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글감을 받았을 때 솔직한 나의 즉각적인 반응은 '아니, 틀려선 안돼 - 이건 생사가 달린 일이야'였다. 마침 사업상의 진행 안건을 놓고 여러 명의 의사가 개입되는 결정 단계에서 완전 고배를 마신 직후였다. 복잡다단하게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명의 의견을 성공적으로 모으지도 못했고, 효율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도 못했고, 되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내 일처리 프로세스에 대해 욕만 된통 얻어먹으니 진정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진 기분이었다. 그런 나에게 "틀려도 괜찮아"라는 말은 딱히 위로가 되지 않았다. 사업은 그렇다. 한 사람의 결정이 참여된 모든 사람의 여정에 지대한 파장을 일으키는 일이므로. 결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해도 되는 결정이란 없다. 한 번의 결단이 매우 정확해야 하고 또 신속해야 하며 신뢰관계를 잃는 이 없이 모두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하는 것이다. 요 며칠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다행히 그나마 차선책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다.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인 점이 아쉽지만, 어쩌겠나. 내 협상 능력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나의 이기심과 너의 이기심이 만나는 그곳에 보이지 않는 손, 즉 시장경제가 있다고 애덤 스미스가 말했던가. 내 사업도 부디 앞으로는 그 손이 자동적으로 균형 있게 잘 작동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일처리를 마치고 한숨 돌리고 카페에 앉아 <틀려도 괜찮아>라는 글감에 대해 찬찬히 생각의 회로를 굴려본다. 틀려도 괜찮았던 적이 과연 언제였더라.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달라도 괜찮아 라면 얼마든지 이야기를 풀어쓸 수 있을 것 같은데 -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자라오면서 나는 틀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굉장히 컸던 사람이다. 특히 학업 쪽으로 말이다. 시험 기간에는 한 문제 틀리고 맞는 일에 내 온 미래가 달린 것처럼 예민하게 굴었고 대학교 때는 그런 압박이 극에 달해 제대로 된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면 수강하던 과목 자체를 수강 취소하곤 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별것도 아닌 성적표 한 장, 그걸로 결코 인생이 좌지우지되지 않는데 그때는 인생의 큰 그림을 못 보고 그렇게나 소심한 졸보로 지냈더란다. 점수 1점, 학점 1점, 한 문제, 한 과제에 벌벌 떨면서 말이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성적에 대한 고민, 취업에 대한 압박은 좀 내려놓고 실컷 여행이나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며 신나게 청춘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기회 많은 대도시에서 자발적으로 도서관에 처박혀서 보냈던 시절이 아깝기만 하다.
< 모두를 놀라게 했던 나의 선택, 틀에 박힌 정답에서 벗어나다 >
내가 기존에 존재하는 사회문화적 틀을 과감히 벗어나 획일적이고 개성 없는 정답이 아닌 차라리 매력적인 오답으로 살아가기를 선택했던 계기는 때 이른 결혼과 느닷없는 사업의 도전이었다. 당시 나는 토론토의 한 대학교에 재학 중이었고 한국에 교환학생을 올 때에도 한국 최고의 대학이라 일컬어지는 곳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사람 중에 진취적이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고, 열정이 있고, 도전정신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다들 '안정적으로 성적을 받아 취직이나 잘 하자'로 대동단결되어 어느 날 수업에서 보이지 않으면 도서관에 처박혀 공무원 준비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정말 중요한 사안을 놓고 열띠게 토론해야 할 청춘은 심각한 취업난에 그 푸르름을 허망히 내어준 듯했다. 내가 경험한 캠퍼스는 결코 푸르르지 않았다. 과연 이 나라의 미래가 밝을까, 하는 기우마저 들었다.
