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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열 Oct 01. 2017

옥토버페스트가 열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10월의 맥주, 메르첸 : 옥토버페스트비어

축제와 맥주, 가장 설레는 두 단어의 시너지


10월은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가 열리는 달입니다. 아니, 사실 올해의 옥토버페스트는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옥토버는 영어로나 독일어로나 10월을 뜻하지만, 조금 더 긴 해와 따뜻한 날씨를 위해 9월 중순에 시작, 16일간 진행되어 10월 첫 일요일에 끝나도록 개최되기 때문입니다. 그리 이상할 건 없습니다. 예수님 생일도 12월 25일은 아니라고들 하니까요.


10월 1일이 첫 번째 일요일인 올해는 조금 특별한데요, 독일 통일 기념일(10월 3일)까지 맥주를 마실 수 있도록 이틀간 '연장 운영'한다고 합니다.


옥토버페스트는 이렇게 매년 가을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맥주 축제로, 640만 명이 운집해 670만 리터의 맥주를 먹어치우는 (2013년 기준)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의 축제입니다. 그런데,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에서 세계맥주 할인점에서처럼 온갖 종류의 맥주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크나큰 오산입니다.


흔히들 독일, 하면 맥주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계신데요. (사실 그렇게 만든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옥토버페스트였을 겁니다.) 맥주의 나라, 맥주의 수도라는 이미지는 전적으로 독일 중에서도 뮌헨을 비롯한 바이에른 지방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만큼 오랜 맥주 역사와 전통을 가진 뮌헨에서는 이 지역만의 맥주 스타일을 가지고 있으며,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바로 이 뮌헨 스타일의 맥주만을 맛볼 수 있습니다.


뮌헨 스타일의 맥주 중에서도, 옥토버페스트를 열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맥주가 있습니다. 세계 최대의 맥주 축제를 만들어낸 뮌헨의 맥주, 축제에 어울리는 시원한 맥주, 뮌헨 사람들의 인심을 가득 담은 고소하고 푸근한 맥주, 바로 메르첸Märzen을 10월의 맥주로 선정합니다.



3월 맥주를 10월에 마시게 된 사연


옥토버가 10월을 뜻한다는 것을 다시 말씀드리면 여러분들을 무시하는 행위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옥토버페스트 맥주의 또 다른 이름, 메르첸Märzen은 독일어로 3월, 영어의 March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독일어의 März와 영어의 March는 언뜻 보기에도 많이 닮았습니다. 보다 정확히 말해 Märzen은 독일어에서 3월의 형용사형에 해당합니다.) 직역하자면 "10월축제 맥주"가 다른 말로 "3월 맥주"인 셈입니다.


뮌헨은 16세기 이전에 이미 세계 최초로 라거 계열의 맥주를 대중화시킨 곳이었습니다. 이 시기 뮌헨에서는 맥주를 만든 후 서늘한 곳에서 장기간 숙성시키는 방법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런 방법으로는 여름에 맥주를 양조할 수가 없었습니다. 냉장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맥주를 시원하게 보관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살균 기술이 있었을 리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서늘한 지하실에서 맥주를 숙성시키는 모습


그래서 뮌헨 사람들은 여름 내내 맥주를 먹기 위해, 봄에 도수가 높고 홉이 많이 들어간 맥주를 넉넉히 만들어 놓았습니다. 맥주의 필수 원료 중 하나인 홉은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며, 알코올은 소독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 맥주는 긴 여름이 지나도록 상하지 않게 보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름이 지나고 말이 살찌기 시작할 10월 즈음, 서늘해진 날씨에서 새로 추수한 보리로 신선한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되면, 여름 내내 너무 아껴 마신 나머지 남아버린 맥주를 버릴 수밖에 없게 됩니다. 물론 뱃속에 말입니다.


3월 맥주를 가을에 마시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특별히 보존성을 높여 3월에 만들어
더워지기 전 5~6월까지 숙성시킨 맥주를
여름 내내 아껴 마시다 남아서
10월에 뱃속에 버린다는 것입니다.



축제를 열 수밖에 없었다. 맥주가 거기 있으니까.


방금 살펴본 아주 자연스러운 이유로, 옛날 뮌헨 사람들은 매년 가을 남은 맥주를 먹어치우는 일종의 의식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친구를 집에 초청하거나, 마을 사람들끼리 파티를 여는 것은 어렵지 않은 옵션이었을 테지요.


1810년의 어느 가을날, 뮌헨에서 바이에른Bayern 왕국의 루트비히Ludwig 왕자와 인접한 국가의 공주의 결혼식이 열렸습니다. (지금의 바이에른은 뮌헨을 수도로 하는 독일 남쪽의 주(州) 이름이지만, 1871년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는 하나의 큰 국가였습니다. 축구팬 분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이름이죠.) 맥주가 없었던 것이 한 가지 흠이라면 흠이지만, 이 결혼식은 당시 최고의 인기 이벤트였던 경마 경기를 포함해 매우 성대하게 열렸습니다.


