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로 키위 주우러 갈래"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을 때마다, 동료들에게 이 말을 하고 다녔다.
"뉴질랜드로 키위 주우러 갈래"
인스타그램에 워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올리는 분이 계시다. 유명하다. 꽤 많은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고, 나를 포함한 꽤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삶을 선망한다. 입시, 취업, 결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미션'을 재껴두고 홀연히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는 마인드로 낯선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강인하고, 멋있고, 화려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 분이 키위공장에서 일했던 내용을 가장 재미있게 봤다.
그래서 키위였다. 사실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으면서 키위를 주우러 가겠다고 말하고 다녔다. 학교 다닐 때는 물론이고, 지금도 외국에서 일하며 살아보는 것을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꿈으로 두고 있긴 하다만.
동료들은 그래서 내가 회사를 그만두겠다 했을 때, 정말 키위를 주우러 가냐고 했다. 그곳에서 혹시라도 자리를 잡게 되면 자신을 고용해달라고 우스갯소리를 건네는 선배도 있었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가냐며 묻는 동기도 있었다. 사실 난 키위를 주우러 갈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다.
키위는 내 무의식 속의 탈출구(?) 같은 거였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일이었고, SNS를 통해 보는 단편적인 모습만으로 그 삶을 선망했다. 즉 키위는 내게 '현실'이 아니었다.
왜 키위를 현실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 마음만 먹는다면(물론 엄청난 마음이겠지만) 일단 워홀 비자를 알아보면 된다. 그리고 만약 그 과정을 홀로 해내기가 까다롭고 어렵고 귀찮게 느껴진다면, (물론 돈이 많이 들겠지만) 업체에 의뢰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워홀 비자를 알아볼 마음도, 업체에 연락해 볼 마음도 없었다. 그건 그냥 '현실'이 아닌 채 그 자리에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회사를 박차고 나오기 전에, 구체적으로 키위를 주우러 가기 위해 준비했다면 어땠을까. SNS에서 보이는 워홀러들의 멋진 삶, 혹은 성공한 이민자들의 안정적인 삶이 흔한 일이 아니라는 걸 몸소 깨달았겠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그들은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 노력을 위해선 그 삶에 대한 진심 어린 목표의식이 있어야 된다는 걸 알게 됐을 것이다. 그리고 꽤 많은 제반 비용에 좌절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있었기에, 키위를 주우러 갈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내가 선망한 것은 '뉴질랜드'라는 땅도, '키위를 줍는다'는 일도 아니었다. 그 분의 삶에 대한 태도였다. 남들이 정해준 삶을 당연하게도, 평범하게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과 자신의 삶을 자신이 만든다는 주체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자유'와 '도전'으로 보이는 자신만의 확고한 삶의 철칙. 뉴질랜드는 장소일 뿐이고, 키위를 줍는다는 건 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스스로의 삶에 대한 확고한 철칙과 주체의식을 가진 그 분을 선망한 것이다.
그래도 답은 '키위'에 있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어떠한 삶을 선망할 것이다. 그것은 성공한 사업가일 수도, 유명한 작가일 수도, 세계 여행을 하는 셀럽일 수도, 부유한 배우자를 만난 동창일 수도 있다. 그 '키위'는 종종 명예일 것이고, 애정일 것이고, 돈일 것이다. 가진 손은 한계가 있고, 꿈꾸고 원하는 것은 많기에 내가 진정으로 갖고자 하는 '키위'의 실체를 계속 고민할 것이다.
그렇게 내가 선망하는 어떠한 삶들이 차곡차곡 모여, 언젠간 하지만 분명히 내 삶의 정확한 방향성이 되어줄 것이다. 그렇기에 그놈의 키위에 답이 있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