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치페이 인생 정리
오늘은 반반 더치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 한국에서 대학생일 때, 일본에서 대학생일 때
2. 일본에서 신입사원 시절
3. 사회인이 된 한국 친구들과
4. 2014년 6월부터 만나 결혼한 지금의 남편과
위 1~4은 지극히 부끄러운 제 경험을 바탕으로한 케이스인데요.
물론 개인의 성향은 생활하는 환경과 문화의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일반화의 오류 혹은 나라 전체 문화에 대한 편견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지극히 개인적인 샘플을 예를 들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그저 경제 관념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그럼 일단 물음을 던질게요.
여러분은 지금 더치페이를 하고 계신가요?
더치페이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경제 독립은 여자가 할 수 없다. 애를 보지 않냐? 라고 하시는 여성분
아이도 없는데 여자가 집에서 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남성분
아이가 있어도 당연히 맞벌이를 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 남성, 여성분
내 남자는 내가 먹여살린다고 생각하시는 여성분
이중에 해당되는 분 계신가요?
저는 4번째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사실 그러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어쩌다보니 3년째 이 생활이 지속되고 있네요.
더치페이는 굉장히 복합적인 감정 소요를 필요로 합니다. 자라온 세대에 따라서도 상당히 인식차이를 느낄 수 있는 데요. 이는 과거에 받아왔던 교육, 보고 자라온 드라마 등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 세대의 가치관을 생성하기 때문입니다.
남자는 이래야 한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
그리고, 밑세대로 이어지는 부모의 교육도 큰 몫을 차지합니다.
10여년 전부터 최근까지 더치페이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해왔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아들가진 부모 혹은 아들에게 말이죠.
예를 들어, 결혼할 때 집과 차는 부부가 서로 똑같이 자금을 모아 부족한 자금은 은행 대출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던가.
딸가진 부모도 물론 많이 변화했습니다.
맞벌이 시대에 사위에게 요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적어졌기 때문이죠.
그러면, 이 글의 아젠다로 돌아갈게요.
1. 한국에서 대학생일 때, 일본에서 대학생일 때
한국의 대학 생활과 일본에서의 대학 생활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20년 전(어머.. 벌써 20년...;)
한국에서는 선배가 벼슬이기 때문에, 밥을 사준다거나 술을 사준다거나 당연시 여겨졌었습니다.
후배가 밥을 얻어먹는 것도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었죠.
저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수많은 선배들이 저를 위해 지갑을 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당구장에서 선배들에게 얻어먹은 짜장면만 해도 몇 그릇일까 싶네요.
다만, 품앗이 문화였기 때문에 선배들의 영화 작업을 무상으로 도와주는 일로 1년의 반 이상을 영화 촬영 보조 역할이나 연기를 하며 지냈습니다. 영화과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죠.
제가 2학년이 되었을 때, 저도 1학년 후배들을 똑같이 활용했던 것 같네요.
반면, 일본에서의 대학생활은 1엔단위까지 나눌 정도로 대학 동기들 선배들과는 더치페이를 했었습니다.
다만 완벽한 더치페이는 아니었던 것이, 술자리에서 술을 많이 먹는 사람과 적게 먹는 사람이 있었는데요.
그런 배려 없이 정확한 N빵이었습니다. 물론 홈파티의 경우는 자기가 먹을 것 마실 술을 가져가거나 음식을 해가는 등, 정확히 금액으로 나누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2. 일본에서 신입사원 시절
저는 일본 대학에 재입학 한 것이 23세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다른 친구들보다는 3-4년 정도 늦은 취업을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에는 저보다 나이가 적은 선배들이 많이 있었죠.
일본은 나이보다는 역할 사회이기 때문에, 그들이 저를 약간은 어려워하면서도 자신이 선배라는 인식으로 대했습니다. 저는 워낙 밝은 성격이었기 때문에, 나름 싹싹하게 그들을 대해 왔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한국 문화를 가르치게 되었죠(나빴다...).
'선배가 조금 더 내줘도 된다. 대신 내가 잘하면 되지뭐'
빡센 제작회사였기에 점심 저녁을 밖에서 먹기 일쑤였는데요.
급여도 당시 신입 치고는 높은 편이고 돈을 쓸 시간도 많지 않았는데,
가끔 선배들과 점심을 먹을 때 얻어먹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무튼 당시의 남자친구와는 칼같이 더치 페이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회사 선배들은 참 경이로웠습니다.
일본은 다 더치페이인 줄 알았는데...
물론 정말 '가끔'이지만요.
3. 사회인이 된 한국 친구들과
2011년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 만난 친구들.
그들과는 당연히 더치 페이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대부분 외국 유학 생활을 하다 온 친구들이어서 그런지 자신이 먹은 것은 자신이 페이한다는 것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죠.
자주 가던 술집에서도 같이 술을 마시더라도 자신이 먹은 것을 계산하는 문화.
저는 너무 편했습니다.
제가 예전에 겪었던 한국은 나이 많은 사람이 지불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렇게 자연스럽게 더치 페이가 안착되어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가끔 나이 많은 언니 오빠들이 제가 수입이 변변찮음을 알고,
사주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더치 페이의 삶을 살았습니다.
4. 2014년 6월부터 만나 결혼한 지금의 남편과
결혼할 때는 딱 반반.
이후,
저에게 유리한 일본으로 왔기 때문에
더치 페이는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어언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네요.
남편은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기 까지 꽤 오랜 시간을 요하는 직업군이기 때문에,
저는 안정적인 직장에 종사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경제적인 부분에 대한 부담이 상당히 큰 편이죠.
저는 만 3년 동안, 90%이상을 혼자 벌었습니다.
신혼 초에는 부모님의 걱정과 질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장 타지에서 네가 먹여 살려야 하는데, 고생길이 훤하다'며.
물론 타지에서 새로 시작하기에 가지고 있던 자금은 넉넉하진 않았고,
3년이 지난 지금도 집안 살림을 맥시멈으로 키워놓긴 했지만,
저축할 만큼의 여유는 없는 상황입니다. 예전에 홀로 모아두었던 자금을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삶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가 일을 하는 삶이 좋기 때문에, 가족의 부양자가 되어 사는 이 삶이 싫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남편이 잘 된다면 앞으로 굉장히 윤택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라는 희망도 있습니다.
나 아니었다면 일본을 선택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일본에 다시 돌아온 덕에 저는 자신감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이런 생각으로 살다가도 일이 바빠 몸이 지치면,
내가 경제적 부담을 온전히 해야한다는 사실과 가사일을 온전히 하고 있을 때는
억울함이 불연듯 몰아칠 때가 있습니다.
돈 때문에 자신이 위축되기도 하고 일본어도 생판 하나도 못하는 상태에서 새로 시작하려니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청나겠지요.
남편이야말로 경제 독립하는 날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경제 독립이 하루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그 때까지만 지원과 투자를 아끼지 말자.
아까워 하지 말자. 스스로 세뇌시키고 있는 중이죠.
코로나때문에 몸도 마음도 위축되어 있는 지금,
이렇게 월급을 받으며 재택 근무를 할 수 있다니 다행인 부분도 있습니다.
돈이 별거냐..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게 돈이겠지.
싶다가도 가끔은 더치페이하고 싶어지는 심정에서
저의 더치페이 인생을 정리해보고 싶었습니다.
기브 앤 기브. 기브 앤 테이크. 테이크 앤 테이크.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계실 지 궁금하네요.
기브 앤 기브로 지내는 게 어쩌면 마음은 훨씬 더 편할 수도 있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