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갠 May 21. 2017

욜로녀, 취직하다

일본에 취업한 욜로녀가 아직 한국을 못 떠나고 있다

사실 일본에 취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욜로녀는 2009년에도 일본의 유명 광고대행사의 계열사에 다녔던 경력이 있다. 

사실 부모님의 학비 지원에 보답하기 위해 그저 '이름'만 보고 회사를 컨택했었다. 

2008년 초 내정받은 상태로 4학년 졸업작품에 몰두할 정도로 일찍 회사가 결정된 편이었고, 회사 자체의 네임밸류와 급여가 높은 편이었기에 자연스레 어깨에 뽕 넣은 기분이 되었던 그때를 아직 기억한다.


자신감이 넘치던 20대 중반이었다.



그러고 보니 욜로녀 소개가 늦었다.



욜로녀(YOLO女, 30대 중후반)


아직도 지가 20대인 줄 아는 철없는 결혼 0년 차 전직 디자이너.

지금은 아무것이나 경험이 되는 거라면 다하는 프리랜서.

일본에서 최고로 자유로운 망나니 미대에서 욜로를 꿈꾸다가, 광고대행사에서 미친 노동을 하다 진절머리가 난 이후, 2011년 원전사고를 핑계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이씨 박씨 한국문화와 정서, 회사생활의 헬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일본으로 다시 건너갈 계획을 세우다가(문씨의 활약은 바다 건너에서 지켜보기로!) 프리랜서로 번역일을 하던 업체 측에서 비정규직으로 스카우트! 

일단 일본을 징검다리 삼아 지내기로 한 녀자.

욜로녀라 스스로 칭한다. 

'한번뿐인 인생 뭐 있냐 즐겨라'에서 '한번뿐인 인생 뭔가 있다 즐기자'로 마인드가 바뀌어, 새신랑과 강아지 한 마리와 동행하여 곧(아직 재류자격이 주어지지 않았으나...) 

일본으로 갈 예정이다.





현재, 어느덧 30대 중반이 되었다.

나는 또다시 일본 회사에 취직을 했다.



01 / 자발적 비정규직


일본의 한 IT/콘텐츠/광고 등 다방면으로 도전하는 젊은 사장의 회사의 번역일(일본어-한국어)을 간간히 수주받아하고 있었다. 사실 이 일을 처음 할 때까지만 해도 일본으로 다시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돌아간다는 생각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기 보다도 그런 대안이나 아이디어를 굳이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2016년 10월 이래 '한국에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깊은 고민을 현 남편, 당시 남자 친구와 거의 매일 같이 지내다시피 하면서


"일본에 살아보면 어때?"


라는 이야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2012~15년 다양한 회사에서의 근무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의 회사생활에 '노답(=답 없음)'을 느끼며 새로 시작한 온라인 판매업도 있었기에 많은 고민이 뒤따랐으나, 비슷한 타이밍에 수주받아하던 회사에서 스카우트를 받게 되었다.

사실 이야기는 내가 먼저 꺼냈으나 흔쾌히 나쁘지 않은 조건으로 제안을 해주었던 것이었다.


다만 협상을 하던 과정에서 내 본업인 '디자인'을 버릴 수 없었던 것과 페이 문제로,

나는 주 3 근무 '비정규직' 계약사원을 자처하게 되었다.



02 / 욜로스럽게 기다리기


'일본에 살아보기'를 프로젝트라고 하면 아직 시작도 못했다.

'재류자격인정증명서'라는 것을 교부받기 위해 3월 말, 모든 서류를 일본의 행정 대행하는 업체에 보냈으나 5월 말인 지금 네번째 문의를 해봐도 '심사 중이니 기다려달라'는 답변뿐이다.


5월 중순에 집을 빼고 타이밍 좋게 일본에 가서 집을 구할 계획이었는데 의도치 않게 틀어져버렸다. 그렇다고 신나게 매일을 즐기기엔 내 욜로스러움의 레벨이 아직 부족한 단계라 멘탈이 안정치 못하다. 

현 거주지의 심리적인 구속도 없잖아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일단 일본에 가기 전까지 시댁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