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더 이상 상처로 말하지 않겠다.
이 글은 우울증을 앓는 사람의 글이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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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뱉는 말에는 날이 서있다.
나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잔인한 말을 던졌다.
그들의 마음이 갈기 갈기 찢어지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멈출 수 없었다. 실수로 방아쇠가 당겨져 밖으로 튀어나온 총알 같은 말들이었다. 나의 두려움과 미안함, 그리고 사랑 등 복합적인 감정으로 똘똘 뭉친 총알이었다.
‘죽고 싶다’는 ‘살고 싶다, 살려주세요.‘라는 말의 뒤집힌 얼굴이었고, ’나만 사라지면 돼‘는 ’나를 잃지 말아주세요.‘라는 애원이었다. 아무도 아닌 사람에게는 하지도 못할 말들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스스럼 없이 베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나에게 등을 돌리지 않았다.
이 글은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우울증 환자‘로서의 나의 이야기, 그리고 내 곁을 지켜준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쓰고 싶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가족 혹은 연인, 그리고 친구는 그 옆에서 끝없는 절망을 함께 견뎌주는 간병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글을 누가 읽든, 나는 결국 나를 지켜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있는 것이다.
말로 하지 못했던 미안한 마음의 고백이고, 동시에 사과이고, 조금의 기도이다. 그들을 아프게 했던 기억을 지우고 싶은 마음과, 지울 수 없다는 걸 아는 나의 생각이 부딪힌채로 글을 쓴다.
살아 있어서 미안하고, 살게 해 주어서 고맙다는 기묘한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온다.
나는 딱 서른 살 생일을 넘기기 전에, 죽으려고 했다. 자의적 죽음이라기 보단 우울이라는 감정에게 살해를 당하는 것이다라는 표현이 맞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었고, 지금은 글을 쓰고 있다. 내 우울은 아주 낡고 오래되었다. 언젠가 살아있는 하루하루가 마치 ’연명 치료‘ 같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오랜 시간 내 자신과, 끔찍한 기분과 매 순간 열심히 싸워왔다.
약을 먹고, 울어도 보고, 식사를 하지 않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았다. 일도 하지 않았다. 나의 작은 세상에서 나는 죽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살아남은 이유를 한참 뒤에야 깨달았다. 약을 먹어서도, 힘든 시간을 견뎌서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인 바벨탑 같은 나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 그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고 느낀 순간, 그들은 나를 계속해서 끌어당겼다. 내 말은 언제나 날카로웠지만, 내가 울 때마다 달래주던 그 손길들은 단 한 번도 차가웠던 적이 없다.
그 손길은 가까운 사람을 지켜내기 위한 의무감이라기보다는 사랑에 가까웠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 위에 간신히, 겨우 살아있는 것이다.
오랫동안 나는 미안함 속에 갇혀 있었고,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나의 우울증이 주변 사람을 얼마나 아프게 했는지 떠올릴 때마다 죄책감이 내 목을 조른다.
시간이 조금 지나고, 마음이 조금은 단단한 형태를 갖추면서 깨달았다.
그들이 나를 위해 버틴 건 고통이 아니라 선택이었고, 견딘 건 희생이 아니라 애정이었다.
이제는 “미안해”라는 말이 아니라 “나를 살려줘서 고마워”라고 말하고 싶다.
우울한 감정은 전파력이 아주 높은 감염병 같다고 생각한다. 늪에 빠져 구조 요청을 보냈는데, 오히려 구해주는 사람이 함께 빠질까 봐 무섭다. 그래서 나는 비밀이 참 많고, 혼자 괜찮다고 되뇌다가, 한 번에 많은 감정을 터뜨려 버리곤 했다. 그때마다 나의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하지만 그들은 단 한 번도 피하지 않고, 고스란히 맞아주었다.
나를 담당해 주는 주치의에게도 나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증상의 정도를 말하고, 약만 지어주면 장땡이다. 약 10년간 앓아온 낡은 우울한 이 감정이 금방 새 감정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간호사로서 우울증에 대해서 공부도 해보고, 환자들을 만나도 보고, 내가 복용하는 모든 약들에 대해 공부를 해보기도 했지만, ’남‘이 아닌 ’나‘의 우울은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영역이었다.
되돌아보면,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우울한 사람이었다. 친구들이 있어도 학교에 가기 싫었다. 되고 싶은 것이 없었다. 울고 싶은 날이 많았다.
고3이 되어서는 몸이 아프다며 학교에 나가지 않았다. 약 100일 가깝게 출석을 하지 않아 정학되기 전에, 졸업만 하자는 생각으로 겨우 몸을 이끌고 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교도 남들이 다 가기 때문에 갔다. ’간호학과‘를 선택한 동기에는 사명감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단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쉽게 해서 사람 구실을 해보고 싶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입학한 대학교에서도 나는 변하지 않았다. 학교를 나가지 않았고, 계속 휴학을 반복하며 나와 함께 입학한 동기들보다 훨씬 늦게 졸업을 했다.
사회에 나와보니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나의 선배가 되어 있었다. 입사와 퇴사를 반복했다.
나를 스스로 ’도태된 인간‘으로 여기며 우울한 감정에 더 깊게 파고들고, 아프게 했다. 그리고 조용히 혼자 아프면 될 것을 무서워서, 살고 싶어서, 자꾸만 다른 이들까지 아프게 했다.
나의 감정들을 꾹 눌러 억압했다가, 한꺼번에 많은 눈물과 모진 말들로 쏟아냈다.
다시는 누군가의 아픔으로 나의 상처를 확인받고 싶지 않다. 밀어내는 방식으로 붙잡지 않고, 그들이 나를 살려 냈던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삶을 붙잡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들이 보여준 사랑의 방식이 나를 살게 만들었다. 그 사랑의 빛을 이정표 삼아, 나는 이제 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다. 그들 덕분에 다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고, 더는 죽음으로 붙잡아 사랑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제는 참느라 울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물을 받아주고 싶다.
그들 덕분에 살아남은 인생이니까,
나의 삶을 소중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글을 쓰며 나의 낡은 우울한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들을 하나씩 꺼내어 버려 본다.
내가 살아있는 한, 그들의 사랑이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리고,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공감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어 삶을 붙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