그러던 와중 우연히 만난 남편은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단숨에 패스한 뒤 일치감찌 사회의 한 복판에서 경력을 쌓아 온, 본인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과 꿈이 있던 젊은 사업가였다. 꿈도 용기도 없어 '안정'을 택하는 획일화된 학생들만 만나다 마침내 마주친 그 신선함이란! 마치 일주일 내내 서양식만 먹다가 비로소 동치미 한 사발을 들이켜게 된 것 같은 시원한 개운 함이랄까 - 그의 인성과 집안까지 알게 되면서 나는 이보다 좋은 선택은 추후에도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많은 사람들은 남자를 고를 때 '간판'에 기준을 두고 사람을 판단했지만, 나는 그런 것에 조금도 가치를 두지 않았다. 간판이 거래되는 한복판의 현장에서 그 학벌이라는 이름의 허상이 얼마나 부풀려져 있는지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거시적인 학벌보다도 한 사람이 가진 꿈의 크기 - 얼마나 삶에서 진취적이고 열정적인가 - 오롯이 그것만이 그 사람의 진정한 클래스라고 여겨졌다. 그리하여 나는 지금의 남편을 만나 오로지 그의 꿈의 크기를 보고 결혼을 감행하게 되었다. 나이도 어렸고 우려 섞인 시선들이 많았지만 지금도 나는 그 선택에 조금도 후회가 없다. 참 감사하게도 말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면서 1차로, 그리고 공부만 하던 내가 생소한 분야에 뛰어들었을 때 2차로 나의 삶은 이미 한참 사회적 정답을 벗어난 하나의 오답이 되었다. 앞으로의 미래에서는 졸업장 한 장의 가치보다도 내가 스스로 일구고 개척하며 나만의 스토리를 쌓는 것이 스펙보다 훨씬 더 높은 부가가치가 창출된다는 것을 수많은 독서를 통해 알고 있었기에, 나는 학벌이라는 타이틀을 포기하는 것에 있어서 조금의 아쉬움도 없었다. 이후 다년간 다양한 해외 경험과 강의 실력을 쌓게 되었고 코로나 사태가 터졌을 때 빠르게 유튜브를 시작하여 작은 나만의 온라인 브랜드도 론칭하게 되었다. 코로나를 맞이하며 직장의 일원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일 따위 없이 오히려 그간 했던 일들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자 1인 기업이 되어 진작 나만의 것을 만들고자 했던 그 선택에 더욱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게 되었다.
<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다. 각자의 답을 정성껏 써 내려가면 그게 무엇이든 정답! >
오늘 오래도록 직장 생활에 익숙해진 친한 지인과 통화를 하며 그와 나의 정신세계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정말 많이도 벌어져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인은 사실 '안정'을 제일 중요시할 수밖에 없다. 모든 삶의 태도는 '안정적인 것' '위험요소가 없는 것' '검증된 것'을 찾기에 바쁘고 따라서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분야에 과감히 뛰어들거나 개척할 만한 열정도 여지도 없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반면 사업가는 늘 보이는 현실 세계 너머의 비전을 보고 사람들의 니즈를 찾아 그것을 주도적으로 해결해 주려는 적극성을 띤 사람들이다. 사막에 강을 내고 길이 없으면 길을 어떻게든 만들어내는 사람들인 것이다. 나 또한 남편을 도와 막 사업을 시작했을 때에는 학교생활에서 길들여진 데로 '기존의 이미 정해진 공식을 따라가는 법'을 찾으려 발버둥 쳤지만 실제 사회는 달랐다. 그런 공식이나 법칙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로지 나의 촉과 감으로 빈 괄호를 창의적으로 만들어나가야 될 때가 훨씬 많다. 학교에서처럼 기호 1,2,3,4번 이렇게 보장된 선택지는 그 누구도 더는 나의 손에 쥐어주지 않는다.
인생도 객관식이라면 얼마나 편하고 쉬울까. 공식과 정답만 달달 외워서 찍으면 땡이니까.
그러나 인생은 객관식이 아니다. 인생은 주관식이다. 평생을 머금고 가야 할 각자의 질문도 다르고 따라서 답도 결코 하나일 수가 없다. 어떤 답을 인생에 내놓을지라도 그 답에 옳고 그름은 없는 것이다. 나의 어떤 선택이 사람들의 눈에 '틀린 선택'으로 보일지라도 그 후에 내가 어떻게 내 답을 정성껏 가꾸어나가느냐에 따라 인생은 한순간에 반전되기도 한다.
나는 그렇게 평생을 살고 싶다. 획일화된 정답이 아닌 매력적인 오답으로. 틀리면 어때. 어차피 내 인생의 평가자는 나인 걸. 중요한 건 나만의 내러티브를 얼마나 나다운 속도와 감각으로 써 내려갔는가 - 오롯이 그것만이 중요하다. 나다움과 개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이다. 틀리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되레 남들과 똑같아지기를 두려워해야 하는 시대가 정말로 찾아왔다. 더 이상 나의 삶의 정답을 외부에서 주어지는 객관식에 국한되어 생각하지 말고 차라리 나만의 오답을 정성껏 써 내려가자. 틀려도 괜찮다. 아니 지금은 틀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