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iwan in Summer
여행은 매번 내게 새로운 풍경을 선물한다. 나는 그 풍경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고, 또 나의 새로운 점을 발견하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이러한 경험들은 대부분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내 여행은 여름에 떠나거나, 떠난 곳에서 여름을 만나곤 했다. 그래서 나에게 여름이란 떠올리면 아득한 첫사랑처럼, 마음속 깊이 간직되어 있는 그리운 계절이었다.
봄의 끝자락에 대만으로 갔다. 그곳 역시 여름이었다. 이전 여행들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번 여행은 온전히 나 혼자서 이 여행을 이끌어 간다는 점이었다. 가오슝 국제공항에 첫 발을 딛었을 때, 나는 무얼부터 해야 할지 앞이 캄캄했다. 먼저 지하철을 타고 가오슝 중심으로 나간 것이 내가 처음 해낸 일이었다. 그 후 혼자 밥을 먹을 먹고, 배를 타고 섬을 다녀오고, 야시장에서 흥정을 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사진을 찍고.. 여행하는 내내 긴장 속에서 지냈지만 머지않아 그 감정이 설렘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오묘하게 섞인 감정을 느끼면서 "그래, 이런 게 여행이었지."라고 생각했다.
혼자 여행을 한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혼자 보냈던 건 아니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거나, 내게 말을 걸어오는 대만 사람들이 내 여행의 깊이를 채워주고 있었다. 그들은 영어를 곧잘 했고 여행객을 배려하는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있었다. 풍경에 사람이 더해지면 얼마나 더 풍부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지, 그때 나는 깨달았다.
여러 가지 일이 있었지만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지막 날 공항에서 만난 아저씨 이야기. 그 날 나는 자정이 넘어 공항에 도착을 했고, 배가 고파서 햄버거 집을 찾았다. 그런데 그 햄버거 집은 새벽에는 카드 결제가 안된다는 거다. '국제공항'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새벽이 무슨 상관이지? 여긴 공항인데? 카드밖에 없었던 나는 발길을 돌리려고 했는데, 그때 내 뒤에 서 계시던 아저씨께서 자신의 햄버거를 주문하며 내 것도 함께 계산을 해주셨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제대로 전하지도 못 하였는데 아저씨는 홀연히 사라지셨고, 나는 햄버거를 받고서도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모든 게 여름에 일어난 일이었다. 햄버거를 사주던 아저씨, 함께 딤섬을 먹어주던 친구들, 기차역까지 데려다주던 할머니, 라인 아이디를 물어보던 단수이 친구. 그 여행 속에서 나는 많이 따뜻했고, 외롭기도 했으며, 누군가와 함께 여행을 할 때는 알 수 없었던 새로운 종류의 감정들을 느꼈다.
그 감정들을 기억하는 방법은 오로지 나 자신에게 달려있는 거 같다. 그 여행은 나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여행이므로 어느 때는 조금 과장해서 말하기도, 숨기고 싶은 건 없는 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내가 여행을 가기 위해 준비했던 것들, 여행지에서 만났던 사람들, 먹었던 음식, 감명 깊게 보았던 장소. 그 모든 것이 나로 인해 존재하고, 나만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온전하게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건 없는 일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때때로 혼자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내 여행의 한 면을 채워주었던 대만의 모든 사람들, 대만의 모든 장소들이 그랬던 거처럼, 그 기억이 너무나도 뚜렷하고 벅차서 힘든 날 꺼내보면 좋은 에너지가 되어 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