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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마루 Sep 17. 2022

엄마라는 이름의 책임감, 그것을 한껏 끌어안다

교통사고를 겪은 후

    

푸르른 가을 날, 산책길 위에서









      유독 길었던 추석 연휴의 끝자락에서 일상으로의 복귀에 앞서 난 설레고 있었다. 아이들과 복작대는 일상도 충분히 의미 있지만, 대외적 사회 활동을 통해 얻는 해방감 및 성취감도 비할바 없이 크기 때문이다. 아침에 아이 넷을 다 보내고 텅 빈 집으로 들어왔을 때의 홀가분함이란! 아마 아이가 있는 엄마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과도 같은 감정일 것이라 생각한다. 연휴 내내 나와 함께 했던 못난이 안경을 벗어버리고 렌즈를 착용하고 고데기로 머리도 말아주니 얼마 전 남편이 해 준 파마의 결이 살아나 한층 생기 있는 머릿 스타일이 순식간에 완성되었다. 중요한 미팅을 앞두고 오래전 입었던 검은색 원피스도 꺼내 입고 빨간 구두에 어머님이 주신 고가(?)의 가방까지 둘러메니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대상 승하였다. 연휴 내에 살이 쪄서 걱정이었는데, 보정속옷으로 군살을 싹 가리고 원피스에 몸을 넣으니 꽤 날씬해 보이는 효과가 있었다! (보정속옷 만세!) 신나는 발걸음으로 차를 끌고 미팅 장소로 향했다. 맡은 바 호스트 & 보조 역할을 충실히 하고 다음 약속 장소로 넘어가 오랜 지인과 커피 한 잔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곁들어 미래에 대한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었다. 내친김에 도서관까지 들러 빌려온 책들을 반납하고 나오니 어느덧 아이들 밥을 해주러 집에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체감상 백만 년 만의 혼자만의 외출에 나름 만족스러워하며 집으로 향했다.


   사건은 이때 일어났다. 고속도로 입구를 목전에 두고 신호를 받아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데 별안간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목과 등을 중심으로 급격한 충격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눈 깜짝할 새에 뒷 차가 내 차를 들이받은 것이었다!! 고속도로 입구 한 복판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당황스러웠는데 얼른 차를 열고 내려보니 뒷 차주인도 나에게 다가와 번호를 주며 갓길에 세워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아직 여드름 자국도 여물지 않은 꽤나 어려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놀라고 당황한 상태였지만 갓길을 찾아 주행을 시작했고 고속도로 쪽이라 마땅히 차 세울 곳이 바로 보이지 않아 꽤 오랜 거리를 주행한 끝에 고속도로 한 복판 옆 길에 차를 정차할 수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린 후에 사고 일처리를 시작하였다. 자동차 사고는 벌써 3번째 겪는 일이었지만 여전히 당황스럽고 난처한 건 마찬가지였다. 버벅대며 일처리를 한 덕에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보험 접수가 마무리되었고 일단은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왔다.



   집에 오는 길에도 내 머릿속에는 이미 저녁시간이 한참 지나버린 아이들의 끼니 걱정이 내 속 울렁거림과 골반 통증을 누르고 자꾸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이것이 엄마의 삶인가!) 집에 와도 네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쉬기는커녕 밥을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얼른 수육을 하고 각종 밑반찬들을 꺼내고 다 먹은 뒷정리까지 말이다. 다행히 돌봄 선생님들이 계셔서 3,4호를 건사해주셨고 1,2호는 제법 컸는지 엄마가 차사고 났다는 소식에 온갖 간병을 해주기 시작했다. 둘째는 수건을 따뜻하게 데워서 찜질도 해주고 첫째는 3,4호가 엄마 곁에 얼씬하지 못하게 계속 막아주고 온 몸을 던져 놀아주었다. '엄마 힘들면 안 돼. 엄마 사고 났단 말이야. 엄마 쉬어야 돼!' 하면서 동생들을 제지하는 1,2호를 보면서 왜 이리 뭉클하고 따스하던지... 선생님들이 8시에 퇴근하시고 정말 넷이서 남게 되었을 때 다소 걱정이 되었는데 1,2호가 3호를 정말 잘 케어해주었다. 아이들을 안아주거나 달래며 어떻게든 내 손이 가지 않게끔 말이다. 큰 아이들과 원래 같이 하기로 했던 받아쓰기 시험용 선생님 놀이도, 기대했던 딱지치기도 못했지만 아이들은 너른 마음으로 잘 이해해주었다.



