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이기 전에 누군가의 딸이었다.
매일 생명을 마주하며 누군가의 오늘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하지만 정작, 나와 내 곁의 위태로움은 외면했다.
간호사로서 누구보다 민감해야 했지만 나는 제일 둔한 사람이었다.
너무 가까운 곳이었는데, 나는 가장 멀었다.
그날 이후, 지금도 매일 밤마다 스스로를 심판대에 올린다.
신규 간호사 시절에 나는, 내가 정말 가고 싶던 병원에 다니고, 좋은 동료와 간호사 선생님들을 만나 더없이 행복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다.
아침 7시에 근무를 시작한다면 새벽 5시가 되기도 전에 병원의 전산실에 도착해서 내가 돌볼 환자들에 대해 파악하고, 공부했다.
모두가 번아웃이 빨리 찾아올 것이라며 만류했다. 하지만 힘들고, 피곤하다는 생각보다는 처음으로 나 자신이 ‘쓸모 있는’ 존재가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내가 돌보는 환자들의 아픔에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가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했다. 근무 중에는 많은 것을 배우고, 환자의 상태 무엇 하나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도 애썼다. 인정받고 싶고,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에 일이 끝난 후에도 공부를 하다가 지쳐 잠에 들기 일쑤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쁜 생활이 내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항우울제의 역할을 해주었다.
병원과 집과의 거리는 왕복 세 시간 정도여서, 병원 근처에 집을 구하고, 오로지 직장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부모님께서는 다 큰 딸에게 많은 지원을 해주셨다.
혹여나 본가에서 출, 퇴근을 하는 날이면 아버지께서 나의 운전기사님이 되어 출, 퇴근길을 책임져주셨다. 내심, 큰 대학병원에 다니는 딸이 자랑스러워 뿌듯해하시는 게 눈에 보여 거절하지 않았다. 애지중지 키운 사랑하는 딸이 3교대를 하고, 남을 돌보며 몸이 상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마음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잔잔해 보인다는 이유로 가족의 일은 나의 관심거리 밖이었다. 잔잔한 수면 밑으로는 빠른 유속이 흐르고 있었는데 겉모습만으로 판단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저 내 머릿속에는 병원 생각뿐이었다. 어리석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다름없이 새벽에 일어나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 화면에는 ‘이여사‘라고 적혀있었다. 엄마를 장난스레 저장해 둔 이름이었다.
꼭두새벽부터 걸려온 전화에 왜인지 모를 불안감이 찾아왔다. 이 새벽부터 전화가 온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심장이 점점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자다가 잘못 눌린 전화이길 바랐다.
“여보세요.”
“...”
“엄마, 전화 걸렸어요. 잘못 누르셨어요?”
“...”
휴대폰 너머로 엄마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잘 못 걸었나 보다. 하고 안심할 즈음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이후로 가장 구슬프고, 처절하게 우는 소리였다.
전 날 저녁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특별한 날도 아닌데 꽃을 사주셨다고 소녀처럼 자랑을 하던 엄마였다. 노랗고 화사한 꽃을 정성스레 화병에 담아 사진을 찍어 자랑하던 엄마였다. 그런데 한나절도 채 지나지 않은 지금, 엄마는 너무나 처절하게 울고 있었다. 왠지 너무 불안한 마음이 들어, 이유를 묻고 싶지 않았다.
그저 말을 하지 않고 엄마의 처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어떡하니.ㅇㅇ아, 아빠가 암 이래.”
쿵-.
이번에는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아니라 멎는 것 같았다. 머리에 관을 꽂아 피를 싹 빼낸 느낌이었다. 머리가 한순간에 차가워졌다.
“무슨 말이야. 울지만 말고 제대로 말해줘요.”
한참을 울던 엄마는 재촉하는 나 때문에 울음을 머금고 말하기 시작했다.
지난주에 동네 병원에서 진행했던 위, 대장 내시경에서 용종이 꽤나 발견되었고, 큰 병원으로 조직검사를 보냈는데 악성 종양이라는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황당했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건강했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배가 나오는 체형이 되었는데, 엄마는 아빠의 배를 보고 뭐가 들어있을까 싶어 내시경을 하자고 했다. 그 장난스러운 제안이 가족 모두를 휩쓸어버릴 산사태로 돌아왔다.
아버지께서는 병원에서 혼자 결과를 들으시고, 며칠 동안 그 사실을 숨기다가 그동안 엄마를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 갑자기 꽃을 사 왔다고 했다.
엄마는 소녀처럼 기뻐했지만, 속으로는 나와 같이 이유 모를 불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불안감과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다가, 옆에서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워 혹시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보았고, 그제야 아버지는 사실을 말해준 것이다.