뮌헨에 있는 루트비히 1세 동상. 초대 옥토버페스트에서 결혼식을 올린 그 루트비히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뮌헨에서 경마 경기를 포함해 작년의 행사를 재현하면서, 이 "10월의 축제"는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이 행사를 왜 이듬해 재현하기로 결정했는지는 뚜렷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10월의 축제"가, 이 즈음 남아있는 "3월 맥주"를 소모해야 했던 뮌헨 사람들에 의해 맥주 축제로 변질되는 데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결혼식 이후 4년 만인 1814년 옥토버페스트, 독일의 시인 아힘 폰 아르님Achim von Arnim은

"축제에 맥주 가판대가 줄줄이 있어서 사람들이 주석 뚜껑이 달린 500ml 잔에 맥주를 따라 마셨다"

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옥토버페스트가 맥주 축제가 되는 데에는 4년이 채 걸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토록 뚜렷한 존재 이유를 가진 "10월의 축제", 옥토버페스트는 해를 거듭하면서 더욱 성대해졌습니다. 맥주 축제에 어울리는 보다 따뜻한 날씨를 위해 날짜를 조금 당기고, 경마 경기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 냉장 기술의 발달로 더 이상 여름에 대비해 도수 높은 맥주를 봄에 만들어 놓을 필요는 없어졌습니다. 옥토버페스트에서 주로 파는 맥주도 특별히 도수가 높지 않은 평범한 뮌헨 스타일의 맥주로 바뀌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첸은 이러한 아련한 유래를 추억하며, 지금도 옥토버페스트에 어울리는 하나의 맥주 스타일로 남아 매년 이맘때쯤 축제 분위기에 들뜬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설렘을 안겨줍니다.



메르첸, 기분 좋게 취할 수 있는 축제맥주


메르첸의 유래에서 보신 바와 같이, 메르첸은 여름 내내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보통의 뮌헨 맥주보다 보존성을 높인 맥주입니다. 보존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홉의 첨가와 높은 알코올 도수를 언급했는데요. 홉은 천연 방부제 역할을, 알코올은 소독제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도 설명드렸습니다.


맥주의 맛은 크게 보리, 정확히는 그 안의 당 성분에서 나오는 단 맛과, 홉이라는 원료에서 비롯된 쓴 맛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보통의 뮌헨 맥주는 이미 많은 분들이 익숙하신 일반적인 맥주, 즉 필스너 계열의 맥주와 비슷하게 탄산이 많은 편이고, 맛이 진하지 않아 시원하게 마시기에 좋지만, 홉보다 보리가 많이 들어가 단 맛이 비교적 강한 편입니다.


메르첸은 이러한 보통의 뮌헨 맥주에 비해 홉도 많이 들어갔고, 또 알코올 도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발효의 재료가 되는 보리도 그만큼 많아야 하기 때문에, 단 맛도 쓴 맛도 전반적으로 강화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알코올 도수 또한 높아서, 보통 뮌헨 맥주는 4~5.5도 정도의 알코올 도수를 가지고 있는데, 메르첸은 그보다 약간 높은 5~6도 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걸 두고 축제니까 맘껏 취해라, 뭐 그런 의미로 오해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옥토버페스트에서는 맥주를 주로 마쓰Maß라는 머그 모양의 유리잔에 서빙하는데, 그 용량이 1리터입니다. 맥주의 기본 서빙 단위가 1리터인 것입니다. 평범한 맥주가 300~500ml 정도의 잔에 서빙되는 것에 비해, 맥주를 1리터짜리 거대한 잔에 마시는 것은 꼭 축제가 아니더라도 뮌헨 맥주의 아이콘과도 같은 것으로 자리잡아, 뮌헨의 맥주집에서는 맥주를 1리터짜리 마쓰로밖에 안 파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습니다.


뮌헨 아우구스티너Augustiner 맥주집에서 파는 1L짜리 잔, 마쓰Maß


안타깝게도, 뮌헨의 맥주는 세계적으로 그리 인기 있는 스타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운이 좋다면, 근처 대형마트나 수입맥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보틀샵을 기웃거리다가 새뮤얼 아담스Samuel Adams나 브루클린Brooklyn, 혹은 바이헨슈테판Weihenstephan이나 슈나이더Schneider 양조사에서 만든 메르첸을 만나실 수도 있겠습니다. 메르첸은 보통 옥토버페스트 스타일, 혹은 페스트비어와 같은 이름이 붙여져 있습니다.


한국에서 메르첸을 가장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라는 모토를 자랑스럽게 내세우는(since 1040) 바이헨슈테판Weihenstephan 양조장을 통해서일 것입니다. 강남, 이태원, 홍대 등 주요 핫플레이스에 위치한 Thirsty Monk에서 이 곳의 맥주를 생맥주로 만날 수 있는데요, 특히 옥토버페스트 기간에 맞춰 메르첸 스타일의 페스트비어Festbier를 기간 한정으로 판매 중이라고 합니다.


맥주에서 단 맛이 난다는 사실을 실감하기가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편의점에서 파는 평범한 맥주들은 맛보다는 탄산이 때려서 아프다는 느낌을 받기에 바쁘고, 수제맥주라는 맥주들도 쓴 맛이 강한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이런 혹독한 세상에서 뮌헨의 맥주는 참으로 반가운 스타일입니다.



지금까지, 10월의 맥주로 옥토버페스트 맥주, 메르첸을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메르첸은 여름을 나기 위해 뮌헨에서 원래 만들던 맥주를 조금 변형한 것에 불과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바로 이 뮌헨의 평소 맥주, 둥켈과 헬레스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어두운 둥켈과 밝은 헬레스, 그리고 뮌헨이 어떻게 세계 맥주의 수도로서의 위상을 지킬 수 있었는지가 이어집니다.

커버사진 : www.oktoberfest.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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