    사투 끝에 3호가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이것저것 알아보며 몸상태를 보니 어쩌면 부득이하게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아이들에게 넌지시 건네 보았다. '어쩌면 엄마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그 말에 '엄마 안돼 입원하지 마~ 엄마 죽으면 안 돼~ (?)'부터 시작해서 첫째가 나를 끌어안고 엉엉 우는 것이 아닌가! 속은 울렁이고 몸은 괜스레 쑤시고 아픈 와중에도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서 이 아이들이 그토록 슬퍼해주겠구나...' 이런 아이들을 세상에 남긴 것만으로도 내 인생은 성공이라 생각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겠다 (?) 뭐 그런 말도 안 되는 때 이른 단상 말이다. 그만큼 아이들이 어른스럽게 나를 걱정해주고 염려해주어서 현재 처한 상황과 상관없이 뭔가 굉장히 퐁신퐁신한 알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달까. (ENFP 맞습니다만...;;)



 

 

    다음 날, 원래는 오랜 전부터 잡힌 서산행 일정이 있었는데 양해를 구해 일정을 미루고 집에서 쉬면서 여러 가지 보험처리, 렌터카 대여, 자동차 수리 등을 맡겼다. 한의원도 가서 진료를 받았는데 왜 이리 나는 침이 무서운 겐가.... 애도 낳은 나인데 뾰족한 침은 정말 무섭다 ㅜㅜ 무려 한약도 받아와 집에서도 쉼이 필요했는데 아이들 밥은 또 해줘야 하니 야채를 다져서 볶아 야채 볶음밥, 큰 아이는 김치볶음밥을 해놓았다. 막상 나는 밥 생각이 없었지만 한약을 먹어야 하니 저녁을 먹어야 해서 뭘 또 요리하기도 난감했는데 다행히도 (?) 아이들이 먹다 남긴 볶음밥이 있어서 간편히 데워서 먹을 수 있었다. 그 볶음밥을 한입 씩 입에 떠 넣으면서 든 생각은 바로 '와 이런 상황에서도 내가 직접 요리해서 만든 요리로 내가 나를 먹이고 있네?' 하는 그런 아주 미묘한 온도의 성취감이었다. 뭐랄까 진짜 어른이 된 느낌이랄까. (이런 애 같은 말을 하는 자체가 어른이 덜되었다는 증거겠지만 어헴) 그 어떤 상황에서도 자녀의 끼니를 책임지고 내 끼니도 해결하는 프로페셔널한 으른이(?) 알랑가 몰라.. 부엌 여기저기 눈이 가는 살림 루틴도 나도 모르게 손이 가서 하고 있는 모습에서도 나 쫌 으른이고 진짜 음만데? 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몸이 불편하고 중요한 일정이 다 취소되니 자꾸 올라오는 속상함과 우울감을 순간순간의 기쁨과 감사로 대체하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비교적 그렇게 깊은 늪에 빠지진 않았고 오히려 이번 계기로 치료도 잘 받고 해서 몸을 더 건강하게 리셋하리!!로 다짐하고 있는 중이다.


 


   아이 엄마의 삶은 고달프다. 아파도 마음껏 쉴 수 없고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한가득이니 말이다. 내가 스탑 되면 올스톱되는 것들이 은근히 많다. 그런데 그런 책임감이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살아야 할 분명하고 뚜렷한 이유를 선사해준다. 특히 우리 아이들, 나를 정말로 순수하게 좋아해 주고 (엄마니까 당연한 거 일수도 있지만) 진심으로 나를 생각해주는 그 여리고 순수한 마음들에서 내 삶의 가치와 의미는 매일 더 새롭게 업그레이드된다. 허전함이라고는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이 복잡 복잡 다복한 우리 가정의 삶, 그 안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 나의 역할 - 엄마이기에, 더 건강하게 회복해서 내 일상으로 얼른 복귀하기를 다짐한다.

오늘은 한의원에서 약 하나를 더 받아왔다. 너무 쓰고 먹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먹어야지!

매일 치료받으며 빠른 쾌유를 셀프로 빌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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