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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스켓 Jan 03. 2017

그게 우리 여행의 시작이었어

프랑스 파리



나는 태어나서 인천공항을 딱 두 번 가봤는데 그게 다 파리행 비행기였고, 또 우연히도 같은 항공사의 밤 비행기 스케줄이었어. 그때마다 나는 혼자였는데 그때 느낀 밤의 공항 분위기가 너무 좋더라. 차분하고 조금은 적막한 느낌이, 혼자 여행을 시작하는 내 기분을 더 고조시켜주는 거 같았어.


그런데 이번엔 아니지. 밤도 아니고, 혼자도 아니지.






그와 함께 비행기를 타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전보다 설렜어. 나는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이지만 그와 여행을 하다 보면 혼자 하는 여행의 재미나 성취감 같은건 생각도 안나. 둘이서 웃고 떠드는게 너무 재밌고 무엇보다 나중에 여행을 함께 추억 할 수 있다는게 참 좋더라구.


우리는 체크인 하기까지 시간이 넉넉해서 공항을 두리번거리며 서로 할 일을 했어. 그러다가 잠깐 커피를 마시러 스타벅스를 갔는데, 글쎄 거기서 일출을 봤어. 새해에도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어서 보지 못하는 그 일출을 말이야. 공항은 창이 크잖아. 그 커다란 창으로 오렌지색 빛이 쫘악 쏟아지는데, 와 그게 그렇게 황홀 할 수가 없더라. 마치 그 빛이 우리 여행의 시작과, 또 우리가 함께하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축복해주는 느낌이었어. 나는 매미처럼 창문에 달라 붙어 그 풍경을 한참동안 바라보았어. 해가 떠오르는 모습, 이륙하는 비행기, 그 비행기를 향해 큰 몸짓으로 인사를 해주는 승무원들의 모습..





최종 목적지는 아이슬란드였어. 우리나라에서 아이슬란드로 한번에 갈 수 있는 직항 노선은 아직까지 없어서 유럽 어딘가를 경유해서 가야 하는데, 오슬로, 코펜하겐, 헬싱키 같은 북유럽의 도시나 암스테르담, 파리, 런던 같은 유럽의 서쪽 끝에 있는 도시들을 많이 경유해서 가더라. 나는 비행기 티켓을 검색하는거에 엄청난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거든. 조금이라도 저렴한 티켓, 조금이라도 여행지에서 오래 머물 수 있는 티켓을 검색하기 위해 한달을 넘게 검색했던거 같아. 그러다가 발견한게 파리인 런던아웃의 90만원짜리 대한항공 티켓이었지.


아주 먼 곳을 경유해서 유럽으로 간 적이 두번 있었어. 그게 중동이었는데, 유럽으로 가기 위해 중동까지 갔다가 대기를 하고 다시 유럽으로 날아가는 긴 여정이었어. 비행시간이 힘들법도 하지만 밤 비행기라 자면 그만이었고, 또 여행을 갈 수 있다는 그 신남에 취해서 힘든건 하나도 모르고 그저 좋기만 했었어. 그런 나에게 대한항공 티켓이라니, 유럽까지 경유없이 한번에 날아가다니! 우리는 티켓을 결제하면서 신분 상승 했다고 웃어댔어. 





파리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라는 영화를 봤어. 영화는 아이슬란드를 너무나 멋지게 그리고 있었지. 주인공 윌터는 틀에 박힌 일상 속에서 현실을 탓하는 인물이었는데, 비행기를 타면서 그의 인생은 아주 바뀌게 돼. 행동 뿐만 아니라 생각이나 가치관까지도. 이 영화가 여행을 시작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대변해주는거 같았어.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 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목적이다."


_윌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기내식을 두 번쯤 먹고 났을 때, 파리에 도착했다는 방송이 흘러나왔어. 비행기가 착륙하기 전에 옷매무새를 다듬고, 신발을 신고, 짐 정리를 하는 그때의 기분은 정말로 날아갈 것 같아. 도착했구나, 진짜 시작이구나, 싶은 거지.





파리에 올 때마다 항상 RER열차를 타고 시내로 나가곤 했는데, 이번에는 다이렉트 버스라는 걸 타보았어. 이 버스는 우리가 묶는 호텔 앞까지 데려다주었어. RER열차보다 가격은 비쌌는데 숙소가 개선문 근처라면 타볼만한 거 같아. 2인 편도에 30유로.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햇빛이 밝게 내리쬐어서 너무나 기분이 좋았어. 버스 안에도 그 햇빛이 진동하더라.





버스를 타면 가장 좋은 점이 창 밖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거 같아. 파리는 오래된 건물을 보수해서 옛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잖아. 그런데 파리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고층 건물도 많고, 우리나라와 별 다르지 않은 풍경들도 보여.





1시간쯤 달리니 파리 시내에 도착한 느낌이 들었어. 사진으로 많이 보던 파리의 모습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거든. 우리는 비행기에서 내린 꼬질꼬질한 모습 그대로 호텔까지 찾아갔어.





처음 유럽여행을 준비할 때, 그렇게 큰돈을 써보는 건 처음이라 엄청나게 비교를 하면서 예약했던 기억이 나. 숙소도 여기저기 엄청 비교해보고, 기차표 하나도 날짜별로 검색해가며 저렴한 날 이동하려고 애쓰곤 했지. 그랬던 난데, 그랬던 우리였는데, 이번에는 무려 호텔에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어. 배낭여행 땐 상상도 못 할 일이야.


'그래도 신혼여행인데~'라는 말로 시작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을 좋아하지 않았어. 신혼여행인데 호텔에서 자야지, 신혼여행인데 좋은 거 먹어야지, 신혼여행인데.. 뭐 그런 말들 있잖아. 신혼여행이 일생에 한 번뿐이고 낭만적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기에 모든 낭비를 하기는 싫었어. 여행을 온전하게 즐기는 방법은 비싸게 무언가를 하는 게 아니라 우리 둘이서 그 장면 장면을 느끼면 되는 거였으니까.





우리 방은 18층에 위치한 에펠탑이 보이는 방이었어. 호텔 지배인의 안내를 받아 우리가 배정받은 방으로 들어갔을 때, "와.." 우리는 동시에 감탄사를 외쳤어. 그런 우리를 보고 지배인은 굉장히 뿌듯해하는 거 같더라. 우리 같은 손님을 매일 맞이하는 그는 얼마나 자부심이 들까.





한낮의 파리, 에펠. 수많은 타워를 보고 성당을 보고 또 다른 건축물들을 보았지만, 에펠탑만큼 강렬하게 인상에 남은 건 거의 없어. 그건 에펠탑이 멋지기도 하지만, 파리라는 도시의 분위기를 에펠탑이 다 담아내고 있어서인 거 같아. 그 에펠탑이 눈 앞에 우뚝 서있었어. 그제야 진짜 파리에 온 게 실감이 나더라. 


그게 우리 여행의 시작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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