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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갠 May 25. 2017

개의 역할

이 자식은 자식 그 이상

TV에 나오는 '반려견의 죽음'과 관련된 영상을 보고, 혹은 지인이 자신의 개가 죽었다며 오열하거나 우울증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개 한 마리에 왜 저렇게 호들갑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도 개를 그저 '개'로 보고 30년 이상을 살아온 사람 중 한 명이다.


다만, 지금 내가 키우는 개는 '자식 그 이상'이다.




어느 겨울날, 남자 친구와 함께 약간은 충동적으로 데려온 이 개의 이름은 '레이첼'이다. 고급스러운 이름을 찾다가 전날 앤 해서웨이가 나오는 '인터스텔라'를 보고 그녀의 극 중 이름 '레이첼'로 정했다. 무언가 결정할 때 충동적으로 하는 것이 욜로스러움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자기변호를 하자면 나름 그 순간의 감정에 최대한 충실하였던 것은 틀림없다. 


아무튼 3개월도 안된 꼬물이 강아지가 당시 공덕에 있던 오피스텔 하우스에 입성했다.




인절미같이 꼬물거리던 강아지가 이후 나를 얼마나 힘들게 할지, 나를 얼마나 위로할지, 우리를 얼마나 기쁘게 할지 미리 가늠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히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우리는 레이첼을 키우기 시작했다.



[개의 역할]


<A Dog's Purpose(2017)>라는 영화에서는 한 마리의 개가 윤회하며 다양한 주인과 여생을 보내는데...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개의 목적은 아마도 '주인을 위한 삶(그 이상)'인 것 같다.


개의 속마음 표현의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흥미롭게 봤던 개 관련 영화 중 하나이다(동물학대 논란은 뒤로 하고).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개의 역할'은 주인 입장에서 봤을 때 '개의 쓸모있음'에 관한 것인데,

극도로 주관적인 경험 및 시점에서 쓰는 것임에 미리 양해를 구한다.

('쓸모있음'이라고 언급하니 되게 냉정하고 싸가지 없어 보이지만 반려견의 존재가치에 대한 이야기)


일단, 치유 능력은 탁월한 것 같다. 


강아지일 때는 씻기지 않아도 우유냄새가 난다.

발에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땀냄새라고 하는).

귀에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발 냄새보다 더 고소함).

가끔 된장냄새가 나는 방귀를 뀐다.

아침에 일어나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깨어나면 침으로 세수를 시켜준다(끈끈한 점액이라 얼굴이 코팅되는 느낌). 

꼬리를 세차게 흔든다.

원하는 것이 있을 때 똑바로 쳐다보고 살포시 앉는다.

'돌아~', '앉아!', '손!'은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다.

'내놔~', '안돼~', '하지 마!'는 기가 막히게 못 알아듣는 척한다.


등 저절로 미소 짓게 하는 능력이 있다.


사람이 이와 같은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면 눈살 찌푸릴 수 있는 행동들이지만,

개가 하면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해지는 효과가 있다.


개의 수명이 짧은 이유에 대해, 쉔이라는 6살 꼬마 아이가 한 말이 있다.


사람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태어나요. 
예를 들면 항상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착하게 사는 걸 배우죠. 
그런데 개는 이미 다 알고 있어요.
그래서 사람처럼 길게 살지 않아도 돼요.

이미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태어났기 때문에 수명이 짧다는 발상은 심히 납득이 가면서도 견주로서 내 자식을 봤을 때 안타까운 마음이 들게 한다.

안 좋은 사고가 나지 않는 이상, 레이첼은 나보다 먼저 죽을 테니 말이다.


유튜브를 통해 노견에 대한 사연을 자주 찾아보고, 레이첼이 어릴 때부터 반려견의 죽음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다. 공부를 한다고 다가올 죽음이 슬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매일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대형견은 소형견보다 더 빨리 죽는다고 하니, 길게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레이첼을 욜로스럽게 더 이뻐해주고 있다.


한번뿐인 레이첼과의 인연을 늘 소중하게 생각하며 지낼 것이다.


※단 만 1살 될 때까지는 힐링 능력보다 파괴 능력이 더 강하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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