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해받기를 바랐다.
모든 병은 오래될수록 앓고 있는 당사자도, 그를 돌보는 주변 이들까지도 괴롭히며 가시를 세우게 만든다.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엄마가 무슨 상관이야. 싫은 소리만 할 거면 그냥 집에 가. 엄마랑 싸우는 게 더 힘들어."
"너는 하루 종일 병원에서 네 병수발 다 들어주는 엄마한테 그게 할 말이니? 나도 지겨워. 그렇게 말하지 마."
병실 안에서 다투는 소리가 한참을 멈추지 않았다. 시간 맞춰 환자에게 들어가야 할 주사약이 있어 몇 번을 병실에 드나들길 반복했지만, 가려진 커튼 너머로 환자와 보호자가 다투는 소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난감했다. 그들의 다툼이 멈추길 기다려주기엔 나의 할 일도 쌓여 있었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커튼을 거두었다.
"주사약 들어갈게요~ 성함,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세요."
"...ㅇㅇㅇ이요."
나를 올려다보는 젊은 환자의 눈빛이 따가웠다. 그녀의 보호자는 말없이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얼굴에 철판을 깔았지만, 그들의 싸움에 난입해 모르는 척 나의 할 일을 해야 하는 것이 민망했다. 일을 하면서 종종 있는 상황이지만 익숙해지기 힘들었다.
특히나 나의 난입으로 다툼에 제동이 걸린 환자와 보호자의 관계는 나의 행동을 더 어색하고, 삐걱거리게 만들었다.
사이좋은 모녀를 보면 참 부러웠고, 그렇지 않은 모녀를 보면 꼭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난 네가 죽든 말든 신경 안 써. 죽어버리던가!"
"그럴 거면 왜 낳았어"
"네 문제를 내 탓으로 돌리지 마. 남의 피나 빨아먹고 사는 거짓말쟁이 주제에 네가 잘난 것 같지? 매번 너만 뭐가 그렇게 힘든데. 내가 더 힘들어."
"나한텐 엄마가 악마야. 엄마가 내뱉는 말들이 평생 엄마를 따라다녔으면 좋겠고, 그것 때문에 언젠가 꼭 불행해졌으면 좋겠어."
사소한 이유였다.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격해질 대로 격해진 감정은 엄마를 상대로 최선을 다 해 싸우게 만들었다. 악에 받쳐 저주를 쏟아부었다. 결코 해서는 안될 말들이었다.
가시 하나, 가시 둘에서 시작된 싸움이 고슴도치 둘의 가시를 잔뜩 부풀렸다.
그 어느 쪽에서 먼저 다가가도 다칠게 뻔했다. 서로 다가가서는 안 됐다. 하지만 성난 고슴도치들은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찌르며 버텼다.
순식간에 아프고, 주워 담지 못할 모진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무수한 가시들을 남긴 채 엄마와 나의 관계는 그날로 끝이 났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몸이 자주 아팠다.
학교에 갔다가 모두가 보는 교실 앞에서 분수처럼 토를 내뿜고, 복통과 창피함에 고개를 들지도 못하는 날들이 종종 있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회사에 계실 엄마에게 연락이 갔다.
"ㅇㅇ이가 또 구토를 했어요. 조퇴하기로 했는데, 아무래도 애 안색이 안 좋아서 병원에 같이 가주셔야 할 것 같아요."
엄마와 통화를 마친 선생님께서 등을 토닥이며 괜찮다고 나를 진정시켰다.
조퇴를 하고 집에 돌아와 엄마를 기다렸다.
엄마는 오자마자 누워있던 나를 일으켜 세우고, 질질 끌어 신발장으로 끌고 갔다.
"어서 신발 신어."
딱딱한 말투로 눈도 마주치지 않는 엄마의 모습이 화가 나 보였다. 무서웠다. 신발을 신던 중, 갑자기 엄마는 허리를 숙이고 있던 나의 머리를 잡고 밀쳤다.
"너 때문에 이게 도대체 뭔 짓거리니. 회사를 다닐 수가 없어."
딸의 잦은 구토와 약한 몸 상태로 엄마는 자주 반차를 급하게 사용하고 오셨다.
이제 딸의 몸 상태가 걱정되는 것보다는 반복되는 상황에 지치신 듯했다.
눈물이 차올랐고, 흘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았다. 엄마와 병원에 가기 싫었다. 무서웠다.
맞벌이 엄마의 직장 생활을 걱정하기엔 어린 나이였다.
그 때 당시엔 아픈 나를 오히려 몰아세우는 그녀가 무서웠다.
그 뒤로, 나는 나의 몸 상태든, 학교 생활이든 모든 것에 있어 부모님께 잘 알리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일을 하다가 만난 상사에게 하는 작은 이야기 조차 하지 않았고, 웬만한 문제들은 숨기고 어물쩡 넘어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대화를 하다가도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 들어와 흐름을 끊는 것은 나였다.
나의 행동들은 대화에 틈을 만들었고, 그 틈은 모녀관계에 거리를 만들었다. 그 거리는 여간 좁히기 힘들었다. 어쩌면 지금은 너무 멀어져 서로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와있는 상태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를 원망하는 감정만이 남은 것은 아니다.
젊은 나이에 자식을 낳고, 키워낸 후 직장 생활까지 하며 자신의 생활 없이 가정을 돌보는 것이 지쳤을 것이다. 나는 성인이 되고, 직장을 다니면서 책임질 것이 나 자신 밖에 없음에도 그것마저 지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 거리를 두어 멀어진 엄마와의 사이에서 나의 짧은 이해심은 닿지 못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나의 우울을 이해받기를 원했다.
나는 엄마를 미워하면서도,
엄마처럼 지치지 않기를 바랐고
엄마를 이해하면서도,
끝내 말을 꺼내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이해받기를 바라는 마음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모르겠다. 우리가 다시 서로를 볼 수 있을지,
가시를 접을 수 있을지.
다만 침묵은 상처를 숨기지 못하고, 오히려 상처를 더 날카롭게 찔러 파고드는 것을 알고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군가와 갈등을 겪고 있다면, 당장 화해의 용기를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침묵이 남길 가시를 조금 일찍 알아보게 해주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