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기사 이야기
나는 서울시 마을버스 영등포01번 운전기사...였다. 개인사정이 생겨서 얼마 안가서 일찍 관두게 됐지만, 2025년 올 한해는 버스운전을 도전했다는 것에 의의를 둬야 할 것 같다.
난 2000년생이다. 우리 노선 기사들 중 제일 나이가 어렸는데, 우리 노선이 다니는 지역에서도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내 버스의 라디오 채널은 93.1MHz KBS클래식FM 고정이었다. 언젠가 버스운전을 하게 되면 내 버스를 움직이는 예술의 전당으로 만들 것이라는 작은 소망이 있었다. 승객 1명이라도 더, 1분 1초라도 더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 이 아름답고 위대한 음악이 승객 여러분들의 삶에 더 가까워지고 익숙해지길 바랐다.
출근해서 시동을 걸고, 전조등과 깜빡이가 잘 나오는지 점검한 뒤 마지막으로 라디오와 스피커 음량을 체크했다. 내 버스는 블루투스 기능이 없기에 라디오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채널을 틀고, 대신 스피커 송출 모드를 바꿔서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스피커에서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오도록 했다.
오전 7시부터 9시까지는 이재후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출발FM과함께>가 송출되는 시간이다. 출근시간대에 송출되는 방송이라 그런지 가볍고 활기찬 분위기의 곡이 주로 선곡된다. 여느 때처럼 작품을 감상하며 신도림역으로 가고 있을 때였다. 도림고가에서 좌회전 기다릴 때쯤부터였나, 프란츠 리스트가 작곡한 2개의 연주회용 연습곡 중 <난쟁이의 춤>, 작품번호 S.145, No.2 <Gnomenreigen>이 송출되고 있었다.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연주.
가끔 피아노 독주곡이 송출될 때는 ‘난 얼마나 연습해야 라디오에 방송 탈 정도로 연주하려나’ 하는 잡생각도 한다. 몇 년 전 유럽 여행 중에,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의 기차역에서 쇼팽의 영웅 폴로네이즈를 연주했던 적이 있다. 조성진이 10년 전인가 바르샤바 쇼팽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그 곡 말이다. 운전석에 앉아서 다양한 연주를 들으며 내 나름대로의 분석을 하다가도 신호 바뀌면 후다닥 출발해서...여하튼 신도림역 정류장에 차를 세웠다. 출근시간대 신도림 방면으로 운행하면 대부분의 승객들이 신도림역에서 내린다. 뒷문을 열고 승객들이 다 내릴 때 쯤 <난쟁이의 춤> 독주곡 연주가 끝났다. 연주가 끝나자마자 이재후 아나운서가 방금 송출된 곡의 제목과 함께, 딸려온 사연을 언급해준다.
“영등포구 마을버스 01번 타고 가는데, 버스에서 <출발FM과함께>가 나옵니다. '유튜브의 제 이어폰 소리와 시간 차이를 두고 들려요. 이른바 스테레오로 만나는 방송, 기분 좋은 금요일입니다.'라고 유튜브 댓글로 남겨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영등포구 마을버스 01번 기사님, 오늘도 안전운전 하시기 바랍니다. 기원하겠습니다. 소식 전해주신 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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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이건? 우리 노선이 왜 사연을 타지?
일단 머리를 좀 굴려보자. 당시 내가 일했던 영등포01번 기사들 중에 클래식을 듣고, 클래식FM 채널을 틀고 다니는 기사는 나 혼자였다는 건 알고 있다. 아나운서가 유튜브 얘기를 하는 걸 보니 이 프로그램은 유튜브로 따로 라이브를 해주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럼 유튜브 라이브 청자 중에 당시 내 차를 탄 승객이 있었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 승객은 우연히 내 차를 타고, 이어폰과 버스 스피커로 동시에 송출되는 <난쟁이의 춤>을 들으며 유튜브에 댓글을 남겼고 아나운서는 그 댓글을 읽은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고작 라디오 채널 잘 틀어놨더니 사연도 타게 되었다. 이재후 아나운서님, 그 영등포01번 기사가 저에요.
나이가 가장 어린 버스기사는 가장 역사가 오래된 음악을 듣죠.
사연을 보낸 승객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타고 어디에서 내렸는지는 모른다. 이 글을 볼지 안 볼지도 모르겠다. 사연자를 찾았을 때, 마치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바다를 떠다니는 유리병 속의 편지처럼,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의 해프닝이었을지도.
어느 마을버스기사는 승객을 찾습니다.
1시간 19분 30초쯤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