심 궁금 호감 좋아함. 연애에 대해 이야기하다 친한 친구가 정의해낸 그녀만의 감정 증폭 단계이다. 어떤 사람에게 관심이 생기면 그 사람이 궁금해지고 그 궁금증은 호감을 낳는다. 사람을 궁금해한다는 것은 관심의 증거이자 애정의 표현법이다. 그럼 그 궁금증이 해결되지 않아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나, 홍상수 감독이 진짜를 만드는 법

홍상수 감독의 작품이 '사실적이다'라는 평가를 받는 데는 독특한 촬영 방식이 한 몫한다. 완성된 시나리오를 받고 캐릭터를 연구하고 대사를 숙지해서 촬영에 들어가는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홍상수 감독은 당일 현장에서 대본을 준다. 리허설은 진행되지 않으며, 배우들은 홍상수 감독 특유의 호흡이 긴 대사를 즉석에서 소화해내야 한다. 이런 식의 촬영 방식은 배우들을 극도의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배우는 '진짜'가 된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홍상수의 '진짜'들 중 최고는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의 민정이다. 맡은 역할로서만 기억되는 배우가 되고자 한다는 그녀의 바람처럼, 이유영은 오롯이 민정이 되었다. 민정은 지금껏 감독이 만들어온 여성 캐릭터 중 가장 튄다. 자신을 의심하는 연인에게서 벗어나 '진짜 괜찮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카페에서 카프카의 <변신>을읽으며 그녀는 두 명의 새로운 남자를 차례로 만난다. 그리고 매번 새로운 사람으로 변신한다. 동일한 시간과 동일한 장소에서 그녀는 새로워지고자 한다.



이렇게 민정을 각성시킨 연인은 영수다. 그는 동네 형의 진술에 의해 민정을 의심했고, 그런 민정이 떠난 후로 한쪽 다리를 다친 채 그녀를 쫓는다. 민정이 없는 그의 불안정함은 다친 다리로 형상화되었다. 그들은 같은 시간 속에서 마주칠 듯 마주치지 못했고, 영수의 다리는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표류하던 영수가 결국 민정과 마주치며 극은 종착점을 향해간다. 결단코 자신이 민정이 아니라는 그녀 앞에서 영수의 다리는 나을 수 있을까.

 


둘, 민정은 쌍둥이일까 거짓말쟁이일까

도대체 민정은 뭔가 싶었다. 카페에서 만난 첫 낯선 남자에겐 당신이 자신의 쌍둥이 언니와 자신을 착각한다고 했고, 두 번째 남자에겐 자신을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순진무구한 여성으로 소개했다. 자꾸만 탈피를 시도하는 그녀는 도대체 누구냔 말이다.

알고 보니 영화의 모티브인 '변신'은 민정의 것이 아니었다. 사실 작품 내내 변하고 있었던 것은 영수였다. 그의 시간에서 그녀가 사라진 후, 그는 다리를 다쳤지만 자립을 시작했다. 민정을 쫓는 과정 속에서의 동네 형과의 동행, 낯선 여자의 합석 제안 등을 모두 내려놓자 영수는 민정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민정을 똑바로 바라봤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인간은 인간관계와 이데올로기, 환경, 그리고 언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영수는 이러한 것에 얽매여있는 보통의 사람이고, 민정도 이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다. 민정은 영수가 자신이 민정이 아님을 인정하고 난 후에야 그의 방으로 다시, 함께 들어간다. 그리고 영수 역시 그녀가 민정이 아님을 인정하고 나서야 다리가 조금은 괜찮아진 듯 보인다.

결국 도대체 뭔가 싶었던 궁금증은 해결되지 않았고, 그들은 보란 듯이 시원하게 수박을 먹으며 극을 마무리한다. 그래도 찝찝하거나 답답하지 않은 이 느낌은  아마 그녀가 민정인지 아닌지가 중요하지 않아졌던 영수의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당신이 너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


출처: http://www.bok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33515


과일소주는 그냥 소주보다 잘 들어간다. 희석주 특유의 알코올 냄새를 가려주는 과일향이 있고, 왠지 이걸로는 덜 취할 거 같다는 말도 안 되는 믿음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날 과일소주는 보기 좋게 나를 배신한다. 다른 술을 먹었을 때보다 몇 배 심한 숙취는 다신 그건 마시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절로 하게 한다. 그래도 입에 단 술을 찾게 된다. 맥주랑은 어울리지 않는 안주를 만났을 때, 그냥 소주를 마시면 인상이 찌푸려질 것 같을 때, 싸고 달달하게 취하고 싶을 때.

결국 속는 셈 치고 한번 더 마신다. 나보다 술을 좋아하는 한 친구는 술자리를 가질 때마다 '후회하는 건 내일의 나니까!'라는 슬로건을 내세운다. 나도 그런 마음으로 매번 과일소주를 마신다. 누군지도 모를 내일의 나를 일단 믿는다.


<당신자신과 당신의 것>을 보고 읽었던 글 중, 유독 마음에 드는 말이 있었다. '현실과 판타지를 구분하는 것만큼 쓸데없는 짓은 없다' 비슷한 문장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장르영화의 경계가 무뎌지듯, 결국 현실이 아닌 것은 모두 판타지이다. 그러나 판타지보다 판타지 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고, 현실보다 현실 같은 판타지를 스크린 속에서 쉽사리 만날 수 있는 지금, 둘의 구분이 의미가 있겠냐는 의견이었을 것이다.

극의 말미에 영수가 마주친 민정이 진짜 민정이든 민정의 외양을 한 허상이든 영수에겐 상관없었다. 그는 자립을 결심했고, 그들은 언어와 관계로 칭해지는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겠노라 다짐했다. "당신이 좋아서 당신을 믿을 겁니다." 영수의 이 대사에 그 모든 게 담겨있다. 경계도 의문도 진위도, 모두 앞서는 단 하나의 솔직한 감정에 대한 진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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