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1월 11일은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이 빼빼로데이로 알고 있다. 몇몇 군사 분야에 조금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한민국 해군 창설 기념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영미권과 유럽, 특히 1차 세계대전으로 치명적인 피해를 입은 영연방 국가들과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11월 11일은 영령 기념일이라는 이름으로 1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기념하는 날이다.
1차 세계대전은 1918년 11월 11일 오전 11시에 정식으로 종전되었는데 종전을 기념하는 국가들에서는 이 시간에 맞춰서 11월 11일 11시에 1~2분 정도의 짧은 묵념이 행해진다. 또한 개양귀비꽃 화환을 기념비에 올리거나 가슴에 착용한 채 애도를 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시로 한국에서는 <플랑드르 들판에서>가 나름 알려진 편이다. 그러나 <플랑드르 들판에서>에 대한 화답시인 <We shall keep the faith>에 대해서는 존재 여부만 알려져있을 뿐 구체적인 내용과 정보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영령 기념일을 맞아 <플랑드르 들판에서>와 <We shall keep the faith>를 짧게 소개해보고자 한다.
이 시의 작가 존 맥크래는 캐나다인으로서 영 연방군으로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는데 플랑드르 전선에서 일어난 2차 이프르 전투로 친구가 사망하자 이를 기리기 위해 <플랑드르 들판에서>를 발표하였다.
이 시는 발표된 후 크게 유명해지며 널리 퍼졌고 종전 후 미국의 교수 모이나 마이클이 뒤에서 알아보게 될 <We shall keep the faith>라는 화답시를 작성하기도 하였다.
제목 <플랑드르 들판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제목에 나오는 플랑드르라는 지명은 한국인들에게는 ‘플랜더스의 개’라는 소설의 배경으로 더 유명할 것이다. 네덜란드어로는 플란데런, 프랑스어로는 플랑드르, 영어로는 플랜더스라고 한다.
1차 세계대전 초기, 진격하던 독일군을 연합군이 마른강에서 저지하며 전선이 잠시 고착 상태에 빠진다. 이런 고착 상태 속에서 서로 상대의 후방을 노리고자 우회기동을 하게 되고 그 우회기동을 막으려고 참호를 파며 전선이 길게 늘어지게 되는데 이 참호선이 끝나는 곳이 시에서 등장하는 플랑드르 지역이다.
플랑드르라는 이름은 고대 프리지아어로 홍수가 잦은땅을 뜻하는 'flāmdra'에서 유래하였다. 그 이름이 암시하듯 플랑드르 지역은 지대가 낮아 북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해양성 기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게 되어 잦은 비가 내린다. 또한 지형이 평탄하여 비가 와도 빠져나갈 경사가 없어 빗물이 쉽게 고일 뿐만 아니라 땅이 부드러운 흙들로 이루어져있어 전선이 진흙탕이 되버리기 일쑤였다.
잦은 장마와 지형적 특성 때문에 플랑드르 전선은 버티기에도 쉽지 않고 공격도 쉽지 않은 교착 상태 속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지루한 참호전과 소모전이 펼쳐졌다.
병사들은 진흙탕이 되어 무릎까지 물이 찬 참호 속에서 매일 포탄 소리를 들으며 버텨야 했다. 이러한 교착 상태 속에서 양측은 수차례에 걸쳐 돌파 시도를 하였고 독일군은 독가스까지 사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무의미하게 수십만명이 희생되었다.
시에서 등장하는 개양귀비꽃은 이러한 전쟁 속 희생을 의미한다. 본래 잡초처럼 어디에서나 잘 자라던 이 꽃은 강한 생명력을 지녀 포격으로 폐허가 된 땅에서도 다시 피날 수 있었다.
존 맥크래는 이러한 광경을 직접 목격했다. 사망한 동료들의 무덤에서 붉은 개양귀비꽃이 유독 많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고 시의 영감을 얻었다.
전후에도 강한 생명력 덕분에 1차 세계대전의 전선 전역에서 개양귀비꽃이 많이 피어나게 되었다. 전쟁을 겪어 황폐해진 땅에 피어난 붉은 개양귀비꽃은 많은 사람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시의 구절과 겹쳐보며 개양귀비꽃을 점차 추모의 상징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플랑드르 들판에서>에 대한 화답시로 미국의 교수 모이나 마이클은 <We shall keep the faith>를 발표했다. 모이나 마이클은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독일에 머무르고 있었다. 독일에 머무르던 중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미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로마로 이동하여 미국인 관광객 12000여명의 귀국을 돕기도 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쟁이 끝난 후, 모이나 마이클은 <플랑드르 들판에서>에서 영감을 받아 이에 응답하는 화답시로 <We shall keep the faith>를 썼다. 그녀는 조지아 대학교에서 장애 군인들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하였는데 수업 도중 군인들에게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기금 마련을 위해 개양귀비꽃을 판매하는 아이디어를 추진했다.
그동안 쌓여온 개양귀비꽃의 추모 이미지와 그녀의 노력이 합쳐진 끝에 미국 재향군인 보조회(ALA)와 영국 재향군인 모금 기금(Royal British Legion의 전신)에서 개양귀비꽃을 참전용사로 기리는 상징으로 채택하게 되며 오늘날 개양귀비꽃은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뿐만이 아니라 참전용사 모두를 기리는 상징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이 크나큰 아픔으로 다가온 영연방 국가들과 프랑스, 벨기에 지역 사람들에게 11월 11일은 특별한 날이다. 무참히 죽어나간 청년들의 희생으로 몇몇 마을에서는 마을의 남자가 전부 없어지거나 마을의인구가 절반 이상씩 줄어드는 비극을 겪기도 하였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는 전쟁의 여파를 직접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인지 전쟁에 대해 조금은 무감각해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늘 소개한 시들을 통해 전쟁에 대하여 한 번쯤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