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사는 게 제일 편하긴 합니다만
룸메이트가 생긴 건 작년이었다. 사실 룸메이트의 입주를 반겼다고 하기엔 좀 그런 게, 이게 남동생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학교 앞을 떠나면서, 크기는 비슷하나 시설은 훨씬 좋아진 원룸으로 이사했다. 정부에서 주거문제를 해결하고자 대학생, 사회초년생, 신혼부부, 고령자 등에게 적은 금액으로 월세를 내고 살 수 있게 지원해주는 건물이다. 사실 청약을 넣을 당시에 나는 학기는 모두 마쳤지만, 사회에 나갈 준비가 되지 않아(마땅한 수입이 없어) 졸업을 유예하고 있는 상태였다. 감사하게도 우리 학교는 졸업유예생도 '재학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게 해 줬고, 덕분에 대학생 자격으로 청약을 넣을 수 있었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당시 내 청약통장엔 8만 원 정도 들어있었고, 모집 계층 중 유일하게 대학생만 청약통장의 상태, 그리고 유무를 따지지 않고 청약을 신청할 수 있었다. 아무튼 이 덕분에 졸업 후 입사와 퇴사를 거치며 수많은 방황을 하고 있는, 그러니까 수입이 불안정한 지금까지 감사히 잘 살고 있다. 만약 내 거주지가 집값이 미쳐 날뛰는 서울 땅 안에서 이렇게 저렴한 월세를 받는 이 방이 아니었다면, 진작 부모님이 계신 고향으로 보따리를 싸들고 내려갔을지도 모른다.
월세는 꼬박꼬박 내가 내고 있지만 보증금은 엄마 돈이다. 내 방에 작년부터 룸메이트가 생기게 된 이유이다. 남동생은 전라도인 고향을 떠나 경상도에서 대학생활을 하다가 해경으로 군 복무를 했다. 유치원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던 우리 언니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생님이 된 것처럼, 남동생도 유치원 때부터 꿈이었던 경찰이 되어보겠다고 했다. 꿈을 이룰 공간적 배경으로 하필 우리 집을 골랐다.
그럼 동생한테 월세를 반씩 내라고 했더니, 변호를 맡은 엄마가 보증금을 언급했다. 그래, 엄마 집이다.
학원과 스터디를 번갈아가며 애쓰다가 금방이라도 시험에 붙어서 경찰학교에 들어갈 것처럼 보였던 내 룸메이트는 지금 장기 투숙 중이다. 작년에 있었던 시험에서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안타깝게 떨어졌다. 물에 젖은 생쥐 같던 몰골이 애잔해서, 누나는 괜찮으니 천천히 해도 된다했더니 이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알바를 하러 다닌다. 알바를 시작한 후에 생활비랍시고 돈을 조금씩 주고 있어서 그건 좋다.
동생이 전역한 후에 바로 시험 준비를 하겠다고 했을 때, 엄청 말렸었다. 어차피 시험 붙으면 평생 일만 해야 하는데 그게 뭐가 좋다고 빨리 하려고 하느냐. 놀 수 있을 때 놀고, 알바비 모아서 여행도 다니라고 했다. 그땐 그렇게 내 말을 안 듣더니 이젠 공부하라고 하니까 저러고 있다.
사실 동생은 룸메이트로서는 만점이다. 친구들은 작은 방에 동생이랑 둘이 어떻게 사냐고 묻곤 하는데, 사실 작은 방에서 동생과 어떻게 살아야 할 지에 대해 고민해본 적이 없었다. 동생이 짐을 싸서 올라온 날엔 바닥에 대충 이불을 펴서 재웠고, 바닥에서 자는 게 불편해 보였던 어느 날에 접이식 매트리스를 하나 사줬다. 군대에서 열심히 요리를 배워온 덕에 동생은 퇴근한 나를 위해 맛있는 저녁을 자주 차려줬다. 내가 늦게 귀가하는 날은 차로 데리러 오기도 하고, 설거지도 화장실 청소도 척척 해준다.
스무 살 이후로 줄곧 혼자 살아온 터라, 집이라는 공간을 게다가 원룸을 누구와 나눠본다는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물론 혼자 사는 것이 편하지만, 이젠 동생이 하루만 집에 들어오지 않아도 심심하고 외롭고 그렇다. 이 퍽퍽한 서울 땅에 매일 얼굴을 보는 피붙이가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모르게 위로가 되는가 보다.
아무튼 동생이 지금처럼 알바도 하고 연애도 하면서 일상을 즐겼으면 좋겠다. 동생이 얼른 공부해서 시험에 붙어야 이 작은 방이 조금이나마 넓어지긴 하겠지만, 동생이 집에 없으면 쓸쓸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