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 당신을 데려가도, 언어는 당신을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대부분의 것을 잊어가고 있었지만, 다정한 말만은 끝까지 붙잡고 있었다.
잎이 다 떨어져 나간 나뭇가지 같은 손가락들이 나의 팔을 쓰다듬었다.
거칠고, 차가운 것이 꼭 고드름 같기도 했다.
한겨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더워진 탓에 가운을 벗어젖히고, 반팔의 유니폼으로 병원 복도를 활보하며 '그러다 감기 걸린다'라는 걱정을 두어 번 들었던 날이었다.
라운딩을 돌며 환자의 상태를 살피고 있던 나의 팔을 침상에 누워있는 할머니께서 빛나는 눈으로 쳐다보며 쓰다듬었다.
"아이고, 곱다•••"
할머니께서 입원하신 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데,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폐렴으로 입원하여 요 며칠 상태가 가라앉다가 오늘은 컨디션이 조금 살아난 모습에 목소리까지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어르신, 제 팔이 고와요? 우리 어르신 목소리 처음 들어보네~"
"응••• 고와•••어쩜 이리 고와"
주름에 파묻힌 작지만, 빛나는 눈으로 나의 팔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랑스러웠다. 치매로 인해 흐려진 기억 속에서, 할머니는 '말'이라는 손전등을 비추었다. 할머니께서는 치매가 꽤나 진행되고, 기저질환으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폐렴으로 상태가 악화되어 입원한 분이셨다.
라운딩을 돌 때마다 눈을 꼭 감고, 손을 얌전히 모으고, 하루 종일 잠만 주무셨다.
눈을 지그시 감고, 얌전히 주무시는 모습이 너무 평온해 보였다.
잠깐 깨어있을 때면 멍하니 병원 천장을 보거나 늘어지는 하품을 하고, 자신을 돌보는 간호사들에게 '곱다'는 말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녀의 말버릇을 알게 된 건 그녀의 딸이 찾아왔을 때였다. 가족을 알아보는 것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그녀는 중년이 된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고와, 아이고 곱다.'라고 연신 중얼거렸다. 삶의 끝자락에 선 그녀는 모든 것을 기억에서 지우고, 자주 쓰던 말만을 습관처럼 말하며 살아 있다고 신호를 보냈다.
젊은 시절 그녀가 얼마나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이었을지 보여주는 필름이기도 했다.
그 다정한 필름이 병원 침대 위에서 멈춰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하지만 모든 필름이 다정한 것만은 아니다. 엉뚱한 필름, 재밌는 필름 등 웃음 짓게 만드는 필름이 있는가 하면, 다소 거칠고, 폭력적인 필름도 있다.
"네 사지를 찢어 죽일 것이야!"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체위 변경을 하는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데, 그 시간이 찾아오면 나는 어김없이 한 할머니에게 '거열형'을 당했다. 혈관 주사를 새로 놓을 때, 관장 등 괴로운 시술을 할 때마다 나에게 끔찍한 형벌을 집행하는 할머니는 이따금 성난 벌이 되어 독침을 내 귀에 찔러 넣었다. 할머니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족들까지도 할머니께서 언제 톡 하고, 독침을 쏠지 몰라 나처럼 몸을 사리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한편으로는 참 공평한 분이라는 생각에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은 적도 있다.
할머니의 가족 분들은 주어지는 짧은 면회 시간 일부를 늘 간호사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하는 데에 할애했다. 정작 기억을 잃어가는 환자가 주는 형벌에 기분이 상하는 간호사는 몇 없었지만, 늘 면회 시간 끝 무렵이 되면 민망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와 고생이 많다는 말을 빼먹지 않았다.
'찢어 죽인다'는 어마무시한 말은 어쩌면 그녀의 말버릇이 아니었을 것이다. 즐겨 보던 드라마에서 나왔던 대사, 혹은 다른 이로부터 받은 상처의 일부분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만일 지금의 말버릇이 훗날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필름이 될 하나의 장면이라면, 다정한 말들로 골라 담아 빈 화면에 채우고 싶다.
사람은 기억을 잃어도,
반복해 온 언어의 태도는 끝까지 남는다.
기억이 먼저 사라진 사람들에게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것은 말이었다.
다정했던 사람에게는 다정한 말이,
분노를 배운 사람에게는 날 선 말이 남았다.
언젠가 나 역시 기억에서 물러나야 할 날이 온다면, 누군가의 귀에 오래 남아 상처가 아닌 온기로 불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