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싱겁지만 '쿵쿵짝'
연일 신기록을 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실 친구가 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굳이 혼자 가서 찾아보진 않았을 거 같은 영화다. 나는 국내 인디 뮤지션들의 음악을 좋아한다. 가끔 가사를 곱씹지 않고 멜로디만 흥얼거리고 싶을 때에나 해외 뮤지션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래서 잘 모른다. 그런데 이걸 같이 보자고 했던 친구가 일단 보면 분명 아는 노래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거의 절반 정도 아는 노래였다. 아는 노래라고 하긴 뭐하지만, 흥얼거릴 수 있는 노래들이었다. 프레디 머큐리는 잘 모르지만, "위윌위윌 라큐! 라큐!"는 알았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한 퀸(QUEEN)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의 전기영화다. 완벽한 무대 체질인 데다가 천재적인 실력까지 갖추고 있던 파록 버사라(래미 맬렉 분)는 밴드 '스마일'의 보컬로 합류한다.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밴드의 드러머 로저 테일러(벤 하디 분)와 기타리스트 존 디컨(조셉 마젤로 분)의 앞에서 당당하게 실력을 증명했다. 이후 엄청난 우여곡절이 겪으며, 모두가 알거나 혹은 예상하는 것처럼 대체할 수 없는 업적을 남긴다. 특히 <라이브 에이드>를 재현한 장면은 내 눈앞에 있는 것이 진짜 스크린이 맞는지 의심할 정도로 생생했다. 물론 나는 실제 그 장면을 본 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퀸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내게 프레디 머큐리의 일생은 어쩌면 어느 천재의 뻔한 전기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작품의 플롯이 조금 싱거워도 괜찮았다. <보헤미안 랩소디>가 전면에 내세운 것은 그것이 아니었던 것 같으니 말이다.
올해 여름 오랜 고민 끝에 처음 퇴사를 결심했을 때, 가까운 친구가 이런 날은 좋은 술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영화 <소공녀>를 보고 나서 언제 간 꼭 마셔봤으면 좋겠다고 이야기를 나눴던 '글렌피딕'을 두고 한 말이었다. 친구의 아버지께서 집 앞 바에 킵해놓으셨다며, 고맙게도 나를 데려가 줬다.
한두 잔 정도밖에 마시지 않은 글렌피딕 한 병을 놓고, 멋진 어른이 된 것처럼 들떴었다. 이제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 컸나 보다며 자위 아닌 자위를 하기도 했다. 사실 엄청나게 대단한 사고 과정을 거친 결정도 아니었고, 결정을 한 후에도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로우면서 말이다.
아무리 고민해도 완벽한 답을 찾을 수 없었기에, 단순히 생각하기로 했었다. 그냥 덜 불행한 쪽을 선택하기로. 어차피 별 거 없는 인생이고, 어떤 것을 선택하더라도 조금은 불행해야 한다면, 그나마 덜 불행한 쪽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에는 아직 후회가 없다.
지금도 나는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해야 하는' 사람이지만, 그 책임의 무게를 혼자 다 껴안을만한 그릇이 되진 못했다. 덜 큰 것이다. 하지만 프레디 머큐리를 보고 있자니, 내가 컸고 안 컸고는 굳이 판단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우리는 글렌피딕과 함께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닌 <소공녀>를 놓고 수많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이야기의 화두는 같았다.
내가 삶을 이어가기 위해, 절대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내겐 늘 가족과 친구이고, 어떨 땐 맥주였다가, 자주 '돈'이 된다. 돈은 아녔으면 좋겠는데, 없어선 안 되는 것이긴 하니까. 모르겠다. 사실 정말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영화도 "진짜? 그거 없인 못살아?"라고 하면 그건 또 아닌 것 같아서. 아무튼 그런 대화를 주고받다 보니 나는 진짜 '나'를 잘 모르고 사는구나 싶었다. 종종 솔직하지 못할 때도 많고 말이다.
그런 면에서 프레디가 멋있었다. 그가 천재 뮤지션이어서,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나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견고했기 때문이다. 종종 흔들렸을지라도 매번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을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글렌피딕을 함께 마신 친구에게 조만간 좋은 술을 사야겠다. 그리고 그때와 같은 이야기를 나눠야지. 인생은 싱겁지만 가끔 쿵짝거리며 술을 마실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술과 사람은 당분간 '내 삶에서 포기하지 못할 것' 항목에 올려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