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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갠 Jun 22. 2017

반려견 일본으로 데려오기 D-40

6개월+40일

일본은 광견병 청정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 유독 반려견을 데리고 가기 까다로운 나라다.

온갖 예방주사를 접종하고 항체가 생겼는지 증명하기 위해 미국의 공증된 기관의 증명서가 필요하다.

그 기간은 6개월이 걸린다.




[일본에서 살아보자! 셋이서!]


"일본에서 살아보자! 셋이서!"


라는 이야기가 나온지는 사실 얼마 되지는 않았다.

작년 10월쯤 한국이 발칵 뒤집히기 전, 한국이 거지 같아 참을 수 없었다.

말도 안 되는 부조리한 사회와 암 유발 사건들, 청년들의 우울한 미래, 나는 그들보다는 그나마 조금은 즐거웠던 환경에서 살아왔으나 8년 반의 일본 생활을 마치 한국에서는 공백기처럼 다루었기에, 그들과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우울함을 겪었다.


아무것도 이루어놓지 않은 절망감.


그저 즐기기만 했었다면 억울하지도 않지...

아등바등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남는 건 허망함 뿐이었다.


여하튼 작년 10월 말쯤 우연찮게 일본어 -> 한국어 번역 총괄 프로젝트를 맞게 되었다.


3년 전에 일본에서 친구의 친구가 한국으로 놀러 온다기에,

만났던 마루O(丸O, 통나무라는 실험용 인간을 비유한 것을 칭하는 것과 발음은 같지만 다른 한자를 쓴다.)라는 친구와 마루O의 친구와 하루를 신나게 보냈다.

복잡해 보이지만 정리하자면, 그냥 일면식 없는 남자애 2명이 나의 대학 동기의 소개로

'한국에 친구 있어~ 연락해봐~'

그 한국에 있었던 친구가 나였던 것이고, 아마도 이들은 내 덕에 핫한 체험(술 문화)을 했다.

내 덕은 아니고 사실 그때 같이 놀았던 기타(guitar) 선생이 즐겁게 해줬다고 할 수 있겠다.


이 별 것 아닌 1.5일을 계기로 나와 마루O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마루O의 회사에서 한국어가 필요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2년 전에도 있다.

잘 모르겠지만 해달라는 대로 해줬더니 8만 엔을 주더라. 별 것 아닌 번역이었는데 8만 엔의 부업이 생기니 살 것 같았다. 당시 무OOO이라는 급여 낮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더 달콤했다.


이번 프로젝트도 한 줄기의 빛이었다. 물론 시간을 꽤 많이 들여야 한다는 점과 진행 및 자잘한 요구에 대응해줘야 한다는 것 때문에 내 본업이 조금은 침해받고 있었지만, 내 본업도 사실 갈피를 못 잡고 있었던 상태였다.


이 일이 '일본에서 살아보자! 셋이서!'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셋의 새 스타트를 실현시켜 주었다.


(아직 시작 못했지만 말이다)



[레이첼의 새끼?]


일본 이야기가 나오고 나서도 사실 확정 지은 것은 작년 12월이다.


"레이첼 생리 언제지?"


수첩을 한참 뒤져봤다.

분명 적어놨을 텐데... 바로 전 생리는 안 적어놨지만,


"12월!...이나.. 1월!"


곧 시작한다는 느낌으로 답변했다.


"새끼 낳자"


좀 내키지는 않았다. 교배시키자는 이야기는 레이첼이 새끼일 때부터 했지만,

나는 사실 신경 쓸 게 많아지는 게 싫었다.


전에 살던 집도 내 집이 아니었는데 벽지를 다 뜯어놓는 악마 강아지 시절을 넘겨왔기도 하고,

레이첼이 새끼를 낳으면 8~10마리를 낳으니, 그 감당을 어찌하리... 걱정이 앞섰다.

반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레이첼이 새끼를 낳지 못한다면, 빨리 중성화 수술을 해줘야 한다고 들었던 것 같다.

누구보다도 낳게 해주고 싶다만... 머릿속에는 꽤나 구체적인 조건이 들러붙었다.


- 일하지 않아도 한 달에 500씩 번다면

- 집을 훼손시켜도 구애받지 않는 곳에 간다면

- 모든 케어를 내가 짊어지지 않는다면


나는 이기적인 게 아니라, 귀찮은 게 근본적으로 싫다.

마찰을 일으키는 모든 것으로부터 회피하고 싶어 하는 성격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이렇게 새끼를 낳게 한다거나 하는 큰 사건이 있으면 남편과 부딪힐 상상부터 한다.


그래, 난 못됐다.

한번뿐인 인생, 나도 내 본위대로 살고 싶다!


이 모든 복잡한 심정을 단번에 잠재웠던 것이,

'일본행'이었다.

결코 쉽지가 않았던 것이다.

일본으로 새끼까지 데려간다면 그 비용이며 기간이며 걷잡을 수 없어지는 것!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첼의 일본 입국 - 전]


나는 일본에 온 지 약 10일 되었고, 집을 구해서 이사한 상태이다.


레이첼은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항공권, 거주지 등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 것.

이후 40일이 걸린다.


자세한 사항은 남편이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섣불리 적을 수는 없지만,

애완견을 일본으로 데려가기란 정말 녹록잖은 일이다.


나는 앞으로 40일간 레이첼을 볼 수 없다.

아쉬운 마음이 크다. 레이첼이 올 때는 이미 나는 출근을 시작한 상태라 마음껏 놀아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다닐 회사에서 할 일이 겁나 많다는 것은 이미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그전에,

한 달 이상 혼자서 이 휑한 단독주택에 살아야 한다니...

밤에는 조금 무섭다.


단독은 처음 살아봐서 문단속을 잘했는지...

1층부터 3층까지 점검을 해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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