자초지종을 들으며 나는 울 수 없었다. 엄마가 너무 처절하게 울고 있어, 거기에 내 눈물까지 더해진다면, 금방 침몰해 버릴 배가 될 것이 뻔했다.
우선 근무를 마치고 집으로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출근길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출근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병원 앞에 도착할 즈음, 울음을 그치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눈앞에 닥친 일부터 해결하기 바쁜 신규간호사에게 슬퍼할 시간은 사치였다.
병동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비친 내 얼굴은 밤에 라면을 먹고 잔 것 마냥 퉁퉁 부어 우스웠다.
출근해서는 업무 시간 내내 지옥의 늪에 빠져있는 기분이었다. 낯선 사람의 고통과 생명을 지키는데 온 힘을 쏟아내느라 정작 사랑하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한 죄책감이 나를 옥죄어왔다.
평소에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울증을 들키지 않으려고 부단히 도 애써왔다. 항상 웃는 얼굴과 원래 목소리보다 더 높은 톤으로 사람들을 상대하며 가면을 쓰고 나의 이야기는 잘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당장 아버지에게 달려갈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가 아닌 낯선 사람을 돌보아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 괴로웠다.
이 절망적인 감정은 끝이 나질 않았다. 환자들을 볼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아버지와 비슷한 연령대의 남성 환자 혹은 암환자나 그의 가족들을 보면 앞으로 우리 가족의 일은 어떻게 흘러갈지에 대해 오만가지 생각을 하고,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이 불안과 절망적인 감정들을 숨길 수 없었고, 나는 더 이상 병원에 밝은 얼굴의 가면을 쓰고 출근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극단적이지만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죄책감 때문에 환자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환자가 아버지로 보였다.
정작 가족의 아픔은 모르고 있었다는 죄책감은 내가 끝도 없는 ‘우울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게 해주는 엔진오일이 되어 주었다. 간호사이기 이전에 아버지의 딸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사실, 알아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나의 간호사 면허증을 박탈당한 것만 같았다.
나쁜 딸에, 병원으로부터 도망쳐 나온 나쁜 간호사가 되었다. 그렇게 매일 밤, 스스로를 심판대에 올리며 나는 인생에서 모든 걸 놓친 패배자로 판단했다.
학생 간호사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직장, 그리고 내가 돌본 환자들. 나는 정말로 그들을 사랑했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 평온해 보이면 ‘괜찮겠지 ‘라고 믿고 싶었다. 그렇게 믿어야만 버틸 수 있는 시기였다. 그때의 나는 살기 위해, 버티기 위해 무책임한 생존을 선택한 것이다.
그 순간에도, 지금까지도 모두에게 미안하고 아픈 감정, 그리고 후회가 드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를 놓쳤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미워하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제 조금은, 아주 조금은 그때의 나를 안아주며 말하고 싶다.
“너는 나쁜 딸이었던 것이 아니라 좋은 간호사가 되고 싶었고, 모든 걸 사랑했기 때문에 아팠던 거야. 네가 느꼈던 죄책감은 사랑의 증거야”
스스로를 미워하는 마음이 오래 남아 일을 향한 확신도 무너지고, 가족을 대하는 마음도 무너지고, 나라는 사람 자체가 틀렸던 것 같은 죄책감을 조금은 놓아보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때의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른 이의 삶을 지키기 위해 나의 삶을 잠시 뒤로 미뤄두었던 것이다.
부족했던 게 아니라 벅찬 시간을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이제 조금은 나를 용서하려고 한다. 그때의 나는 잘 버텼고, 지금도 수많은 감정들로부터 잘 버텨내고 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일수록, 너무 익숙한 얼굴의 고통일수록 우리는 눈치채지 못할 때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건 무심한 게 아니었다.
나에게 남아 있던 온기와 여유를 환자들에게 전부 쏟고 와서 집에선 텅 빈 껍데기가 될 만큼 좋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을 뿐이다.
우리는 모두 완벽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함 때문에 다시 돌아보게 되고, 후회도 하고, 더 큰 사랑을 배울 수 있다.
그래서 스스로 조금씩 용서하고, 괜찮아지고 있는 중이다. 죄책감을 씻어내려는 만큼 깊이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당신의 죄책감은 무심한 후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안고 가기 위해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또한, 사랑의 증거이기도 하다. 당신이 몰랐던 날들도 당신이 사랑하지 않았던 날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랑으로 계속 살아냈을 뿐이다.
그리고 불완전하기에, 앞으로도 그 사랑을 다시 배우며 살아갈 수 있다.
그 사실 만으로도 스스로를 용서해도 될 이유가 된다.
나는 아직도 완벽해지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스스로 용서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