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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Jan 02. 2022

서른이 된 지 이틀째

별거 없어도 괜찮은 하루들

'끝'보다 '시작'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편이다.

계획을 지켰는지 점검하는 것보단 일단 못 지키더라도 멋있어 보이는 계획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편이고.

그런 나에게 1월 1일이란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야 할 것 같은 이상한 부담감이 있는 날.

게다가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새해 첫날이라니, 더욱 대단한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정작 미용실에서 머리를 조금 다듬고는 별 거 안 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남들은 뭘 하며 보내나 대충 훑어보다가 괜히 이러고만 있어도 되나 싶은 마음이 더 커져서 그것도 관두기로 했다.

무언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연필을 잡고 새 노트에 새해 목표라도 다짐이라도 몇 글자 적어 내려가야 할 것 같은데 싶은 마음을 한편에 쌓아두고 꽤 답답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다.


매년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거 같긴 한 내 떡국


그러곤 오늘 아침, 알람 없이 일어나 동생과 팔짱을 끼고 슬렁슬렁 마트에 가서 떡국 재료를 사 왔다.

떡국은 저녁에 먹자며 동생이랑 약속을 해두곤, 친구들과 영상통화로 별거 아닌 이야기를 실컷 나눴다.

오랜만에 보자며 잡아둔 약속은 거리두기로 인해 미뤄졌고, 대신 다음 달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자며 숙소를 잡았다. 별거 없는 수다 속에 꽤 많이 웃었다.


몇 시간 전에 엄마가 이것저것 가르쳐 준대로 떡국을 끓였는데, 영 맛은 없었다.

동생이 꽤 맛있게 먹어줘서 다행이긴 하지만 다음부턴 후추를 넣지 말라고 한다.

사실 후추는 엄마가 안 가르쳐준 건데 내 맘대로 넣었다. 귀신같은 놈.




서른이 된 지 오늘로서 이틀째다.

요 며칠 복잡한 생각도 꽤 많이 했다.

나이가 들수록 용기는 적어지는데, 부러운 삶의 모습만 많아지는 것 같아서.


일단 건강하고 싶다.

건강하지 못한 내 습관들을 찾아서 발견해 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보려고 한다.

찾아내서 고치면 되니까. 또 모자란 건 보태면 되니까.

이건 해낼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해내지 않으면 어쩔 건데 싶다. 안 건강하면 나만 손해니까.


그리고 내 욕심의 눈높이를 정하고 싶다.

자꾸 눈에 띄는 부러운 삶들을 보면서, 과연 어디까지 내가 해낼 수 있는 것인지 찾아내 보려고 한다.

막연히 부러워하는 건 이제 그만두고, 해낼 수 없는 것이라면 이제 멋있다고 박수만 쳐주고 싶다.

그래야 내 삶도 조금 더 건강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두 가지를 위해 올해는 조금씩, 자주 기록해 보려고 한다.

길지 않은 글이라도 종종 써 내려가 보려고 한다.

서른한 살을 앞둔 시점에서 차례대로 읽어보고, 올해의 나를 끝맺을 수 있게.

내년엔 '시작'이라는 것보다 '끝'이라는 것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될 수 있게.

그래서 실체 없는 부담과 불안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게.


대신, 압박은 갖지 않을 것이다.

거창한 문장을 적어놔야 한다는 부담.

글에 적을만한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한다는 불안.

그런 건 없이, 그냥 매일의 내 감정에 솔직하기로.

그 누구도 아닌 나와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적어보기로 한다.


어제나 오늘처럼, 별거 없어도 괜찮은 하루의 이야기를 차근차근 적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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